증거 충분 vs 증거 불충분
그 후로 동생네 부부는 지리멸렬한 싸움을 벌였던 것 같다. 대단히 아쉬웠던 건 남편이 감정의 끊을 놓아버리고 아이들에게 동생을 바람난 엄마로 폭로해버림에 따라 아이들이 엄마를 멀리하게 되었고 이어지는 폭언에 노출되는 환경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게 되었을거란 점이다.
너무 화가 나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본인의 트라우마를 아이들에게까지 전염시킨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남편도 나에게 한 번 더 성을 내겠다고 안방문을 분노의 힘을 실어 열게 되면서 문 앞에 서있었던 아이의 발톱이 빠졌던 기억이 있다.
여전히 의문이다. 부부사이의 일에 아이들은 잘못이없는데 왜 아이들이 폭력의 상황에 놓여야 하는지. 고성과 거친 제스처는 아직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남편의 지붕아래에서 감당해야하는 현실인건가. 하는 생각에 그 때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동생네 부부의 이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생이 양육권도 재산분할도 포기해 버리니 더이상 싸울 것이 없었다. 10년 이상을 살아온 부부의 연을 종료하는 데 필요한 건 두 가지 뿐이었다. 이 두가지 때문에 이혼과정이 길어지기도 하고 이 두가지 덕분에 계약을 해지할 수가 있는 것이 바로 결혼이었다.
여럿 이혼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다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증거”인 것 같았다. 증거가 잡히지 않으면 나는 결백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자그마한 증거가 하나라도 잡히면 나는 발언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혼 후 남편의 지속적인 외도를 알게된 동생은그동안 왜 나는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했을까. 좀 더 기민했어야 했다. 남편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해 남편이 잠든 사이에 몰래 휴대폰을 봐야했던 걸까. 이런 생각들이 동생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에는 용기와 적절한 타이밍이중요한 것 같았다.
나 또한 전남편의 늦은 귀가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원래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날은 아이를 재우고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전화 한통 남겨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의 목소리가 뭔가 잠긴 듯 했다. 마치 어디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받은 듯한..
그가 말했다. “아 휴대폰을 차안에 두고 카페에서 회사사람이랑 차마셨었어.” 평소 휴대폰 게임을 즐겨하는 이라 차에 폰을 두고 내렸더라도 다시 챙겼을 사람인데.. 차라리 나에게 다시 전화를 하지 말지.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말지.. 그냥 넘어가기엔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다.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던 것 같다. 나는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블랙박스 기기에서 메모리 칩을 빼보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재생을 해보니 회사동료와 통화하는 것이 녹음되어있었다. 강남역 어느 부근이 목적지 였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지 어떤 코스가 얼마고, 이번엔 자기가 낸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 들렸다.
평소 나와 전남편은 마사지를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 애보느랴 일하랴 갈 시간이 없었는데 혼자 다녀오는게 미안해서 거짓말을 했나보다 생각이 들었다.의심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냥 그렇게 이해가 되었던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사생활을 회사동료에게 시시콜콜 말하는 타입이었는데 이 작은 이벤트를 그때에도 직장동료에게 들려주었다. 나보다 한 7살은 많았던 여자 과장님이었는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건 정상적인 마사지가 아니라 불법 마사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녹음된 전남편이 뱉은 워딩을 지적하면서 친한 남사친의 의견까지 보태어.. 나의 이해가 오지랍이었다는 것을 일깨우게 해주었다.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문제를 수면 위로 꺼낼 수는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나 다시 살포시 닫아야하는 그런상황..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있어? 나는 널 너무 사랑하는데.. 날 두고…?? 이런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랑이 있었나? 하는 의문으로 시작했던 결혼생활 중 이런 이벤트는 나로하여금 “니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 그런 곳을 ?” 하는 .. 불쾌감과 내가 전남편을 싫어해야하는 이유를 하나 더 늘게 하였고 이로써 나에겐 “증거”가 하나 더 수집되었다는 하나의 성과로 작용했다는것이었다.. 씁쓸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전남편이 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내가 휴대폰으로 무얼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었다. 카톡도 보고, 구글메일도 보고, 사파리도 들어가보고..
수화물 검색대를 통과한 가방을 기다리는 듯한 지루한 시간에 나도 전남편에게 당신것도 줘봐. 했다. 열린 창 중 사파리를 클릭해서 보았더니 오피 사이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휘향찬란했던 것도 같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뭐야?” “아 이거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눌러본거야..” 라고 답하는 그에게 나는 더 이어갈 말이 없었다. 물고 늘어져봐야 큰소리 치고 달겨들고 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 언제부턴가 달겨들고 표효하는 식의 그의 액션은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던 듯. 이깟 오피 사이트 발견으로 섣불리 담판을 지을 수 없었고 담판을 짓는다고 한들 그 담판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가 그땐 분명치 않았던 것 같다.
안그래도 힘겨운 결혼생활 중 오피스텔이 큰 트리거가 되어 물리고 뜯기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휴
그노무 오피스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