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지 두 가지 이유를 갖는다.
두번 째 글에 앞서서..
너무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불편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판단하지 않고 그저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결코 불륜을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동생을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녀의 부탁을 외면하고 거절할 때 그녀와 아이들이 맞딱드리게 될 더 큰 불행이 염려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저의 거짓말이 결말에 영향을 주진 않았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이런 일을 글로써 돌이켜 보고 앞으로 좀 더 현명하게 관계하고 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오직 단 둘이, 서로에게만 충실하고 산다는 건 정말 귀한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 귀한일도 어느 순간 아주 작은 바람에 의해서 흔들리게 마련이고 이 흔들림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마광수 교수는 그의 저서 “사랑학 개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방의 외부 조건만 보고 맺어진 결혼은 그 조건이 변경되거나 아예 없어지면 곧 위기에 접어든다. 처음엔 물론 성적 기호가 맞지 않아도 그런대로 참아나간다. 하지만 결혼할 때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시켜 줬던 상대방의 조건, 예컨대 돈이나 지위같은 것이 없어지게 되면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서는 금세 “이게 뭐야, 내가 바란 것은 이게 아닌데”식의 불만이 튀어나오게 된다.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지 두 가지 이유를 갖는다. 하나는 표면상의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진짜 이유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사소한 핑계를 갖다 붙여 결혼생활의 회의를 표시하고, 진짜 이유를 밝히기를 꺼린다. 그러나 결국은 진짜 이유 때문에 헤어진다.
흔히 동원되는 표면상의 이유 가운데 이른바 “성격차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성격 차이” 보다는 “성적 차이”라는 게 더 옳다. 스스로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뒤늦게 깨달은게 부끄럽기 때문에 차마 그런 표현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동생은 나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갔다고 거짓말을 했었나보다. 그런데 꼬리가 너무 길었는지 남편으로 하여금 의심을 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녀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와 함께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야 했다. 퇴근하고 피곤에 쪄들었었는데 이건 정말 고카페인 저리가라 각성의 순간이었다.
솔직히 내가 하는 이 거짓말에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면서도 동생의 남편이 아예 날 또라이로 보고 제발 전화를 끊어 주길 바랐다. 동생과 내가 같이 있다는데 왜 영상통화는 안되는지 그걸 설명할 길은 없었고 나도 거의 울지경이었다. 내심 속으로는 그랬다. 그냥 좀 그러려니 하고 둘이 알아서 해결 좀 하시기를..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그런 거짓말을 왜 해주냐고. 하지만 내가 나서서 동생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할 순 없진 않은가? 그리고 이미 밟힌 꼬리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이 둘 사이가 나로 인해 좌지우지 될 것 같진 않았었기에 이번 통화를 끝으로 두번 다시 그들의 일에 개입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다음날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이혼하면 다 내탓이고 어차피 그리 친한 동생도 아닌데 도와줄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추가 확보한 여럿 증거(동영상 및 공문서 위조)가 있다며 동생을 도와준 것이 괘씸하다고 법적대응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아, 정말 개똥같은 일에 말린 것이 틀림이 없었다.
생각해보았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 동생이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부탁을 했을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살면서 배우자가 아닌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올 수 있겠지. 사람이니까.. 하지만 행동은 분명 어떠한 식으로던 흔적과 결과를 남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더 갈지 멈출지를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판단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이 정말 새로운 사람을 사랑했다면 더 현명하게 절차를 밟았어야 하지 않을까.. 남들도 쇼윈도 부부이니 나도 가정을 유지한 채 그렇게 겉돌아도 된다는 생각은 자기 위안이다.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후 동생 남편의 감정적인 문자는 계속되었고 나는 말로만 들었던 동생남편의 집요한 무례함과 괴팍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똥 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랐었던 것이었단 걸 알게 된 지금의 순간, 돌이켜보니 연기대상 후보는 나와 동생이 아니라 동생의 남편이었다는 것..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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