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라토닌 Nov 01. 2024

내가 만나 본 가장 어린도둑




 한강뷰의 집을 얻었다. 이혼 후 미래의 현금흐름까지 탈탈탈 털어 은행에 방 한칸 반 정도 내어주고 가까스로 마련하였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둘이 살면 서글플텐데 인테리어라도 깔끔히 하라고..


 감각은 있는 척 하고 싶고 달리 아는 건 없어서 올 화이트로 리모델링을 하였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왔지만 그 덕에 아이의 모습에 큰 박탈감은 없어보였다. 보여지는게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내리고 그 좋다던 압구정을 버리고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보여지는 게 중요하긴 했던 것 같다.










 둘이 사나, 셋이 사나 집안 살림 필요한 건 마찬가지 였다. 혼수 준비하듯 두번 째 결혼(나와의 결혼식이랄까?)을 위해 세탁기, 건조기, 티비, 냉장고, 식기세척기, 인덕션, 에어컨까지.. 결혼을 준비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나는 친구와 함께 백화점에서 가전을 풀로 구매하였다. 그 와중에 티비 75인치는 지금 생각해도 심했던 것 같다.





 혼수를 채우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이때 마음껏 해소했던 것 같다. 소소하게 쇼파, 거실 테이블, 책상, 식탁, 의자, 서랍장.. 이렇게 적고보니 내가 저지른 일이 참 많구나. 생각들었다. 한편으로는 정말 “이혼”이란걸 하고싶었구나.. 갖춰진 나의 공간을 보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압구정 집을 나와 첫 날을 새로운 집에서 보내던 밤..몹시 추운날이었다. 그 전 집주인이 집을 잘 관리하지 않아 보일러가 고장난 상태였고 보일러 실의 방화문도 삐걱거렸다. 짐을 싼 박스 안 양말은 어디있는지 찾지를 못해 집앞 편의점에서 양말을 하나 사와서 신고 친구가 집에서 가져다 준 거위털 이불을 덮었다. 고맙게도 친구와 나와 딸이 침대에 같이 누워서 잠을 청했다.









 압구정에서 보던 한강뷰와는 다르지만 뻥뚫린 뷰에 덜컥 계약을 했다. 돌이켜보면 나라는 사람은 생각이 많고 그에 따라 고민도 많은데 이미 결정한 쪽이 정말 맞는 건지 생각하는 시간이 긴 것 뿐이었던 것 같다. 나의 이혼도 그랬던 것 같다.


 오랜기간 이혼을 생각했기에(어쩌면 결혼전부터..) 내면의 스토리텔링에 갇혀 헤어나오기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결혼 생활 중 나의 선입견이 틀렸다는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별일 없이 삶은 지속되었다. 다만 아프지 않고 덜 스트레스 받으며 아무일도 일어나질 않길 틈틈히 바랐다. 찾아오는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 구조조정(셋에서 둘로)이 있었지만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릴 때부터 나와 잘 지냈고 나 또한 남편의 도움이 없어도 해나갈 수 있는 그런 자발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아니 점차 자발적으로 변했다.).



 그 자발은 어쩌면 부부사이를 악화시켰을 수도 있었겠다. 어느정도 남편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있어야 서로 주고 받으며 사는 맛이 있었겠지만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받게될 생색이 먼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생색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의 방식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집에서 지낸 약 3년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딸에게는 친구 복은 없었던 것 같다.









 유독 강한 기가 느껴지는 아이..굉장히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딸의 친구였는데 가끔 우리집에 놀러오면 행동이나 말에 주저함이 없었다. 요즘 애들은 그런가보다. 워낙 자기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니까.. 생각했다.



 딸은 그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았고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하면서 틈틈히 만나곤 했다. 딸이 그 친구 때문에 속상해서 운 적도 한 두번 있었는데 딸에게 보낸 문자 내용을 보니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많이 커버린 아이었다. 어쩌면 옆에서 정신적으로 딸아이를 힘들 게 할 것 같았고 단순하고 쾌활한 나의 아이가 친구 때문에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는 게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방 안에서 딸아이가 “이건 아니잖아!”하며 울었다.

아이돌의 포토카드 몇 십장을 넣어둔 파일이 있었는데 그게 대부분 사라진 것이었다.


지난번에도 나에게 그랬었다.


“엄마, 자꾸 내 물건이 없어지는 것 같아..

서이(가명)가 왔다가면..”

“에이~설마..잘 찾아봐..”




 

 원래 자기것을 잘 챙기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대충 그렇게 말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넘어갈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친구는 우리집에 자주 왔다. 몇 번 자고가기도 했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우리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고 하였다. 아무래도 자고간 날 우리집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갔었는데 그때 마침 집에 아무도 없던터라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던 게 화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 친구에게 도둑질을 하였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를 확인해볼까 하여 관리실에 갔지만 경찰 입회하에 가능하다고 하였고 설령 그 CCTV에 그 친구의 모습이 찍혔더라도 그 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빨리 포기가 되었다.








다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라는 속담은 공부를 곧잘하는 친구가 모르고 있었던 부분인것 같았다.



 나는 부랴부랴 사본적도 없는 가정용 CCTV를 구매하여 바로 다음날 신발장 앞에 설치하였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내 휴대폰으로 알림이 온다. 그리고 설치 당일에 천안에 볼일이있어 딸아이와 외출을 하였는데 천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 친구가 딸아이에게 전화를 하였다.




“놀 수 있어?”

“아니 ~ 나 엄마랑 밖에 나와있어서. 못놀아”

“아 그래? 아쉽다. 알겠어~”




 그런데 그 순간 내 휴대폰에서 알림이 울리는 것이었다.


 나는 더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팔등의 털들이 솟아 올랐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갑자기 익숙한 우리집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나의 휴대폰에 전달되어 울리면서 현관문이 열렸다.


 하늘색 티셔츠에 검정 카고바지를 입고 들어오는 그 친구였다. 신발장 옆에 있는 방을 조심히 살펴보면서 신발을 벗고 딸아이의 방으로 걸어갔다. 십분쯤 흘렀을까.



 아이돌의 포토카드가 담긴 플라스틱 통 세개와 각종 악세사리를 들고 나와 신발장 앞에서 본인의 카고바지 주머니에 알뜰살뜰 넣고 있었다. CCTV를 대놓고 설치했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한 그 친구는 거울앞에서 본인의 옷 매무새까지 점검하고 유유히 집을 빠져나갔다.



 

 딸아이도 함께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내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충격이라 아이의 충격까지 보듬어줄 수 없었던 것 같다.



 믿었던 친구였었는데.. 딸에게 이 사건은 명백한 배신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남편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같이 고민을 해보겠는데..내가 취해야 할 다음 단계의 액션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 학교의 학부모 독서모임에서 만나게 된 언니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나누고 조언을 들었다. 그 아이 부모님을 직접 만나는 건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 끼리는 자주 만났지만 어른들 끼리는 인사정도 했었고 그 아이의 아빠는 한 번도 못 적이 없는데 어떤 분들일지 감히 예측이 안되서 나 혼자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에 버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러 조언들을 종합해서 나는 학교 앞에 있는 지구대에 가기로 했다. 경찰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신고 접수를 하실 거냐고 경찰이 나에게 물었다. 접수를 하면 기록이 남고..어차피 나이가 어려서 가정보호처분이 내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는 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친구를 신고하고 그렇게 되면 그 신고 기록이 남게 된다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무언가 굉장히 찝찝하고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경찰이 내 딸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사실 이걸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는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딸아이는 말했다. “그냥.. 신고 안했으면 해요..” 그런데 나의 마음은 달랐다. 그 친구의 행각에 대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행동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집앞에 잠복해 있다가 집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들어가는 그 치밀성에 몇 개월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기에 경찰의 도움을 통해 액션을 취하고 싶었다.


경찰이 말했다. “일단 그 친구 어머니께 연락을 좀 해보시는게 어떨까요? 갑자기 경찰에서 연락을 하면 놀라실 것 같기도하고..

그래서 나는 그 친구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한 30분 후였을까..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직접 아이에게 확인을 해보고 연락을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영상이 찍힌 게 있으면 보내달라고 해서 동영상 3개를 보내주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고 경찰서에서 더이상 할 일도 기다릴 것도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 딸아이에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가지고간 물건들은 어떻게든 배상할께요..정말 죄송합니다.”

흐느끼며 우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의 마음도 아팠다. 어떡할까 갈등이 되었지만 그 갈등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저도 이런 일이 처음이고 어떻게 할지를 몰라 경찰에 가서 신고를 했는데 이렇게 신고를 하게 되면 그 이력이 남는다고 해요. 그렇지만 서이(가칭)가 충분히 반성하고 어머니께서 잘 지도해 주시리라 믿고 신고는 없었던 걸로 할께요..”



나도 이런 결말이 되기를 바랐다. 어린아이를 신고하고 나도 발뻗고 자기는 힘들었을 것 같았다.




훔쳐간 물건 전부를 그대로 받지는 못했다. 이런것까지? 할 정도로 정말 크고 작은 것까지 다 가져갔었고 이게 한 번이 아니었다는 것에 다시 놀랐지만.. 앞으로 그 친구와 엮이지 않길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딸이 물어보았다. 엄마.. 만약에 내가 도둑질을 했다면 엄만 어떻게 했을거야?










“ 너죽고 나죽는거야!!!”
















마트에서 물건 하나 슬쩍..한 게 아닌 주거침입에 해당하는 죄를 어린아이한테 당하고 나니 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를 가장 모른는 사람은 바로 부모라는 것을..



내 아이도 늘 바르게만 지내지 않을 거란 걸 늘 염두해 두고 나의 말과 행동에 정말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건 아주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나의 삶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 그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 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