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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충신 Jan 26. 2023

혼자 살아가는 지혜

  전원생활의 시작 = 클레오파트라

  금요일 밤 12시, 예당와옥을 향해 출발합니다. 영하 5도 이상 떨어진다기에 수돗물이 얼기 전에 도착하고자 신나게 밟아대니,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도착시간 12시 57분, 수원 집에서부터 거리는 100여 키로, 기록 달성했습니다. 방에 불을 넣고,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놓습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가 클레오파트라 전집 마지막 5권을 이제야 마감합니다. 온몸이 훈훈해집니다. 그동안 클레오파트라가 세계에서 가장 이쁜 여인인지라 또한 최고의 여왕인지라 오랫동안 품 안에 간직하고 싶어 들고만 다녔습니다. 클레오파트라를 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손안에 쥐고 다닌 것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이것이 독서의 즐거움인 모양입니다. 이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된 것이지요. 

  아침에 일어나니, 예당와옥에 첫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함박눈입니다. 클레오파트라와의 결별을 축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가을에 캐 두었던 황토 호박고구마를 꺼내옵니다. 집을 짓고 남겨둔 나무 조각들을 모아서 모닥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그것도 첫눈이 내리는 날, 그 첫눈을 맞으며 고구마를 구워서 먹는 그 맛!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자꾸만 먹습니다. 눈도 멈추고, 배가 불러 방으로 들어갑니다. 로나 번의 "수호천사"라는 소설을 읽습니다. 가난하지만 나를 누군가가 언제나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 깊이 있고 철학적이진 않지만, 순수하고 착한 삶의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어 갑니다. 고구마는 구황식물입니다. 어렸을 때, 점심은 고구마로 때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다시 고구마를 먹습니다. 저녁까지 고구마를 먹습니다. 모두 합해서 20개는 먹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고구마로 끼니를 때웁니다. 뱃속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즐깁니다.

  어둠이 내려 방에서 이리저리 뒹굴다 보니, 밤 10시가 넘어갑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습니다. 고구마 때문에 가슴이 꽉 막혀 명치가 아파옵니다. 아무래도 고구마로 체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미련을 떨었습니다. 마누라님 거기서 무엇하냐고 전화가 옵니다. 클레오파트라하고 논다고 대답하니, 청승 떨지 말고 당장 올라오랍니다. 안 오면 내일부터 국물도 없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슴이 꽉 막혔는데 국물 없으면 큰 일입니다. 조금 뒤척거리다가 다시 집을 향해 달립니다. 또 신나게 달렸습니다. 아뿔싸 차가 애꾸가 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소화제부터 먹습니다. 그리고 눈 비비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눈이 침침합니다. 주말주택 예당와옥! 문제가 많습니다. 지나친 전원의 서두름이 사고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천천히 준비하고 천천히 전원생활을 즐겨야 할 것 같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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