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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Jun 29. 2023

표현하는 것은 사랑을 하는 것

예술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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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에서 인간의 두뇌는 하루에 약 3만 가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쓸데없이 생각이 많고 그 생각을 정리하기가 힘들었던 나는 머릿속에 시끄럽게 산재된 사고의 문장들을 어떻게 하면 쉽게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고심했다.(능지가 떨어진다는 증거일까 더욱이 나는 활자 난독증도 있다. 한동안 스치는 영화 자막도 읽지 못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지 못하니 극장도 안 갔다. 그뿐인가 사람 앞에 서면 그그그를 수십 번 하는 말도 잘 못하는 말더듬이다. )


아무튼 이 모든 훌륭한 기질을 타고 난 탓을 하기도 전에 대학시절부터 미술 전공을 위해 억지로 작가노트나 에세이 형식의 글들을 써야 했다. 이런 글을 쓸 때 처음 어떤 화두를 꺼내는 것은 쉽지만 좀처럼 정리도 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기승전결의 논리적인 구조를 만들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서로 나오려 하니 마치 내가 쓴 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었다. 4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 도서관에 들러 분야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 헤맴에서 벗어나 좀 더 명쾌한 결과물을 얻어 내고 싶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쓰기를 잘하는 것 같지 않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 잘하기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달변가나 웅변가 이듯이 글을 잘 쓰는 스킬도 한 가지 표현 수단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과 같다. 글을 잘 쓰는 노하우들을 찾아보면 우선 글을 잘 쓰는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라는 충고가 가장 많다. 마치 그림을 처음 배울 때 훌륭한 명화의 기법들을 따라 배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표현예술들이 그렇듯 배움과는 관계없이 처음부터 그 기질을 갖고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음감을 타고나서 처음부터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있고, 작곡가가 작곡을 잘하기 위해 굳이 수많은 곡을 미리 들어볼 필요가 없듯이 어쩌면 처음부터 글을 쓰는 창작 행위도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희대의 작곡가나 가수가 될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것처럼 모든 표현 수단은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는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단지 표현해 보고자 하는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인식은, 그림이든 노래든 말이든 글이든 모든 것은 소통을 위한 표현방식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남들이 보기에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다지고 반복적이고 부지런한 학습과 연습만이 적정 이상의 수준의 글쓰기 표현능력을 달성하기 위한 자세다. 결국 그것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개인 의지의 표현임으로 사회적으로 선한 목적을 가진다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노력은 언제나 내가 아닌 남을 향한 자세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통에 대상인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의 태도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상대가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표현능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사랑하는 상대와 연애 하듯이 조심스럽고 친절하고 진심을 담은 표현은 그 모습이 어떻든지 상대의 공감을 살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최소한의 동정만 받는다 해도 그것은 의미가 있다.


대게 이런 태도는 대인관계를 보면 쉽게 볼 수 있다. 경상도 집안에서 나고 자라 나란 남자는 원래 무뚝뚝하고 과묵한 거야 같은 고정관념 따윈 버리고 이제 막 말 배우기 시작한 4살 수다스러운 여자 아이처럼 아니면 처음 보는 사람도 10년 지기 단골인 듯 살아온 인생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시장터 닭집 사장님처럼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말로 글로 표현하는 연습을 좀 해보자는 거다.


일단 그렇게 어느 적정 수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글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한다. 마치 화가가 자신만의 그림 묘사 기법과 조형 언어를 가지듯이 작가의 정체성과 걸맞은 단어와 문장을 취사 선택해서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거기에 바로 자신의 고유한 기질과 본성이 들어있고 개성과 독창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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