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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이 Jul 19. 2023

나의 우울 그리고 나의 화로

그때의 나는 내가 이 나이까지 살 수 있을 거리고 생각을 했을까?


고등학생 때의 나는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20살 이후로 살 생각티 없다고 말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혼자 생각했고, 불안했고, 두려웠고, 우울했다. 그때는 정말 내 세상은 끝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지나간다”리는 말이 정말 싫었다. 그때는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가는 일이 없었다.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내 마음은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먼지처럼 사라지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랬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기를 수천번은 더 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은 아직 죽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온 아주 작은 촛불 같은 걸음이었다. 처음부터 마냥 쉽지는 않았다. 이런 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고 주변 사람들을 참 많이도 괴롭혔다. 이런 내가 왜 좋냐고 하루에 수천번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머물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옆에 머물렀고, 떠났다. 그때의 나는 사람이 떠나는 게 힘들었고, 겉모습이라도 좋으니 나를 사랑해 주던 그 모습으로 남아달라며 속도 없는 겉모습을 품고 살았다. 어차피 떠날 거면 왜 내 곁에 머물렀냐고 악을 쓰며 떠나지 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떠날 인연과 머물 인연을 구분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도 언제나 항상 옆에 있어주던 사람들이 나의 작은 촛불에 땔감을 넣어 큰 화로를 만들어주었다. 너의 따뜻함에 나도 잘 쉬고 간다며 떠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에서 주는 따뜻한 사랑으로 커가던 내가, 나의 불에 쉬어가는 누군가를 만들었다. 주변을 머물던 사람들의 따뜻함이 남아있을 수 있음을 깨우친 것이다.


그러던 내가 아직 완전히 내 안에서 정의되지 않았지만, 정의되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나는 나를 절대 떠날 수 없다는 갓을 말이다. 내가 나를 떠날 수 없다면, 언제나 옆에 있을 사람이 나라면, 계속 땔감을 넣어 줄 수 있는 것이 내가 된다면, 나는 언제나 화로 같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당신들의 쉼터가 돼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에게 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의 행복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게 내가 되어버렸고, 내 행복에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 내가 행복하지 못해 떨쳐낸 관계들은 구태여 잡고 있지 않았고, 내가 행복한 관계들은 최선을 다해 지켜보겠노라고. 내가 떠나보낸 관계에, 내가 끌어안고 있던 관계에 상처받더라도 그들과 나에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과 10대, 20대의 내가 만들어준 화로가 꺼지지 않게 계속 계속 땔감을 넣어주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물론, 두렵지 않을 것은 아니다. 나의 우울이, 불안이 또다시 나를 집어삼킬까 봐, 나의 화로가 연기처럼 사라질까 봐, 길고 깊은 저 먼 어딘가로 나를 데려갈까 봐 무서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의 우울과 불안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아주 살짝은 알 수 있다. 바다를 보러 가거나, 집을 깨끗이 치우거나, 모르는 사람들 속의 또 다른 내가 되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울과 불안을 아주 작은 일들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파괴적인 생각들이 든다면, 모든 것을 멈추고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되내인다. 나는 이런 힘든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버텨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들면 한발 물러서서 나를 보호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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