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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다정 Oct 03. 2022

사소하고 무해한 시간

週刊 ❋ 다정한 다정 ep.01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슬며시 다가와 해롭게 자신을 갉아먹는다.

스트레스는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나를 잠식해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했다.

솔로몬의 지혜로 기적처럼 생겨난 말인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This too shall pass


이 말이 통용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나는 스스로 극복해야만 했다.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나는 [사소하고 무해한 시간들]로 명명했다.

나는 스스로 [사소하고 무해한 시간들]을 찾아 나섰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소한 방법들을 다정하게 나누어 본다.




1. 찰나의 기록법

우리는 모두 찰나를 기록하는 도구를 매일같이 지니고 다닌다. 당장 먹을 음식의 영정사진(음식 인증샷)을 찍기도 하고, 볕에서 식빵을 굽는 길고양이들을 담기도 한다. 그 도구는 바로 '스마트폰' (카메라라고 하자.)

사진의 용도나 목적은 없다. 단지 내가 나중에 보고 기분전환이 될 만한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담아놓는 것이다.

이것을 어디에 올린다, 이걸로 뭔가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도 스트레스가 되니 그냥 무작정 찍어둔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무해한 시간을 보내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저 시간을 보내며 길을 걷다가 만나는 들꽃이 프레임에 안착할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푸른 나무들의 그림자도 나의 찰나가 된다.

최근 나는 새로운 기록 도구를 탐하게 되었다. 마침 아빠가 우리 가족의 찰나를 기록했던 내 나이와 같은 필름 카메라를 나에게 넘겨주었고, 그 도구는 나에게로 와 세월을 담은 새것이 되었다. 그 도구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묻어있고, 아빠의 다정함이 담겨있다. 나는 이 도구를 이제 나의 다정함으로 채우게 되었다.

필름을 카메라에 담고, 필름을 감아 찰나를 담아내는 일은 궁금하고 매력적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참 사소하지만 해롭지 않아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게 된다.


2. 만화책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기분 전환에 만화책만 한 게 없다는 것.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만화책을 본다. 만화책은 모두 사서 보는데, 꽂혀있는 만화책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순둥순둥 해 지지만, 이러다가 책에 질식할 것 같아 최근에는 이북으로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만화책, 웹툰, 이북 등등 어떤 형태든 좋으니 만화책을 보자. 시간이 무해하게 순삭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3. 남이 타 준 커피 (남타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카페를 잘 가지 않는다. 나에게 커피란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서 마시는 일종의 '정신 체벌수(水)' 같은 느낌이라 그냥 아침에 일어나 국민체조(여러분이 아는 그 국민체조 맞다.) 한바탕 하며 몸을 깨운 후 정신을 깨우기 위해 마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마시든 별 상관없어서 카페는 잘 가지 않고 집에 있는 기계로 내려마신다.

그런데 최근에 집 근처에 있는 카페를 자주 가게 되었다. 몇 달 전, 역시나 아침 체조를 한바탕 하고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를 내리려는데 아뿔싸, 커피가 똑 떨어졌다. 시험 보러 갔는데 컴퓨터용 사인펜 안 가져간 것과 맞먹는 상황이라 급하게 지갑을 들고 집 앞 카페를 찾아가 커피를 한 잔 들이켰는데 자본주의의 맛이었나? 아니면 카페까지 걸어가느라 그랬나? 정신이 좀 더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돈 아끼려고 구입한 싸구려 원두 맛에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돈 주고 사 먹는 남이 타 준 커피의 맛이 참 좋았다. 그 김에 카페에 앉아서 보는 우리 동네 풍경이나 산책하는 멍멍이들을 바라보는 무해한 시간도 참 즐거웠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나에게 주는 자유로움은 남이 타 준 커피가 되었다. 물론 자본주의가 주는 자유로움이다. 남이 타 주는 커피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지.



4. 동물들 (특히 고양이)

좋아하는 장소나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고 한다면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이 바로 튀어나온다. 평소에 동물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내가 산책을 하는 이유는 멍멍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고양이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

나는 동물들을 정말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와 호랑이가 1,2등을 다투고, 그 뒤를 이어 고양이와 멍멍이.

동물 가족이 생긴다는 것은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몇 년을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그 고민은 얼마 전에 접어 두었다. 요전에 우리 집에 털복숭이 친구가 왔다 갔는데 이상하게 그날 콧물, 재채기, 눈이 간지럽고 붓는 현상을 겪었다. 그 이후에 그 친구를 또 만났을 때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것을 겪고 이유를 알게 되었고, 슬프지만 털복숭이 친구들과 나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털복숭이와 가족이 될 수 없어 산책을 더 자주 나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동네에는 멍멍이 친구들이 많아졌다. 커다란 푸들 친구, 몸이 얇고 키가 큰 친구, 착한 인절미 친구들은 저녁 아홉 시 이후에 나온다. 정말 귀여운 작은 장모 치와와 친구들은 오후 한두 시쯤 나온다. 허리가 긴 핫도그 친구는 네시쯤 나온다. 그리고 풀숲에 숨어있는 고양이 친구들을 찾아 나서곤 한다. 고양이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더니 사진첩에 제법 사진이 많이 쌓였다. 나는 이 친구들을 만나러 산책을 자주 나가게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동물들이 많다. 산책하는 멍멍이들, 길냥이들, 날아가는 새들, 집 앞 산에 가끔 보이는 고라니와 청설모, 집 앞 내천에 오리 가족.

그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면 사소하고 무해한 시간이 무엇인지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 초록의 식물들

초록색은 참 안정적인 색이다. 식물이 녹색인 이유는 물론 엽록소 때문이겠지만, 녹색 식물을 보면 마음의 안정감과 동시에 이틀 만에 멘솔 샴푸로 머리를 감았을 때 같은 개운함이 느껴진다.

쉴 때는 자연을 많이 보려고 한다. 민들레 씨앗을 따서 부는 것을 좋아하고, 꽃의 이름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소하고 무해한 일들에 내 시간을 쏟는 게 좋다.

나는 초록색을 참 좋아한다.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록의 안정감을 좇게 되었고, 초록에 취향을 넘어선 탐닉에 가까운 집착을 하게 되었다. 내 작업실과 침실은 초록에 잠식당했고, 나는 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잠을 잔다. 나에게는 더없이 안정적인 공간이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식물을 돌보는데 할애한다. 애정을 많이 주어도, 덜 주어도 잘 자라지 않는 까다로운 친구들인데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식물들은 과습과 환기에만 신경 써주면 잘 자란다.

식물들을 돌보는 동안 시간은 무해하게 흘러간다.

눈이 피곤하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초록을 만나자. 초록은 편안하게 안아줄 것이다.



6. 의외로 일에 집중하는 시간

잡생각이 드는 시점을 생각해 보면 바쁘지 않을 때이다. 나의 경험상 무언가를 잊기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집중하기였다.



내가 사소하고 무해한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잊는 방법 6가지를 나누어 보았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당신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관련영상

https://youtu.be/prTddU3ZB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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