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젊은 나
과연 이 시대의 청춘들은 훗날 지금을 떠올리며 청춘이었다고 추억할 수 있을까?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기엔 너무 칙칙하다.
뉴진스와 청춘 : 통념적인 '10대 콘셉트' 아닌 '청춘의 단상' 그리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땅의 청년이려면 참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단군이래 가장 높은 평균 스펙 속에서 적은 것들을 나눠가져야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부모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할 수 없는 초유의 세대이기도 하다. 주변을 보면 다들 정말 열심히 산다. 경력을 만들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고 여행도 가면서. 그래야만 겨우 이 시대 평범의 범주안에 속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어려워진 세상은 모순적으로 청년들을 무력하게 만든 듯 보인다.
이전이라면 감춰졌을 기회의 불평등과 공정하지 않은 결과들을 목격하게 되어버리면서 말이다. 노력을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어버린 탓에, 어차피 승 자가 정해져 있는 경쟁의 들러리이기를 포기했다.
공무원을 꿈꾼다는 이유로 우리 MZ세대는 다른 세대의 비난을 받았다. 다 누리고 자라서 도전을 모르고 편한 일만 찾는다는 오해를 사면서 말이다. 정말로 꿈꿨던 것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아닌 공무원 시험에만 남아있는 공정함이었는데 말이다. 참담하게도 이제는 그 공무원 시험에조차 공정함은 사라졌다.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는 불합격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던 이들이 목격한 건, 결국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게 소위 ‘빽’을 가진 누군가였다는 뉴스여야 했다. 지인에게 고작 9급 밖에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이들이 받는 처벌 같은 건 없는 세상이다.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의 상실감과 좌절감 역시 개개인의 청춘의 몫이다.
동조했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 누구라도 힘이 있으면 자기 사람부터 챙기고 싶은 건 당연하다며 부도덕함에 공감하는 사람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청춘은 아무런 힘이 없다. 어쩌면 의미도 없을지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커녕, 능력이 있어 가능하기만 하면 뭐든 해도 되는 세상이 되어버리는 중이다. 기회의 공정함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노력의 의미를 의심하고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런 사회임에도 나를 포함한 모든 대다수는 그저 무력해있을 수만은 없다. 숨만 쉬고 사는데도 돈이 드는 세상이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해할 권리마저도 있는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라는 환상 같은 희망에 기대며 주어진 오늘과 내일을 살아내는 수밖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그날을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다...오는 듯 오지 않는 그날을. 다 왔다 싶었다가도 또 하염없이 멀어지는 그날을 말이다.
“다시 일어서면 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에서 받는 위로
어쩔 수 없이 이미 청춘 속이라, 청춘이라는 이름처럼 만물이 봄철인 세상에 한 걸음 더 가까워져 보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를 품고 사는 게, 그렇게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게, 슬프고 비참하고 참담한 마지막을 마주하게 된 이 땅의 청년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일지도 모르겠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빚만 점점 늘어난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부디 우리 다음 청춘이라고 불려질 세대는, 그런 봄날의 꽃길을 걸어볼 수 있으리라는 바람과 믿음을 또 한 번 가져보며 오늘을, 남은 청춘을 살아내 보기로 또 한 번 무책임한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