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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 라헬 Jul 28. 2023

천년재수

(라헬의 뉴욕이야기3)

                                                                                                                                  

   3월답지 않게 비가 내린다, 밤새도록. 급기야 새벽쯤엔 여름 장맛비 같이 쏟아진다. 비닐하우스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제법 그럴싸하다. 주루룩, 뚜드득뚝뚝.   예전엔 잠안 오는 밤이면 나를 볶아댔다.  잠이 안와서 큰일인데, 어떻게 해야 잠이 오려나하면서 전전긍긍, 마귀로 변한 얼굴과 하늘 끝까지 올라가 삐쭉 선 머리카락까지 안달을 떤다. 결국 약의 힘을 빌어 노루꼬리만큼의 샛 잠을 자기 일 수였지만. 그러기를 수십 년, 이젠 익숙해졌는지 잠 안 오는 밤을 즐기는 요령이 생겼다. 책도 읽고 글도 써가며, 어느 땐 냉장고를 뒤져 요리도 하니까.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몸을 움직여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요즘엔 몸을 쓰지 않아도 가능한 추억을 불러내서 함께 논다. 내 안에 스며있는 기억들과의 조우는 까만 밤을 보내고 하얀 새벽을 맞아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물론 순간순간 가슴에 스치는 문장을 잡기위해 머리맡에 노트와 볼펜을 준비해놓고, 떠오르는 기억에 미처 못 다했던 의미를 부여해가며. 요즈음 기억 되어지는, 기쁘고서럽고 아름다운 추억은 나를 살고 싶게 하고 쓰고 싶게 하는 조그마한 씨앗이니까.


   밤새워 내리는 비 때문 일 테다. 문득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비를 유난히 좋아하는 여인이 생각났으니까. 가수 윤시내를 열렬히 좋아하는 그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천년재수’라는 별명의 여인이 뜬금없이 소환된다.

   십오 년 전, 그녀와의 첫 대면은 뉴욕에서 건물주와 임차인의 관계로 만났다. 첫인상이 너무 강해 무섭기까지 했다. 짧은 커트머리에 승려복에 가까운 옷을 입은 그녀. 더하여 강한 눈빛은 나를 주눅 들게 했으니.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까, 겁이 많은 나는 감히 범접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뉴욕에서 엄마 같은 둘째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늘 베풀며 살기를 좋아하셔서 언니 옆엔 항상 사람들이 끓었다. 평소 찜질방 가는 것을 좋아했던 언니는 은퇴 후 뉴욕 한인타운에 깔끔한 여성전용 찜질방을 차렸다. 여인들은 그곳을 자기들 집처럼 드나들었다. 일이 힘들고, 외로운 여인들의 사랑방이었고 언니는 모두의 엄마였다. 따듯한 집밥을 무료로 제공했기에 장사도 잘됐다. 언뜻 보기에 쉽고 재미있어 보였다. 삼십 여년 하고 있던 델리가 너무 힘들었던 참 이었다. 아들에게 맡기고 겁도 없이 찜질방을 인수했다. ‘천년재수’ 그녀와의 만남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위함이었다.  “당신은 이런 장사할 그릇이 못돼. 간도 쓸개도 다 빼줘야 하는데. 매일 못하겠다고 울 텐데, 자신 있소?” 단호한 그녀의 한 마디에 자존심이 상했다. 속으로 삐죽 날을 세웠지만 웃으면서 “나도 뉴욕에서 삼십년 장사 한 사람입니다.” 하고 맞섰고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한인상권의 첫발을 내딛은 나는 설레고 떨리는 날을 보냈다. 그런데, 재미있고 쉬울 줄 알았던 가게는 한 달도 안 되어 그녀의 말뜻을 알게 되었으니. 한인들, 그것도 여자들만 상대하는 장사는 쉽지만은 않았다. 오롯이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그녀들은 따듯한 정을 그리워했다. 언니는 그 모든 것을 받아주며 친정 엄마처럼 여인들을 가슴에 품었는데, 나는 많이 부족했다. 그들은 뭔가 트집잡기위해 오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은 트집이아니라 어리광이 포함된 소리 없는 하소연이었음을, 따뜻한 가족의 품이 그리웠음을 한참후에나 알게됐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못하겠다고 우는 날도 있었다. 때로는 손님들과 화도 내며 큰소리도 오고갔으니. 나름 최선을 다했건만, 그들을 품기에 내 소갈머리는 너무 작았다. 정신없이 살얼음판을 딛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건물주의 환갑잔치 초대장을 받았다. 같은 건물의 입주해 있던 사람들이 궁시렁 거린다. 요즘 누가 환갑잔치를 하느냐, 천년재수가 이젠 별짓을 다한다며 입을 모은다. 그녀의 별명이 천년재수라는 것도 그때처음 알았다. 생김새부터 비호감인데 말투도 상대를 깔보는 톤이다. 가끔 대화할 때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늘 반말로 했으니까. 누가 지었는지 기막히게 잘 지은 별명이라고 무릎을 탁 친다. 악명이 높은 만큼 주위에 친한 사람들도 없는 그녀. 마침 내가 그 건물에 들어갈 즈음 일층 뷔페집의 주인도 젊은 여자로 바뀌었다. 그녀는 언제 건물주와 친해졌는지 언제나 붙어 다녔다. 나중에 알았다. 집세를 깍기 위한 로비였음을.


   드디어 말도 많은 환갑 잔칫날, 쉰다섯 명의 초대받은 이들은 일차는 뷔페식당, 이차는 치킨가게 그리고 삼차를 하기위해 지하실에 있는 노래방으로 갔다. 그녀의 건물에 입주한 가게에 골고루 매상을 올려준 그녀를 생각하니 괜찮은 느낌까지 들었다. 노래방에 들어간 우리들은 산더미처럼 싸인 선물 을보고 깜짝 놀랐다. 비누선물세트부터 삼십육 인치티브이까지. 심사위원들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초대장엔 ‘가장 멋있고 예쁜 모습으로 와주셔요’ 라는 글이 있었고, 노래자랑 의상상 장기자랑상도 있었기에. 초대한 쉰다섯 명에겐 각기 다른 선물과 손 편지가 있어서 더욱 놀라웠다. 그 일로 모두는 그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니. 건물에 입주한 우리들 외에 한인사회의 이름 있는 이들도 있었고 외국인들도 있었다. 또한 그녀가 소유한 건물의 관리인, 청소부도 함께했음은 그녀의 됨됨이를 가늠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순서였다. 그녀가 큰절을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무슨 환갑잔치냐, 나중엔 천년재수가 별짓을 다 하는구나 라고 흉보셨죠?” 하며 호탕하게 웃어재낀다. 이어서 이십대 초반부터 뉴욕의 한인중심 후러싱에서 사십 년을 여자 혼자 살며 힘들던 일, 억울했던 일들을 눈물을 흘리면서 찬찬히 그녀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 했다. 억울해서 목소리가 커졌고 동양인라고 무시 당 하는 게 싫어 목은 빳빳하게, 짧은 커트 머리에 눈썹과 입술도 진하게 그렸다고 했다. 건축 잡일까지 안 해본일 없이 밤낮없이 일을 했단다. 코피를 흘리면서 영어와 중국어도 독학으로 했다고 했다. 듣는 나는 부끄러웠다. 이젠 충분히 먹고 살만해서 받은 만큼 나누고 싶어 자리를 마련 했노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자고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자신의 은인이며 보물이라고 고마움도 전하면서. 사람의 목숨은 하늘의 뜻이니 예순살, 건강할 때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먹고 노는 것이 잔치지, 칠,팔십에 상 차려 놓고 우두커니 앉아 술잔 받는 것은 잔치가 아니라며 신나고 멋지게 놀자고 운을 뗀다. 초대받은 외국인을 위한 유창한 영어는 그녀를 더욱 빛나게 했으니. 순간 그녀가 너무 멋있게 보였다. 그동안 힘들게 살아내면서, 이 자리까지 온 그녀에게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날따라 한껏 차려입은 벨벳 드레스와 빨간 립스틱은 그녀의 수고를 지워주는 듯 멋있고 예뻤다. 류계영의 ‘인생’ 과 윤시내의 ‘열애’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가사가 자신의 삶을 대신한다며 눈물을 흘리며 불렀다. 두 곡을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을 하는 그녀를 보며 또 다른, 아니 참모습의 그녀를 본 것 같아 가슴이 저며 오기까지 했으니.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새삼 느낀 날이기도 했다. 그렇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참아온 말 못할 자기만의 여한이 있지 않겠는가.


   그때, ‘ 이렇게 의미있는 환갑잔치를 나도 해야지’ 하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내 환갑이 바쁜 와중에 그냥 지나가 버렸다. 어쨌든 그날 이후, 급격히 뷔폐식당 젊은 여사장과 나와 그녀는 친해졌다.  외로웠던 그녀는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찾았다. 쉬워보였던 찜질방 경영은 너무 힘들었다. 손님도 종업원도 내가 다루기엔 모두 강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녀가 부르면 무조건 만났다. 특히 비나 눈이 오면 우리를 불렀다. 힘들고 고단했던 찜질방 운영도 점점 적응되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렇게 지낸지 5년쯤 되던 해, 그녀는 건물을 처분하고 조지아로 거처를 옮겼는데 요즘엔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다.

   잠 안 오는 밤, 여러 가지 생각은 나를 성숙 하게한다. 그때 그랬지, 이젠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과 다짐도 한다. 때문에 잠 안 오는 것도 축복이라며 나를 토닥거린다. 오늘밤 유난히 그녀의 환갑날이 눈에 선하다. 그녀의 참 모습, 슬픔, 역경을 알게 된 날. 더불어 인생과 열애를 부르며 흘리던 뜨거운 눈물과 그녀의 지난시간들. 까만 벨벳 드레스와 빨간색 립스틱. 천년재수로 불리면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뉴욕을 떠나면서 고마웠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그녀, ‘천년재수’가 새삼 그리운 비 오는 밤이다.

     

*조지아: 미국 동남부에 위치한 큰 도시(유명한 조지아 공과 대학이 있는 곳)

*후러싱: 미국 뉴욕시의 도시로 주로 초기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곳(한인과  중국인 상권의 중심지)




(삼십여년전 뉴욕 의 후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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