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의 추억)
부부인 순삼씨와 어진씨.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종갓집 종손인 순삼씨와 혼인을 한 어진씨는 자연스레 종부가 되었다. 타고난 끼가 있어서인지 종갓집며느리 노릇을 칠십여 년 동안 감당하는데, 한 치의 부족함도 없었으니. 어쩌면, 그녀는 순하고 선 하기만한 순삼씨를 당당한 종손으로 만드는데, 또한 남편의 책임과 의무를 대신 담당했던 여장부였음에 틀림이 없다.
년 중 가족들의 생일과 기제사, 명절 등을 합치면 거의 서른 번 이상의 대소사를 치러야 했는데,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함 없이 잘 치루고 챙겼다. 그 행사들은 친척은 물론이고, 온 동리 사람들의 잔치였다. 그 중에도 시어머니 생신과 추석과 설날은 근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축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사로 바쁜 어진씨는 아랫동서들과 동리사람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이것저것 알아서 척척 잘 해나가기 때문에 신경을 안 썼지만, 유독 모든 음식의 양념(간)은 어진씨가 해야만 하는 그녀만의 영역이었다.
추석의 토란국과 설날의 만두의 속에 넣을 간은 다른 이들이 절대로 손댈 수 없는 그녀만의 성역이다. 토란국이나 만둣국을 위해 그녀의 집 뒤 곁에서 펄펄 끓고 있는 두 개의 가마솥속의 곰국이 우선이었다. 아궁이의 불은 꺼지는 날이 없다. 끓이고 또 끓여 소뼈의 모든 진을 빼내야만 제대로 된 곰국이 되니까. 설날에 음식 장만은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모든 음식의 양은 가늠키 힘들 정도로 많다. 세배꾼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정월 대보름까지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윷놀이와 네 명의 딸들을 위한 널뛰기 때문에, 놀던 아이들도 하루 한 끼 이상 어진씨네서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식혜며 수정과 등 음료를 만드는데 하루, 떡국용 떡을 써느라 하루가 걸릴만큼 가래떡의 양도 대단하다. 소당을 서너 개 마당에 불을 붙여 돼지기름을 내어 녹두빈대떡, 동그랑땡, 생선전, 육전 등을 하느라 또 하루, 밑반찬 등 나물과 고기와 생선요리 그리고 어진씨네 자랑거리인 황태불고기를 만드느라 또 하루, 거의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설 전날 만드는 만두로 설날 음식장만이 끝난다. 산더미 같은 음식은 대보름 전까지 모두 먹어 치운다. 그 후 대보름 음식을 또 장만하는 어진씨네는 먹고 먹이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만이 사는 곳 같았다.
그녀의 딸들은 여섯 살이 되면 삼백장의 김을 재야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옛날의 김은 무척 얇기도 했지만, 모래와 검불이 너무 많아서 양손바닥에 조심스레 넣고 살살 비벼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조금 힘이 과하다 싶으면 김이 찢어진다. 여섯 살 계집아이가 다리를 쭉 피고 앉은뱅이, 김 재는 상에 앉아서 북어 꽁댕이에 참기름 묻혀 김에 바르고, 소금을 적당히 치는 삼백장의 김 재기. 김의 모래와 검불을 제거 하면서 조심성을, 김을 재면서 인내심을, 김에 소금을 뿌리면서 지혜를 터득했으리라. 그 행위는 스스로 터득하라는 일자무식 어미의 산 교육 이었을 테다. 그렇게 지혜로운 교육으로 인해서 네 명의 딸들은 세월을 잘 살아냈다. “자신이 일머리를 알아야 남을 부릴 수 있다.”라는 어진씨의 무언의 가르침도 받았다.
종갓집인 순삼씨네 만두는 김장때부터 시작된다. 만두소용으로 반 접 정도의 김장을 따로 하는데, 고춧가루의 양만 다를 뿐이다. 모든 양념은 똑같이 만들어져 땅 속 깊은 항아리에서 잘 익혀져 설날 전에 얼굴을 내민다. 연분홍빛깔의 김치는 맛이 좋아 쭉쭉 찢어져 사람들의 입으로 연신 들어가곤 했다. 꺼낸 김치는 둥그런 나무 밑둥으로 된 도마로 옮겨져 무쇠 칼로 사정없이 잘게 썰어지면 장정 두 명이 삼베 보자기에 넣고 빨래 짜듯이 얼굴에 핏대까지 서면서 짠다. 뽀송뽀송하게 짜진 김치를 커다란 양푼에 담는데, 양푼의 크기는 두 세 명의 아이가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정도로 크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고기인데, 기름이 섞인 돼지 목살과 소의 목살을 덩어리째 구입해서 그 또한 무쇠 칼로 잘디잘게 다진다. 그래야 고기의 진이 나와서 맛있다고 어진씨는 생각했다. 그 일을 해마다 맡아서 하는 부부는 힘은 들지만, 모두가 만두를 실컷 먹고 또 싸가지고 갈 수 있다는 기쁨에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으리라.
삶아서 식힌 숙주나물, 잘게 다진 당면, 그리고 으깨서 물기를 뺀 두부를 모두 함께 버무리면 흡사 그 양은 작은 동산만큼 많다. 작은 동산을 다섯 봉우리로 나누어 양푼에 담아 놓으면, 아무리 바빠도 그때 어진씨가 나타난다. 저고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리에 질끈 행주치마를 두른 어진씨. 동백기름을 발라 윤이 잘잘 흐르는 쪽찐 머리의 백오십사 센티미터 작은 거인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등장한다.
만둣속의 간을 하기위해. 이미 잘 버무려져 다섯 개의 양푼에 나눠진 거리 위에 그녀는 거침없이 계란과 참기름, 다진 마늘, 소금과 간장, 깨소금을 섞으면서 화룡점정인 방금 갈아온 통후추가루를 뿌린다. 거침없는 손끝의 느낌과 촉감만으로 양념을 아낌없이 부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 한 손사위다. 그 일이 끝나면, 다섯 아낙이 정성들여 치대어 마무리를 하고 맛을 보면, 언제나 모두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똑같은 맛으로 어진씨 만의 깊은 만두 속맛에 정신을 잃고 저마다 혀를 내두른다. 그녀는 만둣속의 맛을 좌우 하는 것은 정성스럽게 담근 김치와 방금 갈아온 통후추 가루 향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의 만두를 입에 넣고 목으로 넘길 때, 혀끝에 닿는 첫 번째의 맛은 알싸한 후추향이 아닐까.
만두소를 만들기 위해 김치를 썰고 고기를 다지는 동안 다른 한 팀은 밀가루 반죽을 하여 만두피 만들 준비를 한다. 그 또한 양이 어마 어마 하지만 그들의 설날 만두 만들기는 당연한 행사로 언제부터인지 모를 당연 지사가 되었다. 잘 반죽된 밀가루 반죽은 홍두께로 얇게 밀어, 둥글고 넓게 펴서 만두피용 주전자 뚜껑으로 또각또각 피를 만들어, 만두 만드는 팀으로 넘겨준다. 또 한 팀은 밀가루 반죽을 엿가락처럼 길게 만들어 칼로 동강동강 썰어서 홍두께로 밀어 적당량의 밀가루를 뿌려서 그 또한 만두 만드는 팀으로 넘겨준다. 어진씨가 원하는 만두는 속이 꽉찬 왕만두였는데 서너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른 그런 크기의 만두였다. 잘 만들어진 만두는 부엌으로 옮겨져 가마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물속에서 삶아 건져서 찬물에 휘리릭 돌린다. 그것을 뜨거운 김을 뺀 후, 참기름을 살짝 바른 다음, 그네들만의 방법으로 서로 붙지 않게 냉장고 아래 칸과 장독대위에 보관하게 된다.
육십여 년 전, 어진씨네는 미제 월풀 이라는 하얀색 삼층 냉장고가 있었는데 맨 아랫칸이 서랍형으로 된 야채보관함이었다. 설날 즈음의 그곳은 오로지 시어머님의 먹거리만 보관 되었던 곳으로, 어진씨외에는 아무도 열거나 먹을 수도 없는 효심의 창고라 하겠다.
만두를 삶는 동안 터진 만두는 그날 수고한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었다. 그것은 뒤꼍의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곰국을 퍼 와서 썰어놓은 떡과 같이 넣고 끓여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면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아졌다. 어깨춤을 덩실 거리면서 달과 별이 뜨도록 맡은 일들을 기꺼이 하는걸 보면 온 동리에 순삼씨와 어진씨의 인심이 그득 해서 일 테다.
어진씨는 이른 나이에 딸만 넷을 내리 낳았다. 그래서인지 거의 같은 시기에 사위도 보게 되었는데, 어느 해 부턴가 세 명의 사위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처갓집에 세배를 오기 시작 하였다. 그때부터 어진씨는 사위를 위한 만두를 세 개를 직접 만들었는데, 그 만두는 아주 매운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만두였다. 여느 때처럼 세 명의 사위가 만둣국을 더 청하였고 어진씨는 시치미를 떼고 ‘사위 사랑 만두’를 내어 준다. 사위들만 모르는 눈짓으로 모든 이들이 사위들의 반응을 보려고, 모여서 숨을 죽이며 지켜본다. 어진씨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사위들의 표정울 살펴보는 장난꾸러기이기도 했다.
이 때, 사위들은 첫 수저부터 매워서 뱉을 수도, 넘길 수도 없는 지경이었으리라. 사위들의 얼굴을 보고 순삼씨는 물론 새뱃꾼들과 온 동리사람들은 즐거워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다음해부터는 절대로 속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사위들은 다음 해에도 속았다. 그 이유는 처음 만둣국에 사위용 그 만둣국을 상에 내놓았던 슬기로운 어진씨 꾀의 한 수였으니. 한 차례 또 기암을 한 사위들은 이후로 장모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속아주는 척 했다. 사위의 마음을 눈치 챈 어진씨는 그럼에도 세 개씩만 사위만두를 만들었는데, 세쨋딸이 결혼 오 년 만에 혼자가 된 이후엔 그 만두를 결코 만들지 않았다. 그 웃음과 장난끼도 함께 사라진 것이 어미의 아픔이리라.
설날 아침. 순삼씨가 차례를 지낸 후, 부지런히 동리 어른들께 세배를 다녀온다. 집안은 온통 세배꾼들로 북적이니까. 그들은 한 결 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모든 음식이 맛이 있지만, 만두 맛은 조선에서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안 그래도 누구든지, 순삼씨네 대문을 나설 땐 한 보퉁이씩 다 들려 보낼텐데...
설날이 지난 후에도 동리어르신들은 “만두는 순삼이네 만두가 최고야!“ 하시며, 하루 한 끼는 무조건 오셔서 만둣국도 드시고, 앞마당에서 윳놀이도 하시면서 정월달을 보내신다. 그때쯤 어진씨의 시어머니도 토끼털 양단 조끼에 조바위를 쓰고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친구 할머니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시곤 했다. 순삼씨와 어진씨는 여전히 장사로 바빠서 제대로 만둣국 맛이라도 봤을까. 이제야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벌써, 그녀의 만두 맛을 본지가 오십 년이 지났음에도, 나는 만두를 할 때 통 후춧가루를 무지막지하게 넣는다. 그러나 그 시절 시장에서 갈아온 알싸한 후추의 맛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왜 어진씨가 만든 만두를 그 옛날 동리 어르신들은 왜 순삼이네 만두라 칭하셨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추억으로 밀려와 내 옆에서 똬리를 튼다. 그 때는 가장의 이름만 불렀고, 어쩜 어진이라는 이름을 몰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런 분들의 딸이 됨을 넘치는 복으로 이제야 깨달았으니.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늦은 때는 없다 하듯이 삶의 본보기가 되신 그 분들을 차츰 닮아 가리라.
문득, 오늘 따라 어진씨가 더 그립고 많이 보고 싶다. 곧 구정이다. 이번에는 어진씨표 만두를 만들어 봐야겠다. 사랑하고 내게 힘이 되어주는 글벗님들과 착한 조카 딸 그리고 조카 내외와 그 시절을 추억하며 함께 맛보리라. 나박나박 시원하고 달콤한 나박김치를 곁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