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 라헬 Jun 21. 2023

방구석 여행

(뉴욕의 방구석 여행)

  지금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무릎이 멀쩡한 사람이다. 산책하고 싶을 때 혹은 어딘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지체 없이 행동에 옮기는 사람 말이다. 제주도로 일 년 살이 하러간 친구가 내게 핀잔을

 준다. ‘너는 행동으로 옮기는데 무슨 생각이 그리 많니’라고. 혼자인 내가 눈에 밟혀서 여러 번 청했었다.

 경치 좋은 곳에 와서 푹 쉬었다가라고 하는데도 주저하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가고 싶지만 선 듯

 나서지 못하는 내 상황을 알면서 하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어지간히 섭섭하다.





   길을 떠나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이것저것 자기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욕심껏 벌려놓은 일들 때문이다.

 또한 걷는데 자신이 없어서 주위에 부담이 될 까 두렵다.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때문에 자신 있게 길을 나서지 못함이 그 두 번째 이유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어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띄니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때문인지 나는 요즘 방구석 여행에 흠뻑 빠져있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이 많기에 하루에도 수십 곳을 여행한다. 이곳저곳을 영화로 음악으로 또는 책과 TV로 여행을 한다. 그중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상상여행이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어느 곳에 빠지면 그곳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걷고 또 걷는다. 상상 만으로도 행복하니까.




    비오는 저녁 이태리의 목노주점 골목, 허름한 재즈 바에서 메모지에 뭔가를 끄적이며 앉아있는 나를 그려본다. 초저음의 묵직한 첼로소리가 끊어질 듯 흐느끼는 제목 미상의 재즈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고 있다. 다른 또 하나의 나는 스페인의 깊은 산골에서 원주민들과 웃고 떠들며 데킬라를 마시고 있는 모습도 그려본다. 레몬즙과 굵은 소금을 뿌려 장작불에 구운 아사도를 왼손에 들고 뜯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물론 오른손엔 아사도와 어울리는 소금과 커피를 살짝 묻힌 데킬라잔을 들고서 말이다. 와인과 데킬라, 상상만으로도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린 나다. ‘이게 행복이지’라며 손에 든 술잔을 높이 들고 ‘브라보’를 외친다.




   가고 싶은 곳은 많지만 오라는 곳이 없는 요즈음, 방구석 여행은 내게 적잖은 즐거움을 준다. 더하여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그 상상으로 인한 행복 때문에 전혀 외롭지도 서럽지도 않고 그저 행복하기만 할뿐이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게다가 그 모든 것이 무료라는 매력은 그것으로부터 나를 떼어내기엔 그 어떤 이유로도 중과부족이다. 더하여 그 유혹은 점점 중독성이 강해져서 밤이고 낮이고 나를 세상 이곳저곳으로 데려가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또 있겠는가. 걷다가 시장기가 돌면 사발 면과 즉석 밥으로 해결하면 되니 무엇을 먹을까 고민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또한 방구석여행의 더없는 매력이리라.


 



   사발면과 즉석밥은 때때로 많은 변신을 한다. 프랑스에서는 달팽이 요리로 일본에선 와규로 뉴욕에서는 스테이크 그리고 지중해에서는 수많은 생선 요리로. 이왕 하는 방구석여행, 상상만으로 부족 할 때는 영화와 음악으로 떠날 때도 있다. 그중 ‘맘마미아(Mamma Miai,2008)’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2010)' 는 (영화는) 음악과 여행영화의 끝판답다. 제목 그대로 이탈리아에서 먹고, 인도에서 기도하고, 발리에서 사랑한다는 영화 Eat Play Love는 개인적으로 나를 매우 흥분하게 한다.



   달콤한 여행을 하고픈 마음이 더욱 나를 성가시게 할 때 는 전자레인지에 팝콘을 튀기고 이 시간에만 허락되는 얼음 가득한 탄산수를 머리맡에 나두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본다. 어느새 나는 eat play love의 주인공 ’줄리아로버츠‘로 빙의가 된 듯 맘껏 영화 속을 여행한다.  또한 음악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플 때는 ’맘마미아가 최고다. ‘아바’의 흥겨운 노래와 그리스의 풍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깨춤이 절로 나게 하는 진정 유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고. 삼십 년 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본 ‘맘마미아’는 아직까지 내 가슴에 남아있다. 전 세계에서 관광 온 모든 사람들이 좌석에서 일어나 시작부터 뮤지컬이 끝날 때 까지 춤을 췄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니까. 허나 영화로 본 맘마미아의 배경이나 음악은 뮤지컬보다 생생하게 그리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니, 어쩜 그 감동은 내게 더 진하게 남아있을 수 있을지도



.   

   날씨가 궂다. 비는 안 오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다. 내 마음이 집밖으로 도망치고 싶단다, 때문일까. 오늘은 방구석 여행이 내키질 않는다. 이 또한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하지만 상상 속으로 다시) 배낭에 메모지와 볼펜 그리고 읽다가 만 책 ‘혼자가 혼자에게‘를 쑤셔 넣고 길을 나선다. 서울역은 집에서 멀기에 가다가 변심할까 두려워 일단 가까운 동부버스터미널로 간다. 목적지 없이 가는 여행이기에 가장 먼저 버스표를 살 수 있는 곳이 오늘의 여행지다. 버스표를 사고 보니 강릉행이다. 최고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볼 것과 맛 집을 검색한다.




   유명한 커피공방과 북 카페가 지천인 강릉은 매력 덩어리다. 첫 경험인 바닷길기차 여행을 염두에 두고 가야할 곳을 메모지에 적는다. 년 전에 가봤던 정동진 바닷길, 바닷길 옆 하얗게 부서지던 파도와 산위에서 부는 고마운 바람은 아직도 그곳에서 다시 올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버스를 타고 주문진 어시장에 가서 도루묵 구이도 먹어야 한다. 앗! 사임당 시문회 회원인 내가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의 생가인 오죽헌을 빠트리면 말이 되겠는가, 잊지 않기 위해 메모지에 재빨리 적는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바닷길 기차 여행 중 나는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한다.




   가지고간 책도 읽고, 동해 바다를 보며 머릿속 가슴속을 방황하는 낱말들을 꺼내서 메모지에 적고 또 적을 것이다. 짧아서 아쉬운 바닷길기차 여행이 끝났다. 갈 길 몰라 서성이던 내 발걸음은 어느새 바닷가 횟집에 자리를 잡는다. 회 한 접시와 소주를 벗 삼아 낙조를 보며 호수에도 달이 있다는 경포대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혹시 소주잔 안에 달이 있을까 들여다보며 한잔 또 한잔 마신다. ‘이렇게 하루가 짧을 줄이야’ 라며 새삼 시간의 무게를 마음으로 저울질해보는 진실의 시간. 참 아까운 시간들을 헛되이 보냈음에 죄책감  마져 느끼며 남은 나의 시간에 사랑과 정성을 다 하리라 다짐한다.




   서울로 돌아 올 때는 기차를 이용한다. KTX는 편하고 승무원은 친절했다. 그러나 기차에서 맛보던 추억의 삶은 계란이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어쩌랴 코로나 때문인 것을. 그러나 기어코 ‘칠성사이다’는 몰래 마셨다. 다음 기차여행은 부산으로 마음을 정하고 두서없이 적었던 메모장을 꺼내본다. 왕복 7시간의 강릉 여행 중 가슴 언저리에 맴돌고 있는 낱말은 시간, 바다 그리고 소주와 메모였다. 흐린 날씨 탓에 밤하늘의 달은 못 봤지만 어느 정도 정화 된 마음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왕십리역에서 5번 전철로 환승을 한다.




   이제 삼십분 후면 작지만 나만의 공간, 나를 위한, 나의 집에 도착한다.

강릉 안목해변에서 마신 핸드드립 로스팅 커피와 달콤한 타라무스, 도루묵 구이와 초당 순두부, 초록빛 바닷물과 하얀 파도, 산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들의 느낌은 짠한 소주맛과 함께 내 머리와 가슴에서 영원히 잊혀 질 리 없는 추억이리라.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 지금까지 나는 열일을 제켜 놓고 강릉여행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 상상으로 했던 방구석 여행을 마감해야할 시간이다. 이 시간 이후 나는, 나의 또 다른 최상의 휴식인 드라마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방구석 강릉 여행에서 맛보지 못한 또 다른 그 무엇을 드라마에서 찾으며 어느 결엔가 잠이 들것이다. 멋있고 맛있었던 알찬 하루였음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이제 오늘의 방구석 여행을 마감해야겠다.



*아사도: 두껍게 썬 소고기에 소금과 레몬즙을 뿌려서 장작불에 구워먹는 아르헨티나의 전통요리

(주로 통 갈비로 구워 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