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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백수가 됐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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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게 된 목적 : 


alookso에서 시작하는 에세이 네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쉼을 소재로 써 보았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이번 글을 쓰는데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쉼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느라 멍하니 시간을 보내느라. 이 주제를 놓고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전을 선택했다. 사전에는 쉼에 대해 꽤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쉼은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없으면, 쉼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충분히 기다린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열심히 달리기에만 급급했던 내 삶에 진정한 휴식이 찾아온 건 코로나 때문 혹은 덕분. 원래 잠깐 쉬면서 영어 공부나 할까 싶었는데,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백수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이렇게 오래 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젠장. 쉬는 법을 모르니, 쉬는 시간이 주어진들 제대로 쉴 수가 있나. 다시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잘 쉴 자신이 없기도 하고. 쉼에 대한 이야기, 에피소드, 생각, 고찰 등이 궁금한 분은 본편을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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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얼룩소에서 진행하는 [얼에모], 얼룩소 에세이 쓰기 모임에 참가하는 글입니다. 소재 다섯 개(글 - 일 - 돈 - 쉼 - 나)에 대해 한 달에 2회가량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합평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경어체를 사용하던 평소와 달리 부득이 평어체를 사용하게 됨을 양해 바랍니다.


=====


이렇게 오래 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0.

얼마나 기다려 줘야

충분히 기다린 걸까


쉼, [쉬다]의 명사형인 이 말은 꽤 다양한 뜻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와 있는 순서대로 적어 보면, 음식이 쉬다, 목이 쉬다, 숨을 쉬다, 누워서 쉬다, 피륙을 쉬다 총 다섯 가지 뜻이 나온다. 쉼은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뜻이 있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결과에 도달한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음식은 천천히 쉬면서 특유의 냄새를 낸다. 목이 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헉헉대던 숨은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쉴 수 있게 된다. 번아웃이 오고 나면 오랜 시간 쉬어야 한다. 피륙의 빛깔을 곱게 하려고 뜨물에 담가두는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니까 진정한 쉼이란 충분한 [기다림]으로 만들어진다. [쉬는]에 [시간]이라는 말이 붙는 게 자연스러운 건 이 때문인가. 다만 너무나 오래 쉬다가, 쉬어 버리면 조금 곤란하겠지.


태어난 이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뭐, 나만 달리고 있었겠나. 내 옆에 있는 놈도 달리고 있었으니까 나도 달리고 있었겠지. 그런데 나는 남다르게 달리고 있었던 것 같긴 했다. 다른 사람이 가던 길을 따라가는 걸 유독 싫어했으니. 호불호가 명확했던 외골수였기도, 칭찬 한 번에 일희일비하기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 없이 우직하게 앞만 보고 달려갔기도, 열정이라는 핑계로 마음껏 싸가지 없이 굴기도.


돌아보면 별거 아니지만, 나름의 굴곡 진한 고난을 겪고 나서야 나는 알았지. 나는 아직 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걸.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던 내가 비로소 멈출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끼던 사람과 일자리를 모두 한꺼번에 잃고 나서야 가능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며, 언제 이 방황이 끝날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지난 방황의 시간은 무작정 달리고 있던 내가 강제로 선물 받은 쉼이었는지도.




1.

이렇게 오래 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딱히 쉬어본 적 없이 쭉 달려오느라 나에게 강제로 주어진 쉼은 꽤 어색했다. 이 시기를 어떻게 쉬어야 잘 쉬었다고 소문이 날까 하면서, 선택했던 건 영어 공부. 시험 성적을 받기 위한 영어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실제 영어 사용 능력을 향상하고 싶었다. 읽고, 듣고, 쓰고, 말하고.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 두면 언젠가 써먹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았고, 영어 때문에 살아왔던 지난 세월에 후회가 많았기에 한 번쯤은 온전히 영어 공부에만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


영어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몇 번 발목 잡혔던 터라, 지난 후회의 순간을 뒤늦게나마 극복해보고자 한풀이로 시작했었는데. 한이 풀릴 때까지만 잠깐 공부 좀 하다가 재취업하여, 다시 열심히 달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시작한 영어 공부가 이렇게나 길어질 줄은 그땐 몰랐다. 다름 아닌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던 것.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끝날 줄 몰랐다. 있던 직원도 코로나 때문에 전부 내보내는 판에, 재취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그렇게 영어 공부는 강제로 연장되었다. 이제 영어 공부에 대한 한풀이를 다 했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까지 더 많이 안 해도 되는데.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게임을 한 것처럼, 코로나는 열심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던 우리의 삶에 브레이크를 선물해 주었다. 모두 자기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는 게 너무나도 어색했지만, 멈추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그렇게 하염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자보기도 하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어 보기도 하고. 참 열심히 쉬었다. 수입이 없는 삶은 불안했지만, 돈 걱정만 없다면 계속 이렇게 쉬는 것도 꽤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래 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코로나 기간 얼추 도합 2년 가까이 무직 상태로 보냈다. 마음은 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었지만, 몸 하나만큼은 진짜 편했다. 자고 싶은 만큼 푹 자고, 먹고 싶은 만큼 양껏 먹고, 놀고 싶은 만큼 신나게 놀았으니. 이렇게 막 쉬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 쉬었다. 쉬는 건 아무리 많이 쉬어도 절대 지겨워지지 않는다던데, 과연 그러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서서히 편안함을 잠식해 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했고.




2.

쉬는 법을 배워 봤어야

어떻게 쉬든 말든 하지


코로나 때문에 찾아온 공백기를 보내면서 공백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의 삶에 쉼이 허락되는 구간은 얼마나 있을까. 상급학교 진학에 생겨났던 공백기, 취업을 앞두고 생겨났던 공백기, 군 복무 전후로 시간을 보냈던 휴학. 이런 시기에 많이 쉬는 것 같은데, 이런 시기는 아무래도 좀 애매한 시기로 생각되는 법. 애매한 공백기를 최소화하고자, 운전면허를 따거나, 어학연수를 비롯한 국내외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 같고.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멍하게 보내는 쉬는 시간은 과연 무의미한가.


쉼은 종종 보조 수단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쉼을 재충전이라고 묘사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왜 쉼은 재충전이어야만 할까. 쉼, 그 자체에는 의미가 전혀 없는 걸까. 지금은 풀소유로 유명해진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미루어 볼 때, 멈춰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기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금 느려졌지만, 옆을 보면서 함께 달리는 여유가 생겼다. 내 방식만 무조건 옳다고 피력하기보다는, 각자만의 일리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도 갖추게 된 것 같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보냈던 시간이 나를 점점 다르게 빚어가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매일 불안함에 잘 쉬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때 더 잘 쉬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 이제는 지나갔던 2년의 휴식기가 그리워진다. 다음번에 또 한 번 쉴 기회가 오더라도, 잘 쉴 자신이 없기도 하고. 쉬는 법을 배워 봤어야 어떻게 쉬든 말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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