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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Aug 22. 2022

엄마의 자격


 나는 항상 말하곤 했다. 나 같은 게 정상적인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기적이고, 그래서 제 멋대로 인데다가, 건강하게 살고 있지도 돈이 많지도 않았으므로.

 그런 나에게 천사 같은 생명체가 보란듯이 찾아왔다.



 대차게 시작한 이유식은 다시 쌀미음으로 도돌이표를 맞이했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자연히 따라오는 거라던 보드라운 얼굴에 침독은 차치하고서라도, 배니 등이니 하는데에 발갛게 뭔가 올라오는가 하면, 허벅다리는 건조한 것처럼 푸석푸석하고 조금 갈라져 보이기까지 했다. 문제는 아기의 이 변화가 단순히 소화기능 부족인지, 알러지 반응인지 알 길이 없다는 거였다. 피부 트러블 이외의 문제가 없었으므로 소화기능 장애로 판단하고 부드러운 이유식으로 재시도하기로 했다.

 일찍부터 분유를 먹은 아기이기에 혹여나 영양이 적진 않을지, 철분이 부족하진 않을지해서 먹인 소고기가 아직은 소화시키기에 부담스러웠던 걸까. 스트레스 따위는 조금만 더 참아내고 모유를 좀 더 오래 줬더라면, 이유식도 다짐했던대로 천천히 아기 속도에 맞춰주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조급했던 건 아닐까. 광합성을 시켜준답시고 하품하는 아기를 재우는 대신 매일 산책시킨 것, 내가 심심하다고 남편이 쉬는 날마다 차를 태워 나간 것, 이유식이 몸에 묻었다고 매일 목욕을 시킨 것, 조금의 칭얼거림에 자꾸 기저귀를 갈아버린 것, 자연히 잘 뒤집게 될 아이를 운동시킨답시고 자꾸만 뒤척거린 것. 뭐든 문제가 될 수 있는것만 같다.

 아기는 200일을 바라보고, 나름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고, 옹알이도 꽤 하는데도 난 아직 제자리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모르겠다.


 이 녀석이 뭘 원해서 칭얼거리는지 아픈 건 아닌지 나는 자꾸만 걱정스러운 얼굴을 아기 앞에 내놓는다. 그러다 아차 싶어 웃는 얼굴을 보이지만, 이미 아이는 내 표정을 읽었을거다. 혹시 불안한 내 마음이 아가에게 전달되지는 않을까 하며 멍청하게 또 염려를 얹는다. 참으로 배움이 없는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에는 많은 죄책감이 뒤따르는 것 같다고 전부 다 아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사실 그냥 지껄인 것이었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누구 말마따나 나는 육아도 글로 배워서 그것대로가 아니면 계속 불안해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기본 출력값이었다. 아기가 성장하며 당연히 지나가는 것들을 가지고도 이지경이라면, 이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잘 돌보아 줄 수 있을까? 내가 먼저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매일 억지로라도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속삭여보지만, 붉게 튼 아기 얼굴을 보거나 거칠한 다리를 매만질때마다 가슴에 날카로운 칼이 하나씩 꽂힌다. 어쩌다 아기가 손으로 제 얼굴을 긁기라도 할 때면, 나는 제 때 손톱 정리도 안해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다. 안다. 아기들의 피부는 마치 개복치와 같아서 조금이라도 자극이 있으면 빨갛게 올라오기도 하고, 쉽게 건조해 지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새살이 올라온다. 그렇게 객관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다시 나는, 괜한 걱정으로 아기에게 불안감을 전염시키는 나쁜 엄마가 된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기승전결론은 ‘나는 나쁜 엄마다.’이다.


 며칠 전부터 우유를 먹거나 이유식을 먹을 때면 아기가 귀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열도 없고, 고름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중이염은 아니겠지라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빈도가 잦아지고 점점 더 심하게 잡아당긴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더 답답할 노릇. 감정표현이 부쩍 풍부해진 아가는 웃기도 잘 웃지만, 짜증을 낼 때도 열정적이다. 그게 아이가 불편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인지, 이가 나려고 하는건지 도통 모르겠다.


 나는 대뜸 면허가 없는 자신을 탓한다. 병원에도 혼자서는 데려갈 수 없는 현실. 유모차를 끌고 간대도 불과 1킬로미터 밖부터는 인도가 없다. 한두번인가 자전거 도로로 유모차를 야심차게 끌고 가봤지만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안전한 공원에 도착하기까지 유모차를 얼마나 세게 붙잡았던지, 두손에 땀이 흥건했다. 카시트가 달린 택시도 찾을수가 없었다. 아기를 안은 채 차를 탔다가 사고가 나면, 아기가 엄마의 에어백 역할을 하는거란다. 그 말이 무서웠다.

 남편은 비교적 근무를 조정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관리자의 자리에 있다보니 녹록지가 않다. 정기검진 병원 예약은 뒤로 밀리거나 취소되기 일쑤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는 또 나를 탓한다. 차가 없으면 아이를 병원에도 데려가지 못하는 곳에 살면서 면허도 없다니 최악이었다. 결국 나는 또 나쁜 엄마다. 결국 내일 남편의 출근전에 데려가자고 약속하고 만다.

 

 호주는 한국과 같은 소아과 시스템이 아니어서, 전담 일반의가 우선적으로 진료를 한다. 진료 후에 전문의의 확인이 필요하다 여겨지면 진단서를 적어준다. 걱정이 앞선다. 내일 가게 될 정기검진은 이 일반의도 아니다. 국공립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기관에서 간호사 혹은 미드와이프가 일반적인 아이 발달 사항을 체크해주고, 궁금한 점을 질의하는 정기적인 영유아 검진이다.

 만일 아기 귀에 정말 문제가 있는거라면, 다시 일반의 예약을 해야하고, 전문의의 소견을 듣기까지 앞으로 2~3주가 걸리는거다. 그나마 이 지역은 비교적 수요가 많지 않아 한 달 이내로 보지만 대도시는 두세달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봤다. 전문의를 만날 때쯤이면 아플만큼 아프고, 고생할만큼 고생하고 거의 다 나아갈 때쯤이 된다는 것. 이렇다보니 의사는 완치 판정을 받으려고 만나는건가 싶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니 이번에도 역시 내 탓이다. 엄마가 굼떠서, 일처리가 빠르지 못해서 고생만 하고 있는 가여운 나의 작은 인간.

 





 잠든 아기의 숨이 들락날락하는 작은 가슴을 보며 하나님에게 빌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게 보내신 이유가 있으실테죠.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연약한 천사를, 나보다 더 잘 돌보아 줄 수 있는 엄마에게 보냈어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지 않으신가요? 저에게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미련하고, 우둔해서, 스스로를 믿지 못합니다.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하고.




 어제도 울었다. 산후우울증 같은 건지 감정조절이 쉽지 않다. 아기 몸에 생기는 작은 변화에도 나는 최악의 수를 생각하며 걱정을 산다. 그리고 별일 아닐거야 하며 태연하게 구는 남편이 이번엔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 의연함이 가끔은 고맙기보다 밉다. 해서 외롭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가에게 기댄다. 엄마 좀 안아줘. 엄마 좀 토닥여줘. 그건 그 아이의 몫이 아닐텐데도, 겨우 내게 기대야 설 수 있는 아가를 꼭 안고 나를 충전해달라 응석을 부린다. 그러고나면 칭얼대던 아이도 날 보며 활짝 웃어보인다. 그리고 그 웃음에 나는 그야말로 충만해진다.


 아기는 아직 어리지만, 배부르고 등따숩게만 해준다해서 자동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이 작은 존재도 만류의 영장인 인간이기에 항상 더 고등의 행복과 즐거움을 갈망하는 것 같다.

 이제 170일째, 마흔을 바라보는 나는 내가 가는 이 길이 엄마로서 맞는지 잘 모르겠다. 누가 말해주면 좋겠다. 마라톤 선수처럼 페이스 메이커가 있으면 좋겠다. '지금 잘하고 있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 '지금 좀 속도를 내보자.'.

 그리고 가끔은 아주 잘했다며 나를 안아주면 좋겠다.




 나는 아직 엄마의 자격이 없다. 나는 아직 무지하고, 너무나 감정적이며, 쉽게 상처받는다. 계획에서 벗어나는 모든일들에 화가나며, 어울리지 않게 귀도 얇다.

 하지만 나는 안다. 때때로 무심해보이는 내 동반자가 곁에 우뚝 서 내가 태풍에 무너지려 할 때 받쳐줄 것이다. 가끔 부서져 흩어지고 있을 때, 나를 아끼는 마음들이 모여 나를 단단히 뭉쳐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라지고 싶을 때, 내 작은 천사가 까르륵 웃는 소리에 이끌려 나는 언제든 다시 돌아와 두 발 단단히 세우고, 마침내 엄마가 될 것이다.

 험난한 세상에서 행복해지려 애쓸 내 딸아이를 위해 나는 어제보다 더 든든해져야겠다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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