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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하늘 흰구름 Apr 24. 2023

감정의 기억

'이토록 평범한 미래'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라는 도구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표현한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설렘, 상쾌함, 즐거움, 두려움, 아픔 등 수 많은 감정과 느낌들을 표현한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와 한 공간에서 잠깐의 정적과 있다 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아이 입꼬리의 변화로,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으로, 눈썹과 미간의 떨림으로 알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실은 그냥 그 온기로 느낄 수 있다. 자연스레 말이다. 

그러다 아이가 크면, 엄마는 아이의 언어에 의지한다. 

아이에게 즐거운지, 슬픈지, 아픈지, 물어보고 그 언어를 믿는다. 

언제부턴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공기와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이가 언어를 할 수 있기에, 그리고 인간은 쉬운 방법에 더 적응이 빠르기에, 

아이가 언어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함에도 우린 그 언어에 의지한다.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는데 왜 불안해지는가? ‘행복’이라는 말이 실제 행복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대신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그뜻이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말로는 골백번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괴로운 까닭이여기에 있다._'이토록 평범한 미래' 소설 중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아이에게 ‘여기봐~웃어봐~’ 하자 아이가 개구장이 표정을 하며 웃고 있는 사진들이 있다. 

그리고 달려오며, 이야기를 하며, 무언가를 만들고 바라보며 자연스레 웃고 있는 찰나를 담은 사진들이 있다. 두 사진에서 나는 모두 아이의 웃음을 볼 수 있지만 느껴지는 온도는 다르다. 

그 온도를 만들어 낸 아이의 감정도 달랐을 것이다. 

‘꽤 오래 동안 아이의 언어에 의지해 그 아이의 얼마나 많은 감정을 놓쳤을까’



이 책 속의 8편의 단편 소설들은 기억과 시간을 해석하는 8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놓인 순간에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로 두 번째 삶을 살아간다. 

처음에 나는 단순히 이를 ‘희망’이라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고 완벽히 그 단어로 정의할 수 없지만, 

딱히 그 것보다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다시 살아가는 삶이지만 너무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8개의 삶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이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소설을 다시 보고 넘기고 또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새겨 보면서도,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냥 흘려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자꾸 자꾸 소설에 내 시선을, 내 손을 머물게 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나’의 여자친구 지민은 편집자인 ‘나’의 삼촌을 만나 엄마의 소설 ‘재와 먼지’를 찾는다. 유신정권 하에 판매 금지된 이 책에 등장한 연인은 둘의 사랑이 끝나는, 둘이 공유하는 시간의 끝이 다가옴을 깨닫고 동반 자살을 결심한다. 

이 대목에서 지민은 삼촌에게 자신도 동반 자살을 결심하고 있다며 고백하고, 삼촌은 판타지 소설인 ‘재와 먼지’의 줄거리를 들려준다. 

줄거리에서 연인은 동반자살을 결심한 직 후 둘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거꾸로 다시한번 살아가면서 동반자살 하는 그 날이 첫날로, 그리로 그들이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찬 그 시간이 마지막날이 되어 가는 경험을 한다. 

둘은 가장 좋은 게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알게 되며, 그들이 만난 시간으로 되돌아가 다시 세번째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끝이 난다. 

삼촌은 첫번째 삶은 세번째 삶과 같은 방향이지만, 거꾸로 돌아갔던 두번째 삶처럼 미래를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미래를 기억한다’를 삼촌은 이렇게 해석한다. 

소설 속 연인이 결국 알게 된 건 ‘시간이란 없다’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 의미를 두고 과거에서 현재의 문제점을 찾으려 한다고… 

지민의 엄마가 20년 뒤 지민의 미래를 기억했다면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미래와 함께 등장하는 ‘기억’이라는 이 단어는 보았던 것, 들었던 것, 경험한 것들에 근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서, ‘미래를 기억한다’를 ‘미래를 꿈꾼다.’라고 적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지… 

사실 소설을 다 읽고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해 계속 책상을 두드리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 것이 김연수란 작가의 힘이구나 싶었다. 

끝까지 답을 얻을 때까지 손을 뻗어야 내가 잡을 수 있고 비로소 내 안에 자리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김연수의 작가의 힘인 듯 했다. 

그 것이 어떤 답이든, 내 안에 무언가 자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소설 제목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미래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결국 작가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었겠다. 

평범하기에 구지 꿈꾸지 않아도, 상상하지 않아도, 억지로 다가가려 하지 않아도, 결국은 내게 오는 것이라 그 것이 온다는 것만 기억하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라는 것이 참 정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올 평범한 시간을, 아니 평범한 순간을 찾으라 말하고 싶어 나머지 7편의 소설을 담은 게 아닐까 싶었다.   


‘난주의 바다’에서 은정은 아픈 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난주의 바다에 이른다. 

그 바다는 조선시대 명문가 딸인 정난주가 가문이 몰락하면서 아들을 지키고자 뛰어든 곳이다. 

은정은 그 바다 앞 섬에 정착하여 추리소설 작가로 살아간다.

 은정은 정난주는 사실은 바다에 뛰어들기 전 ‘자신이 살아야 아들이 산다’는 믿음으로 다시 살아 갔을 것이라고 믿고서 자신도 거기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세컨드 윈드’ 운동선수들이 운동하는 중 고통이 줄어들고 계속 하고싶은 의욕이 생기는 2차 정상 상태를 알려준 대학 동기 정현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은정이 기억하는 평범함은 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저 지나가게 놓아두는 그 고요함, 세컨드 윈드가 불어온 상태 그대로 어떤 선택과 후회도 없이 놓아버리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살해했단 오해를 받아 아버지를 지켜내온 세월과 인사할 시간도 없이, 끝내 자신의 아파트를 방화 후 자유를 느낀 ‘진주의 결말’에서 진주는 자신에 대한 세상의 오해가 풀리는 그 순간까지 그저 살아갔다. 

그녀에게 평범함이란 그 살아간다는 느낌, 그래서 그저 살아가면 느껴낼 수 있는 자유로움 그 것이었을지 모른다.  


‘엄마 없는 아이들’속 혜진은 부모님의 이혼 후 20년만에 찾은 엄마와의 짧은 삶속에서 다시 한번의 상실과 용서를 경험한다. 

그리고 고통속에서 갑작스레 떠나간 엄마를 마음에서 보내야 했던 명준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내가 본 그들은 그렇게 상실을 인정하고 잃어버림을 한 곳에 보관함으로써 그 것이 보관된 채로 순간 순간을 살아가며 평범한 삶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을 두 번 읽고 나서야 알았다. 

8편의 소설 속에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두번째 삶은 ‘희망’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그 것은 그저 살아가는, 그저 살아가게 하는 ‘평범함’이었음을…

작가는 8편 소설 어디에서도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아마 작가는 그 평범함을 설명하는 언어라는 것이 소설 서두에 이야기한 허상이므로, 평범하다고 말하는 순간 평범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리라 생각해서 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설명하지도 지칭하지도 않고 이토록 평범하다는 그 감정, 느낌을 8편의 소설 속에 뭍어낸 듯하다. 그 것을 찾아내고 느껴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며, 그 것을 기억할지도 독자에게 맡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이 소설로부터 그토록 잡고 싶었던 그 무언가를 언어로 재생산하지 못해 며칠을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통해 기록이 아닌 감정을 내 안에 남겨야 하는 것이어서…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어서… 


아이가 나를 보며 달려 올 때의 공기와 온기, 그 때의 내 감정을 기억한다. 

지금 이렇게 소설과 나에게 집중하고 있는 이 순간의 느낌을 기억한다. 

아무 생각없이 책상을 매만지고 있던 그 순간의, 

아침에 후라이팬에 계란을 터뜨리면서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의, 

‘엄마’하고 나를 부를 때 

그리고 내가 엄마를 부를 때 

그 찰나의 공기와 감정들을 기억한다. 

그 감정의 기억이 나의 미래를 기억하게 한다. 

나에게 ‘난주의 바다’에서 은정과 정현에게 불었던 세컨드 윈드.. 그 두번째 바람이 불어올 때 

내가 기억하는 이 감정들이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게 하여 

소설처럼 그저 살아갈 수 있게 나는 또 기억하고 잊혀지지 않게 잡아본다.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주신 '이토록 평범한 미래'의 김연수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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