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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 하늘 흰구름 Mar 09. 2022

'행복'이 아닌 '완전한'을 들여다본다.

'완전한 행복' 소설이 내게 남긴 이야기

왜 하필 '완전한'일까...?

책을 읽는 내내 행복 앞에 붙어 있는 '완전한'이란 단어에 불편했다. 행복 앞에 붙어서 완전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유나가 추구하는 완전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완전함'의 사전적 의미는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그리고 내게는 모자람이나 흠이 없게 모든 걸 갖출 수 없기에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다.



"준비 완전히 끝냈어?"

발표 전 자주 듣는 말...


대학원 때는 3주에 한 번씩 세미나를 했다. 3주 안에 자신이 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교수님과 실험실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 중 가장 나를 괴롭히던 것은 질문이었다. 아무리 자료를 열심히 만들어도 어떤 질문이 내게 올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그 앞에서 우물쭈물할 내 모습이 상상되어 토할 것 같은 느낌은 꽤 오래 지나서야 익숙해졌던 것 같다.


대학원 때는 1년에 한 번은 해외 학회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도 힘들고, 교수님 앞에서 몇 번씩 하는 리허설도 내 영혼을 수십 번 갈아 넣어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가장 힘들었던 건 '질문'이다. 영어 질문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지도 걱정이고,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나올 때 '쏘리 넥스트 타임~'을 세네 번 반복할까 봐 ('한 번이면 선방이다'라고 그때는 생각했기에) 두려웠다.


머가 그렇게 불안하고, 토할 것 같고, 두려웠는지...


그때 내가 생각하는 '완전히 준비를 끝낸다'는 건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완벽한 발표뿐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질문에 완벽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완전함에 완벽함을 넣는 순간 내게 두려움이 왔다. 완전함과 완벽함을 동일시했을 때 내게 불행이 왔다..


내가 추구하는 '완벽함이 담긴 완전함'이 발표를 준비하는 나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좌절하게 하고 불안하게 함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물론 대학원 생활이 매일 저렇게 지나갔던 건 아니다. 일부의 시간들이고 순간이었지만, 아직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한다.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소설 속 유나는 자신의 완전한 행복에 완벽을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완벽한 남편, 완벽한 딸을 얻기 위해 완벽하지 않다고 여긴 전 남편을 살해했다. 그리고 완벽한 가족의 모습에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재혼한 남편의 아들을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완벽하지 않을 때 재혼한 남편마저 살해하고자 했다. 그렇게 그녀는 완벽함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다.


완전함은 완벽함과 조금 다르게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완전한 것은 그 순간이 아니라 일부가 아니라 지속성을 가진다.


유나는 저렇게 완벽한 순간들이 무너지지 않는 것, 완벽한 것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완전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것을 하필 또 자신의 행복에 넣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을 의심하는 남편의 눈빛을 느낀 순간에도, 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느낀 그 순간조차 그 완전성을 깨는 것이기에 참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소설 속 살인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이 누구를 염두에 두고 쓰였는지를 안다. 나도 그 사건에는 이해라는 단어조차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우리가 무의식 중에 추구할 '완전함'이라는 아슬아슬한 단어가 가진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대학원생이었던 그때의 내가 발표  완전함에 완벽을 담고,  완전함에 집착했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내가 완전한 준비를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 것만 한다면'이란 생각으로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내가 그 완전함을 소설 속 유나처럼 행복에 담고자 했다면, 또는 내 정체성에 담고자 했다면, 그리고 유나처럼 철저하게 그것에 집착했다면... 내가 나를 어떻게 갉아먹었을지 무섭고 두렵다...

 

내가 그때 누구도 그렇게 하라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완벽하고자한 이유는, 아마도 어딘가에 있는 내 자격지심 또는 결핍을 없애고 싶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유나가 자기 어린 시절의 결핍을 지우고 싶어 후의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하지만 '완벽하게 완전히'란 세상에 갇힌 나를 꺼내 준 말은 그 결핍이 괜찮다가 아니었다. 그저 완벽이 의미 없음을 말해준 이 말이었다.


"저 사람들은 네가 완벽하게 잘하는지 보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그냥 너의 말을 듣고 싶어서 온 거지."


완전한 준비란 건 내가 그 자리에 서서 내가 준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끝나는 것이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_ '완전한 행복' 중 유나의 말


유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지금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지 않아도 너는 완전해.

네 주위 사람들은 네가 완벽한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냥 사랑하는 거야.

너도 그저 그렇게 사랑한다면...

그게 널 완전히 행복하게 할 거야"


'그녀가 판단하기로 유나는 단순한 엄마가 아니었다. 아이의 영혼을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유일무이한 세계였다.' _ '완전한 행복' 중 재인의 생각


소설 속에서 엄마가 만든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유나의 딸 지유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완벽한 엄마를 두지 않아도

넌 완전한 존재로 완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미 완전하니 완벽하려고 하지 말아 줘..."



**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 주신 이 책의 정유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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