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 하늘 흰구름 Mar 16. 2022

"나에 대한 회의감도 퇴사 이유 중 하나였어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이 책이 내게 남긴 이야기

 나이가 들 수록 그리고 직업이 없을수록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무슨 일을 했었는지, 그리고 왜 그만뒀는지... 그리고 때로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말을 하기도 전에 어떤 특정한 이유에서 퇴사를 했을 거라고 스스로 단정한다. '그래, 사회생활은 힘들지. 너랑은 안 맞는 거 같아.' 또는 '애가 생기면 회사 다니기 어렵지' 이런 말들로 말이다.


그런데 어느 하나만이 문제였다면, 다른 좋은 이유들 때문에 그것을 이겨냈을지 모르다. 하지만 내 퇴사에는 절대적이지 않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 이유들에는 단순 회피, 어쩔 수 없는 상황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새로운 기대, 호기심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그런데 가끔 그것을 잊고 살 때가 있다.

그때 내가 무엇을 찾고 싶어서, 무엇을 기대해서 그만두었는지에 대해 잊고 살 때가 있다.



 나는 대학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며 재료 공학, 양자역학 등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는 전자 부품의 접합 재료들과 접합 방법들에 대해 실험하고 논문을 쓰며 연구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불량 반도체 칩을 분석하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도출해내는 일을 했다. 나는 내가 공부하고 일했던 것들을 좋아했다. 지금 이렇게 내가 한 일을 적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렐 정도로...


박사 학위를 받고 회사에 가면, 신입도 경력직도 아닌 그 중간에서 많은 복잡한 감정들로 사람들이 날 대한다. 바로 무언가를 해낼 거라는 기대감, 진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오만하진 않을까 하는 경계심 등...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선 서로 이야기하고, 밥 먹고, 웃고 같이 일하면서 많이 해소되고 사라진다. 문제는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될 때 발생한다.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면, 내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안다고 착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말이 맞다고 착각을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나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문제의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착각을 한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면 핑계를 찾게 된다.

그러다가 점차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기 싫어한다. 내가 함부로 안다고 자부하는 그 틀에 있고 싶어 한다.

(이러한 문제는 나에게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런 점을 발견한 건 아니므로 일반화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나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어느 순간, 대학 때 공부하면서 느꼈던 그런 즐거움은 없었다.

그리고 대학원 때 연구하면서 미치게 빠져들었던 그 시간들도 없어졌다.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 새로운 장비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호기심을 느꼈던 나도 없어졌다.

나는 점점 내 세계에 갇히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세상마저 내가 다 알고 있다고 느꼈으니, 그 세상이 얼마나 좁았었는지...


경력이 단절되더라도, 급변하는 기술들을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나는 잠시 이 세계에서 나와있고 싶었다.

내가 하나도 모르는, 내가   아는  없는 세상에서 설레고 즐겁고 알고 싶어 하는 나를 되찾고 싶었다.

비단 이 이유 뿐만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사실 내가 누구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그래서 내가 고이 간직하고 있던 퇴사 이유 중 하나다.


 이 책의 38장에서는 '무지의 지'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회의감을 느낀 그 시기를 다시 생각하며 퇴사의 이유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무지의 지'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고 칭한 것을 반증하기 위해 현인들을 찾아다니다가 느낀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현인들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모르지만 자신은 적어도 그것을 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는 무의식 단계에서 마음속으로 '멘털 모델'을 형성한다. 각자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세계를 보는 창'을 뜻한다. "요컨대 OO이라는 뜻이죠?"라고 정리하는 것은 상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가진 멘털 모델에 맞춰 이해하는 듣기 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듣는다면 자신을 바꿀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정말로 자신이 바뀌고 성장하려면 알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  

_'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내용 중


우리는 자주 '무지의 지'를 잊어버린다.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고, 그 일을 안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도 잘 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무지의 지'를 잊어버린 시간들에 젖어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많은 공허함이 찾아온다.

안다고 착각했던 그 시간들 동안 잃어버린 것들이 많기에... 


알지 못해서, 알아갈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알게 되었을 때 변할 내 모습이 기대되었던 그 시간들이 그립고 다시 한번 그런 나를 찾고 싶다. 내가 퇴사하고자 했던 소중한 이유 중 하나였기에...




*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주신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지은이 야마구치 슈 님께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란츠 카프카' 그를 안아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