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조.
부산 국제 영화제를 내가 몇 년 만에 예매했는지도 기억이 까마득하다.
5년 .. 6년?? 7년???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정상화된 영화제.(표면적으로)
특히나 직장인으로서 이번에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퐁당퐁당 연휴 기간. 부국의 분위기를 꽤나 다운시켜놓았던 가을 태풍 소식도 없고 하여... 오래간만에 예매 전쟁에 참석하였다.
내가 예매하고 싶은 것은 3편이었는데. 그중 2편만 예매에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3편 다 성공을 하였지만... 튕기는 바람에 2편만이 성공하였다. 실패한 영화 중에 기요시의 신작과 오쿠야마 히로시의 마이 선샤인 등이 있었지만 .... 이 실패로 11시간이 중간에 뜨고 말았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현장 가서 예매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부산 당일치기를 계획하였다.
2. 새벽
새벽 5시.
부산을 가기 위해 김포로 갔다. 비행기를 선택한 이유는 비행기를 안 타본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이후 이상하리 만큼 해외여행에 대한 갈망이 싹 사라졌기에 비행기를 탈 기회가 없었다. 그 잊어버린 감각을 되찾고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 기억 속의 마지막 비행기 경험은 해외출장 시 이용한 한적한 김포공항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출국 심사 및 검문을 통과하는 데 30분이 걸렸다. 뉴스로만 들었던 혼잡을 직접 체감하였다. 특히 신기했던 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녹화하면서 비행기를 타는 모습들이었다.
3. 잇츠 낫 미.
비행기에서 이륙과 동시에 기절한 나는 착륙을 알리는 비행기 진동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하였지만 9시 상영작인 레오 카락스의 중단편 신작을 보기 위해 열심히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올해 칸영화제 라인업 발표 현장에서 '장편이었다면 반드시 경쟁에 넣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던 티에리 집행장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을 뿐 아니라 중단편은 개봉이 힘들다는 판단하에 선택한 작품이었기에 무조건 뛰어야 했다.
여차여차하여 9시까지 센텀으로 도착하는데 성공했는데... 문제는 롯데백화점이 문을 닫았다는 현실이었다.심히 당황하여 1층으로 올라갔는데 달랑 3개의 엘리베이터만이 운영 중이었고, 그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분명히 예전에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었는데...(기다리는 사람들은 꽤나 화가 많이 나있었다.) 결국 47분짜리 단편에 15분을 못 보고 관에 들어갔다. 불만은 있었지만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내가 영화제에 온 것을 따스하게 알려주었다.
15분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티에리씨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레오 카락스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몽타주 한다. 열차의 도착부터 자신의 작품들까지, 영화의 이미지뿐 아니라 역사의 한 장면들을 쇼트, 쇼트로 붙이되 절대 길게 끌고 가지 않는다. 흡사 SNS의 shorts처럼 보이게끔 만든다. 하지만 이면을 뜯어보면 그 shorts들은 단순히 SNS의 shorts가 아닌 shot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와 역사 속의 어두운 모습들.. 역사의 움직임과 영화의 운동의 방향이 일치되지 않는 현실. 그 현실에 대해 이미지와 사운드는 일치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혹시 사운드는 '비약'이 아닐까라는 본인의 고백은 그의 전작 '아네트'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아니 감독 스스로 아네트를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단편이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아네트의 인형이 CG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감독은 마지막에 이미지의 범람을 경고하며 영화의 끝을 맺는데 엔딩 스크롤이 올라가자마자 몇몇 분들이 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오 카락스의 작품답게 마지막 2분 정도가 끝부분에 더 있었는데 그 장면은 아네트가 나쁜 피의 장면을 그대로 따라 하는 장면이었다. 역시 사람은 없는 걸까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려는 찰나.. 영화관에 불이 들어온 순간 내 눈으로 어떤 집단적 의식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미지의 범람을 경고한 레오 카락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핸드폰을 다 같이 켰고, 빠르게 핸드폰을 확인하고 무언가를 입력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특히 내 앞에서 씨네필이라는 배지를 친구에게 자랑하며 인스타에 티켓을 찍어 올리는 모습은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4. 개와 사람에 관하여.
1층으로 내려갔다가 우연히 만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개와 사람에 관하여'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가 내세우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 분만 느낀 것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분이 영화 상영 내내 집중하지 않은 체 계속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상영이 끝난 뒤 무대 앞으로 나가서 시위를 하는 바람에 감독과의 GV가 취소되었다고 했다.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니 이스라엘의 시점으로 본 가자 지구에 대한 영화였다고 하였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아래와 같은 뉴스가 있었다.
“이스라엘 미화 영화 규탄” 부산국제영화제 앞 피케팅에 GV 취소 - 미디어오늘
팔레스타인 인권단체들이 3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스라엘 미화’ 논란을 부른 영화 상영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영화 상영 직전 감독과 배우가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
분명히...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영화인데.. 어떻게 영화를 보지도 않고 반대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디서 보았다고 좋게 생각을 해야 하나? 이스라엘-가자 지구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전에 대해 러시아계 캐나다인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찍은 다큐가 토론토, 베니스에 상영되어 엄청난 논란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5. 진실
오랜만에 참석한 영화제여서인지 영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며 상당히 젊어진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0% 온라인 예매"
부국의 메인은 남포가 아닌 센텀이 되었다. 센텀에서 100% 온라인 예매로 진행하기에, 예전처럼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 매표소 앞에 죽치거나, 남포- 센텀-장산 등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없어졌다. 장거리 이동이 사라졌다는 장점은 있지만, 매번 예매할 때마다 전쟁이 일어나는데 ,(특히 이번에는 서버가 터져서 환불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 예매 전쟁에 살아남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누굴까? 나훈아 콘서트 성공 여부가 사위의 능력 빨이라는 어르신들의 농담을 떠올린다면 더욱이.
Busan international Fim Festival.
이제 부국은 센텀에서 개최를 하는데(남포에겐 아쉽지만 사실상 센텀에서만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 부산에 사시는 분, 부산을 오고 가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센텀은 부산에서 제일 세련된 동네이다. 이곳은 롯데, 신세계 두 백화점이 있고 거대한 면세점도 있다. 주변에는 롯데캐슬, 마린시티 등 값비싼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고, 광안리에서 해운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동네이기도 하다.
장소 제공은 Busan이 해주지만 부산 현지인에게조차 예매할 기회를 주지 않는 이 이상한 영화제는 영리하게도 FILM은 전국의 젊은 영화광들에게, International과 Festival은 부산에서 가장 세련된 지구인 센텀에서 수요가 가능한 면세 구매자(외국인 포함) 혹은 고소득자에게 단어의 역할을 배분함으로써 명을 이어간다. 이로써 발생하는 모든 불만은 여기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거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몸빵 한다.
29회 부국제 개막 이튿날부터 ‘삐그덕’, 아트워싱·운영 미숙 [BIFF] - 스포츠Q(큐)
6. 상경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오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김도훈 평론가나 바른손의 배급 때문인지 미숙한 영화에 GV를 나서는 송 편집장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두 분도 제일 막내였던 시절, 호리호리하던 시절을 지나 어느덧 쉰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 '영화가 나를 더 이상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구나'라고 느꼈을 사람들, '영화를 보는 것보다 일상과 타협한 사람들'만큼 '영화제가 나를 필요하지 않는구나'라고 느꼈을 동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