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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봄 Aug 03. 2022

출산 3종 세트

회음부 면도, 회음부 절개, 관장


회음부 면도, 회음부 절개, 관장으로 이어지는 세 가지는 소위 출산 3종 세트라 불리는 것이다. 세 가지 모두 피하고 싶고 치욕스럽기 그지없지만 출산의 과정 중 반드시 필요해서 3종 세트로 이름 붙여졌다. 첫 출산 때 일이다. 양수가 터지고 분만을 위해 옷을 갈아입는데 간호사가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산모님, 회음부 면도하셔야 하니까 속옷 벗고 누우세요.”

“네? 어디를 면도한다고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 출산 시 위생을 위해 회음부를 제모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엉거주춤 속옷을 벗은 뒤 침대에 눕자 간호사님이 능숙한 손길로 제모를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애도 낳는 판국에 제모가 대수냐며 마음을 다잡았다.


“산모님, 분만 전에 관장하셔야 하니까요. 이 물약 드시고 10분 후에 화장실로 가시면 됩니다.”

“네? 관장이요?”


나는 또 다시 놀라 되물었다. 출산 전에는 관장도 해야 하나. 분만할 때 힘을 주다 보면 대변이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속을 비워두는 것이란다. 그래, 의료진 앞에서 그런 모습까지 보여줄 수는 없지. 결연한 의지로 꿀떡꿀떡 물약을 먹자 곧바로 신호가 왔다. 1분이 이리도 길었던가? 부른 배를 움켜쥐고 항문에 힘을 준 채 어정쩡한 자세로 침대 난간을 잡고 서서 외쳤다.


“저, 간호사님, 지금 화장실 가면 안 되나요?”

“안 됩니다. 10분 동안 참으셔야 해요.”


10분이라니, 3분도 참기 어려운데 10분이라니! 나는 아기의 얼굴에 똥이 섞여 나오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항문을 막는 데 온 힘을 집중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시계를 보니 8분. 더 참다간 애 나오기 전에 분만실 바닥에다 똥칠을 할 것만 같았다. 결국 10분을 채우지 못한 채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시원하게 비우고 나니 식은땀이 흘렀다. 제모에 이어 관장까지, 아직 아기를 낳지도 않았는데 벌써 아랫도리가 휑하니 허전했다.


출산 3종 세트의 마지막 관문은 회음부 절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미리 출산한 선배들에게 듣기로는 아기가 분만길을 통과할 때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큰 나머지 정작 회음부를 절개할 때는 아픔 따위를 느낄 새가 없다고 했다. 이걸 좋다 해야 할지, 나쁘다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재미 있는 건 미국에는 출산 3종 세트가 없다. 제모도, 관장도, 심지어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는다. 절개 없이 아이를 낳다가 열상이 생기면 그제야 봉합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찢어진 자리는 잘 아물지 않을 수도 있고 운이 나빠 항문까지 상처가 이어지면 봉합 후에도 염증이 생기거나 용변을 보기 힘들 수 있다. 따라서 출산 전에 선생님과 상의하는 것이 좋다.


얼마 전에 방영한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 이 출산 3종 세트가 나와 화제가 됐다. 극중 주인공인 엄지원은 무통분만으로 아들을 출산했다. 분만 중 리얼한 출산 연기가 일품이었는데 특히 아픔을 참지 못해 의사를 향해 무통주사 가져오라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웃음을 넘어 현실 그 자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출산 직후 모든 사람들이 삼바춤을 추는 신. 산모의 고통 어린 신음 끝에 아들이 태어나자 남편과 시부모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장손의 탄생을 기뻐하는 삼바춤을 춘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주인공의 표정은 그들과 달리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데, 마침 친정 엄마(손숙)가 등장하며 삼바 음악이 꺼지고 춤판은 끝이 난다. 주인공의 마른 입술을 축여주며 측은하게 딸을 내려다보는 친정 엄마의 얼굴과 함께 흐르는 “모두가 탄생의 기쁨에 젖어 있을 때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라는 대사는 세상의 모든 친정 엄마를 떠올리며 울컥하게 만들었다.


첫아이를 낳으러 분만실에 들어가던 날, 엄마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천장이 하얗게 되면서 별이 딱 보이는 순간이 있어. 그 순간 아이가 나올 거야.” 모든 사람들이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릴 때 오로지 내 걱정에 조바심으로 분만실 앞을 지킨, 아이 건강보다 내 안위를 먼저 물어본 단 한 사람, 엄마. 엄마도 나처럼 고생해서 나를 낳았겠지. 엄마도 천장에서 별을 봤겠구나. 아이를 낳아봐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한다.


이희준 교수's 산부인과 클리닉

회음부 절개

자연분만 시 회음부가 잘 이완되고 아이 머리가 잘 나오는 등 문제가 없으면 회음부를 절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회음부가 잘 이완되지 않거나, 아이 머리가 끼어 있거나, 산모의 힘이 너무 약하거나, 분만 직전 심박동이 떨어지는 등 불안정한 경우 회음부를 절개합니다. 이는 산도를 확보해 태아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또 불규칙한 열상을 예방하고 분만 시 과도한 열상으로 인한 항문 열상, 방광 열상 등으로 발생하는 방광류, 직장류, 자궁탈출증, 요실금 등의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절개는 가위로 하기 때문에 봉합에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절개 후 통증이 있고 산모는 아이를 낳고 나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회복은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흉터가 조금 남을 수 있습니다. 심하게 난산인 경우, 즉 산모에 비해 아기가 크거나 산도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산모가 힘을 주지 못하면 회음부를 깊고 크게 절개하기도 합니다.



노산이어도 괜찮아! _ 김보영, 이희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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