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은 엄마의 여든두 번째 생신날이라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전날부터 끓였다. 다른 집에서는 생일날 꼭 먹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 생일날 아침은 미역국과 팥을 넣은 찰밥을 해 먹는다.
부산은 바다와 가까워 생미역을 사는 게 어렵지 않다. 갈색으로 둥글게 말아져 오독오독 씹히는 줄기까지 같이 따라오는 미역을, 엄마는 함지박에 넣고 바락바락 빨아 거품을 뺀다. 그렇게 해야 미역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사라진다고, 엄마 어릴 적 어른들은 다 그렇게 '미역 빠는' 과정을 거쳤다고 하면서.
집마다, 지역마다 다른 미역국 끓이는 방법
내가 미역국을 끓이려고 준비하면 엄마는 꼭 미역을 빨아서 끓이라고 하신다. 사실 나는 미역 특유의 냄새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미역귀를 입에 넣고 씹을 때 짠맛과 함께 훅 느껴지는 그 냄새를 말하는 건가?' 혼자 생각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옛날 어릴 때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옆에서 생미역을 하얀 거품이 나도록 씻고 또 씻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바락바락 빤 미역국에 소고기 대신 해산물을 넣어 담백하게 끓인 미역국을 엄마는 좋아한다.
미역국은 들어가는 재료(해산물, 소고기, 황태 등)만 조금씩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하게 끓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우리 집과 다른 방법으로 끓인 미역국을 처음 본 것은 오래전 어느 찜질방에서였다.
뜨끈한 찜질방에서 친구와 수다 떨며 놀다가 허기져 구내식당에서 시킨 미역국. 테이블 위에 놓인 국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드는데 그릇 안에 하얀 알갱이들이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다진 마늘이었다.
놀란 나는 친구에게 "서울은 미역국에 마늘을 넣어?"라고 물으니 친구는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응, 그럼 부산은 안 넣어?"라고 되물었다. 아니, 서울은 미역국에 마늘을 넣는단다. 그렇구나.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미역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예전 하숙집 아주머니가 끓여주던 방법이다. 어느 날 아주머니에게 하숙비를 드리러 갔는데 가스레인지 위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혹시 불 위에 냄비 올려놓은 것을 잊어버리신 건 아닌가 싶어 되돌아가서 말씀드렸더니,
"아, 그거 미역국인데 미역국은 오래 끓여야 하거든. 그래서 아침에 미역국을 줄 때는 저녁부터 끓이잖아, 내가. 그러면 국물이 뽀얗게 나와서 더 맛있어."
미역국을 만들 때 마늘을 넣는다는 것도, 부들부들하고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끓인다는 것도, 그때까지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마치 세프들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픽(pick)'이 있는 것처럼 엄마들도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식구들을 먹이다 보면 스스로 터득하는 지혜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미역국을 끓일 때 우리 엄마의 '픽'은 미역을 힘주어 빠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귀찮고 힘드니까 그냥 끓이자고 해도 엄마는 그게 뭐가 힘드냐며 계속하신다. 어쩌면 그래서 엄마의 미역국이 내 입에는 더 깔끔한 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미역국
엄마는 우리를 낳고 6개월 동안 미역국만 드셨는데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요즘도 엄마는 미역국을 자주 끓여 먹자고 하시는데, 어느 정도 먹고 나면 그다음에는 떡국떡을 넣어 '미역 떡국'으로도 드신다. 엄마가 좋아하는 두 가지, 미역과 떡이 들어가니 김치랑만 먹어도 "너무 맛있다"라고 하시며.
아마도 내가 찜질방에서 땀 흘린 뒤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뚝딱 먹었던 미역국처럼(물론 마늘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엄마한테는 떡국 넣은 미역국이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엄마의 생신을 맞아 이번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홍합을 깨끗이 씻어 미역국을 끓이고(물론 여전히 마늘은 없이), 팥을 넣은 찰밥도 만들고(이건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단 것과 버터를 싫어하는 엄마 입맛에 맞게 제누와즈(케이크 안의 빵)를 굽고, 설탕은 눈곱만큼 넣고 생크림을 올려 무화과 케이크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생일이면 엄마가 해 주셨던 것처럼 미역국에 팥밥 그리고 몇 가지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렸다. "엄마, 오늘이 진짜 생일이네, 축하혀요! 밥 먹고 저번에 가보고 싶다고 했던 우영우 팽나무랑 주남저수지 보러 가자. 케이크랑 커피랑 갖고 가서 먹으면 맛있겠제"라고 하니 "뭐를, 거기까지 가노?" 하는 송 여사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해산물을 넣은 미역국 끓이기
재료 : 홍합 육수 500ml, 불린 미역 200그램, 조선간장 한 큰 술, 참기름 2큰술.
1. 홍합 육수는 미리 내놓는다(홍합을 깨끗이 씻고 수염을 뗀 다음 홍합이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