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저희 엄마입니다. 막내딸인 저와 막내딸이었던 엄마는 제가 타지에 살 때, 그러니까 이렇게 맨날 붙어있지 않을 때는 참 잘 지냈는데요.
요즘 같이 살게 되면서, 또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어딜 나가는 게 쉽지 않았던 시기를 보내면서, 엄마와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의미심장한 날들을 보내고 있답니다.
엄마와 저는 '집에 꿀단지를 숨겨 놓은 사람들'이라 둘 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아무래도 부딪히는 일이 자꾸 늘어나는데요. 예전엔 그렇게 잘 지냈으면서도, 그 추억은 다 어디로 가고 별것도 아닌 일로 오늘도 다투고 있는지, 참... 그리고 또 성향은 왜 이렇게 다른지 새삼 놀라곤 합니다.
먹는 것만 봐도 엄마는 어떤 한 가지 음식이 입에 맞다, 그러면 그 음식만 계속 드셔도 너무 맛있다고 해요. 그리고 아침에 밥을 먹고 나면 점심때 뭘 먹을지 미리 생각해서 준비해 놓으시죠. 만약 냉동실에 얼어 있는 양념돼지갈비를 먹고 싶다, 그러면 몇 시간 전에 냉장실로 옮겨 미리 해동하는 분입니다.
반면 저는 두 끼만 연달아 먹어도 지겨워서 그다음 식사에는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답니다. 그리고 슬슬 밥때가 되기 시작하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떠올리며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을 바로 만들어 먹는 편이죠.
그러다 보니 냉동실에 꽝꽝 얼어있는 양념돼지갈비는 식사 준비를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내려 불에 올려요. 그러니 엄마의 잔소리를 피할 수가 없죠.
"니는 어째 먹고 싶은 걸 미리미리 준비 안 해 놓고 꼭 먹기 직전에 그라노?"
"아니, 먹고 싶은 게 지금 떠올랐는데 우짜노. 그라고 미리미리 준비 못 할 수도 있지. (속으로) 아, 정말 안 맞는다니까."
파란만장 역사의 산증인, 팔순을 넘긴 어르신들
생활 방식은 제각기 달라 어떤 사람은 집에 물건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사놔야 마음이 편안한데 저희 엄마도 그런 분인 거죠. 어릴 때는 엄마가 대부분 우리한테 맞춰주니까 저는 잘 몰랐어요. 엄마가 그렇다는 것을요.
생각해 보면 엄마에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여기서 엄마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요. 엄마는 어릴 때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저희 외할머니를 전쟁 중에 잃으셨어요.
그 세대들은 일상의 편안함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엄마는 전쟁 중에 엄마의 모든 것(그 나이 때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 전부니까요)을 잃었으니 아마도 불안함이 더 크게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불안함을 '미리미리'라는 약으로 잠재우며 사셨던 것일 테고요.
이 책 <나이야 가라>를 쓴 윤평원 작가분도 그런 불안함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어떤 날은 일장기를 들고 일본인 지주를 환송하기 위해 강제 동원되기도 하고, 또 갑자기 6.25 전쟁이 일어나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사람들(피난민)이 몰려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혼란 그 자체를 맞았다고요.
물론 작가는 "아이고, 내 새끼 잘했다"라는 칭찬을 듣고 자랐고, 저희 엄마는 그보다는 텅 빈 마음을 더 많이 안고 살아오신 차이점은 있지만, 팔순을 넘긴 어르신들이 살아왔던 삶은 성별을 떠나 참으로 고단했겠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헤아릴 수 있었어요.
엄마가 늘 "내 이 얘기 하더나?"로 시작하는 '한 번만 더 들으면 백번'인 이야기를 그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분의 글로 읽으니 당시 어린아이였던 엄마가 서 있는 그곳에 저도 같이 서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얘기하는 엄마한테 "엄마, 그래서 그때 엄마 마음은 어땠어?"라는, 여태까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할 때는 분명 엄마가 말하고 싶은 어떤 말이 있을 테니까요.
책을 통해 좀 더 이해하게 되는 40년대생 어르신들
일본어로 말하고 쓰지 않으면 끌려가서 매를 맞고, 갑자기 날아온 폭탄에 가족을 잃어 본, 이제는 '노토리'(늙은이라는 뜻의 방언, p.30)라 불리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살아계신 것만도 기적'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불안함이 엄습하는 삶을 매일 산다는 것, 언제 또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웃는 얼굴이어야 하는지 우는 얼굴이어야 하는지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았던 시대를 살아내신 분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가장 크게 자리 잡았을까 생각하게도 되고요.
그래서 '아, 이렇게 달라서야... 우리 엄마 왜 저래?'가 아니라 '내가 만약 저 일들을 다 겪고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엄마를, 그분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함께 사는 지금,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쓴 책을 연달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도 책도 다 때가 있다는데, 이 책을 읽고 "그때 엄마 마음은 어땠어?"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을 수 있었으니까요.
앗, 글을 쓰다보니 밥 먹을 시간이네요. 며칠 전 엄마가 먹기 좋게 손질해 둔 대구로 (아까 냉동실에서 내려 해동해 놨거든요) 쌀쌀해진 저녁, 엄마가 좋아하는 대구탕이라도 끓여드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