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산 지 3년, 엄마에 대해 다시 알아가는 행운의 시간
엄마와 따로 살다가 한 집에 같이 살게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니까 3년 정도 됐다. 어릴 때 같이 살았으니, 가족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성인이 되어 다시 함께 사니, 엄마에 대해 '아 그렇구나' 하게 되는 것이 있다.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된다.
잠깐 집에 내려와 있던 때나 사택에 살았던 때를 빼면 누군가와 함께, 한 공간에서 지낸 것은 오래전 하숙집이 마지막이다. 그러니 그 누군가가 우리 엄마라도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의식하지 못했던 혼자만의 생활방식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음식도 그랬다. 엄마가 좋아하는 식재료 중 나는 사 본 적도 없는 것이 종종 있다. 그중에 더덕도 있다.
▲ 참기름에 재워 놓은 더덕 왼쪽은 뜨거운 물에 살짝 담근 더덕, 오른쪽은 생 더덕이다.
얼마 전 엄마가 "농협 옆에 트럭 맨날(매일) 와 있잖아. 오늘은 더덕을 항거(많이) 싣고 와서 팔데"라고 하셨다. 엄마가 하나를 콕 집어 말씀하시면 그건 사고 싶다는 뜻이다.
엄마와 살기 시작할 무렵엔 나 혼자 살 때는 사 본 적 없던 식재료를 엄마가 말하면 관심이 없어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이제는 흘려듣지 않고 꼭 다시 묻는다. "(상태가) 괜찮아? (가격은) 얼마나 하데?"라고. 마트나 시장에 갔을 때 오래간만에 더덕이나 도라지가 보이면 그때도 챙겨 묻는다. "엄마, 살까?"라고.
다시 나갔다 오신 엄마 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봉지를 받아서 펼쳐 냄새 맡으니, 특유의 쌉쌀한 향과 자연 그대로의 흙냄새가 향긋한 더덕이었다. 언젠가 사 왔던 질긴 더덕과는 달랐다.
"니 거기(인터넷) 들어가서 더덕은 어떻게 하면(손질하면) 되는지 찾아봐라."
엄마의 말에 더덕 손질법을 찾으니 뜨거운 물에 잠깐 넣었다가 껍질을 가로결대로 벗기면 마치 익은 감자 껍질처럼 돌돌 벗겨진다고 나왔다.
"아, 맞네. 지난번에도 뜨거운 물에 살짝 넣었다가 껍질 벗겼네. 생각나제, 엄마?"
"그러네, 그 말 들으니까 생각난다. 물 끓여봐."
커피포트에 물을 가득 넣고 끓이면서 비교적 최근 일이지만 엄마가 잊지 않고 기억을 잘하시는 게 고맙다. 그 생각을 하면서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냄비 바닥에 깔릴 정도 물을 받아 불에 올렸다.
약간의 물을 끓이며 냄비를 뜨겁게 해 놓으면 커피포트에서 끓인 물을 부어도 온도가 유지된다. 채소를 넣어도 다시 물이 끓을 때까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경험 많은 엄마의 데치기 비결이다. 그렇게 하면 채소가 푹 익는 것도 막을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더덕을 맨 손으로 까니까 손이 끈적거리는데,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하니까 잘 까져서 좋네."
깐 더덕이 어느 정도 모이자, 이번에는 나무 방망이로 살살 두드렸다. 잘 씹힐 정도로 약간만 하면 된다. 더 진한 더덕 향이 번졌다. 큼큼 맡으며 손질을 끝냈다. 그 냄새를 맡으니, 나도 침이 고였다.
▲ 고추장 양념장 무치기 고추장에 꿀만 넣은 양념장으로 무쳤다.
엄마만 좋아하는 식재료를 사 오면 내가 항상 가는 블로그가 있다. 운영하시는 분은 여든을 넘긴 엄마보다 10살 정도 나이가 적지만, 그래도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셨기 때문에 엄마가 항상 말하는 '내 어릴 때 할매들이...'의 비법을 아실 것 같아서다.
"양념은 어떻게 하라노?"
"먼저 참기름으로 더덕을 재운 다음, 고추장 양념장 만들어서 버무리면 될 거 같다."
더덕무침은 고추장 양념부터 쓱쓱 바르고 먹기 직전 고명으로 올린 쪽파 사이로 참기름을 쪼르르 붓는 게 대부분인데, 양념장을 제치고 참기름부터라니... 역시 뭔가 다르다!
더덕을 참기름에 재워놓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기다리던 엄마가 와서 양념장을 조금 드시더니 맛있다며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 블로그에 적힌 방법대로 마늘도 없이 고추장에 꿀만 섞었는데 엄마가 맛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
이제 무친 더덕 속에 간이 배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다음 뜨거운 밥 위에 먹음직스러운 더덕을 올려 한 입 크게 먹을 테지만, 그새를 못 참고 젓가락을 손에 쥔다. 하나는 생으로, 하나는 뜨거운 물에 약간 익혀 만든 더덕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묘한 차이지만 생더덕이 맛있다. 더 아삭거리며 향도 맛도 입에 착 감겼기 때문이다.
▲ 그냥 먹어도 맛있었던 더덕 무침 원래는 간장도 넣으라고 되어 있지만 우리 집은 싱겁게 먹기 때문에 간장은 뺐다. 엄마가 직접 담는 고추장에 꿀만 넣고 만든 더덕 무침.
엄마는 '둘 다 맛있다. 근데 양념장이 제일 맛있네' 하며 젓가락 끝에 묻혀 몇 번을 드셨다. 혹시 엄마 어릴 때 '할매들'이 만들던 그 맛과 비슷한 걸까? 엄마는 엄마를 일찍 여의었다. '어릴 때 우리 엄마가....'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엄마의 이야기에는 그래서 늘 '할매들이' 자주 등장했다.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녹음해서 받아 적었던 적이 있었는데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왜 우리 엄마 이야기에는 할매들이 늘 있었는지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헤아리진 못했던 거다.
그것이 엄마 마음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하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별이 사라져 캄캄한 새벽 같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함께 걸어가게 한다. 나에게 주어진 엄청난 행운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