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축

by 마음은런더너

나는 백개의 문장보다 단어 하나가 전하는 힘이 더 크다고 믿는다. 중언부언 필요없는 미사여구로 뒤덮인 긴 연설보다 한 문장의 카피가 더 기억에 남듯 말이다.

교환학생 시절 헤밍웨이의 글을 배운 것이 원래도 긴 말을 싫어하던 내 성향에 기름을 부었달까. 형용사, 부사를 절제한 단문의 담백한 문체가 특징이라고 했다. 그 문체가 하루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의 소설이 읽기 쉽다면 아마 문체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게 바로 시의 힘이 아닐까? 긴 서사시들도 물론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의 힘은 함축에 있다고 생각한다. 묵직한 한방 말이다. 윤동주는 시가 쉽게 씌어진다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일제에 대해 시로 저항하는 것이 쉬운 길처럼 보인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꾹꾹 눌러 담는 고민의 과정 없이 쓴 글을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윤동주의 시는 고민에 고민을 거쳐 탄생했을 것이다.

적절한 예시인지 모르겠지만, 빵터지는 개그들도 대부분 단문이다. 길고 장황하면 웃길 수 없다. 짧고 간단하면서도 메시지를 전달해야 웃길 수 있다.

용건이 있어 찾아오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말이 길면 잘못한게 있거나 잘 모르는 것이다. 떳떳하거나 내용 숙지를 잘 한 학생들은 말이 길지 않다.

그런데.. 함축에 대한 내 맹신을 돌아보게 만든 일이 있었다. 지역에서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부연설명 없이 키워드만 던져줘도 척하면 척 이해해서 “역시 말이 길 필요가 없어” 하던 차였다.

그 학교에서 새 학기를 맞이했고 내 나이 또래의 나와 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한 기간제 교사가 부임했다. 그는 말을 번듯하게 하려고 했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실수가 많았다. 같이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 나는 그가 달갑지 않았다. 문제 오류라도 있으면 큰일이니까. 다른 교사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은 달랐다. 특히 여학생들 중에는 그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기까지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똑똑한 애들인 줄 알았는데, 그 허술함이 안 보이나?

속 얘기할 수 있는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말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 샘은 애들이 찾아오면 말을 많이 해요.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애들은 그렇게 자기들이 찾아갔을 때 얘기를 계속 해주는게 좋다더라고.”

그는 다음해에 다른 학교로 떠났고 나는 그를 좋아했던 아이들을 졸업시켰다.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전과 달리 생각하게 되는 것들. 함축은 잘 요약된 것일수도, 불친절하게 짧은 것일수도 있다. 부연은 완충의 효과가 있으며, 구멍은 인간적인 면모로 보일 수 있다. 내가 잘 요약해서 전한 핵심은 맞는 말일지언정 상대가 삼키기 힘들 수 있다. 고운 태도로 비유도 쓰고 예시도 들어가며 설명한다면 상대가 들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 글이 길어진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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