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경 베리지 말라"(제주어로 '허튼 곳 보지 마라'). 어릴 적 엄마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함께 길을 걸을 땐 이 말이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난 길을 걷다가 자주 넘어졌다. 간만에 시내(내가 살던 곳은 도시와 거리가 멀었다)라도 나가면 이 가게 저 가게 들여다 보기 바빴다. 이런저런 궁금함과 호기심이 먼저이다 보니 발아래 뭐가 있어도 신경 쓸 게 못 됐다.
30대 중반 나이에도 이 습관은 어딜 가지 않는다. 지금도 길을 걸을 땐 곧잘 두리번거린다. 골목골목 이어지는 집과 가게를 살피며 걸음을 잇는다. 이제는 호기심이라기보다는 그냥 좋아서다. 누군가의 취향과 세월이 묻어나는 집, 매일매일 여닫는 식당과 빵집, 카페 같은 공간은 지금 이 순간도 삶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흔적 같다. 그 따뜻함이 좋다.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순간도 있다. 텅 빈 집, 언젠가 문을 닫은 가게를 지나치게 될 때다. 새로 리모델링해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하루 종일 'closed'라는 팻말을 걸어둔 카페, 몇 달 전에 식빵 하나를 산 적 있는데 창문에 '임대'라는 글자를 써붙인 가게,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문을 열지 않는 분식집까지. 비어있는 그 공간은 잔불조차 안 남기고 새까맣게 탄 장작 같다. 삶의 불씨조차 되살리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그런데도 삶은 이어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빈 공간에도 사람이 들고난다. 간판이 바뀌고 누군가는 다시 손님을 기다린다. 사람 없던, 낡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담장을 칠하고 집안 곳곳을 새로 손본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하나뿐인 집, 어떤 이에겐 소중한 일터가 돼 밤에도 불을 밝힌다. 끊겼던 골목이 이어지듯 삶도 다시 흐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