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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기억

by 자명

멘탈을 지키는 내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는데 '선택적 기억'을 하는 것이다.


왕따를 당했을 때의 기억에선 그 가해자들을 기억에 두지 않고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쪽지를 주고 갔던 그 친구를 기억에 남겼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턴 그 나쁜 아이들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고 쪽지 준 친구 이름만 기억이 난다.


어떠한 상황을 겪는 건 내 의지대로 못하지만 그 상황에서 무엇을 기억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아기가 떠난 충격보다 아기와 교감하던 행복한 순간들만, 꼬망이가 떠난 슬픔보다 꼬망이와의 행복했던 추억들만 기억하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병원에 갔을 때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칭찬해 주셨다.

"보통은 그게 안돼서 병원에 오는 건데 혼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회복이 빠르네요!"


힘든 일이 있다 하여 그 안에 갇혀있으면 아무것도 회복되지 않는다. 그 지옥에서 나오는 건 내 몫이다.


병원을 나와 낙엽이 발밑에 깔린 길을 걷는데 바람도 시원하고 바스락 소리도 기분이 좋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다음 봄을 맞이하기 위해 하얗게 정리할 겨울을 준비하려고 여름의 뜨거움을 식히고 정리하는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계절이어도 그 계절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이제 곧 11월이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또 한 살을 더 먹어야 되니까 남은 시간 동안은 지난 시간들을 정리하며 성장의 발판이 되길. 올해가 많이 아팠던 것은 더 어른으로 자라나기 위한 성장통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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