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늘 힘들다 3/16토-3/17일
보스턴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을 거쳐 포르투에 오전 8시에 도착했다.
4시간 시차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한국과의 시차를 생각하면 감사한 정도다.
비행기안에서 뭘 먹으면 꼭 멀미를 하는 유나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멀미를 해서 공항에서 상 벤투역으로 이동중 한두번 지하철에서 내려서 쉬어줘야 했다. 주변 경관이 한국의 어느 지방 마을과 흡사했다.
유나멀미가 가까스로 진정되서 9시나되서야 겨우 상벤투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7분거리인데, 경사길은 미처 계산되지 못했고, 돌길은 캐리어를 끌고가기엔 상당히 불친절했다.
잠이 덜 깬 숙소주인에게 가방들을 맡기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일정을 시작해야 하는데, 유나가 아직 뭔가 몸상태가 불편했다. 숙소앞 베이커리에 가서 커피한잔 그리고 그 유명한 나타(에그 타르트) 먹으며 좀 쉬자고 했는데, 유나는 앉아서 꾸벅꾸벅..... 출발하기 전부터 '이번여행의 목적은 잘 먹고 쉬는거야' 라고 이미 질러놓은게 있어서 다그치지도 못하고 졸고 앉아 있는 유나를 나타하나 더 먹으며 지켜봐야 했다. 한 40분쯤 지났을까... 이제 좀 움직일수 있다고해서 갈곳 몇군데 불러줬더니 안가도 그만인 렐루 서점에 제일 마음이 동하는듯 보여 발길을 잡았다. 포르투는 평지가 없다. 오르막길 아니면 내리막길이다. 상 벤투 역을 돌아 클레리구스 성당을 지나 렐루 서점까지 걷는데 지도에서 보는것보다 조금 더 힘들다. 클레리구스 탑에 올라 시내조경을 보고 어쩌고하는 일정은 다 접고 예상대로 길게 늘어선 렐루 서점 줄에 합류해서 일인당 8유로씩이나 하는 입장권을 전화기로 사서 사람들에 떠밀려 들어갔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쓸때 움직이는 계단의 디자인 영감을 여기서 받았다고해서 유명해진 서점인데, 이젠 더이상 서점의 기능은 상실한듯 보였다. 사실 모든것이 디지털로 영상으로 바뀌는 지금 서점으로 고집부린다는것 자체가 바보같은 짓일테니까... 화려한 장식이나 계단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서있을수 있는 공간을 찾아 서있는데 급급하다가 유나가 굳이 무슨 책을 하나 사고 싶다고 또 줄을 서는 덕분에 20여분 더 기다리다가 겨우 서점을 빠져 나왔다.
그저 숙제하나 마친느낌이 솔직한 소감이었다. 멀미가 좀 가라앉고 배가 고프단다. 주변 음식점을 검색하다가 한식당이 눈에 띄어 '소주포차'라는 곳을 가서 부대찌개 셋트를 주문했는데, 기대이상으로 맛있게 먹었다. 미국의 맛없는 식당들에 길들여져서인지 미국만 벗어나면 다 맛있는것 같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 찾는건 생각보다 단순했다. 상 벤투역이 모든 관광지의 중심 쯤 되고 왼쪽으론 오르막길 아래쪽으론 내리막길이다. 플로레스 대로를 따라 쭉 늘어선 기념품/악세사리 가게들, 식당들이 유명한 관광지 느낌을 제대로 전해 줬다.
벤투역 근처가 전부 공사장이었지만, 역 주변의 돌길을 따라 선 건물들의 각양각색의 모습들과 히베리아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인 플로레스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의 입면과 상점들, 음식점들, 시끌벅쩍한 사람들의 소음과 각양 각색의 표정들.... 이걸 보고 싶어서 대서양을 건너 이곳까지 왔다. 몸은 피곤하지만, 나는 지금의 소리, 냄새, 바람, 햇살, 공간을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발걸음을 천천히 한다.
버스킹하는 소리도 들리고,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꼼짝않고 서 있는 퍼포먼스하는 사람도 보이고, 호객행위를 하는 식당 종업원들의 소리도 들린다. 여러번 여행 유투버들의 영상에서 본 장면들이지만 직접 느끼는것에는 비할바가 못된다.
여행은 날씨가 좋아야하고, 몸이 가벼워야 하고, 다른 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책을 읽으며 상상을 하는것도 좋고, 영상을 보는것도 좋고, 음악을 듣는것도 좋지만, 여행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수가 있어서 좋다. 눈과 귀와 머리 뿐 아니라, 온 몸으로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히베이라 광장까지 내려왔다. 예전 '비긴 어게인'이라는 음악예능프로에서 이곳이 소개되서 그런지 자주 젊은 한국 관광객들과 마주친다.
3시가 가까워 오니 우리 셋다 점점 몸이 무거워졌다. 서로 설득할 필요도 없이 약속한듯 숙소쪽으로 발길을 잡고 체크인 시각인 4시 이전에 좀 들어가서 몸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다행히 3시반쯤 Air B&B 호스트가 숙소 준비가 되었으니 들어오라는 반가운 연락이 와서, 마침 근처에 다왔다는 착한 거짓말을 하고는 숙소앞에서 20분이상 쭈그리고 앉아 있던 다리를 쉬러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니 와이프와 나는 다시 머리가 개운해져서 동 루이스 다리에서 석양을 보기위해, 자고 싶어하는 유나를 남겨두고 숙소를 나섰다.
석양을 보기위해 나온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잡아 보겠다고 사진도 찍고 주변 정경을 계속 바라봤다.
크게 대단한건 없었다. 소박한듯, 투박한듯,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같은 이 정경이 그저 편안하고 이 시간이 아름다웠다. 군밤을 태우는 연기들도 석양과 참 잘 어울렸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하다가 유나가 배신감 들까봐 숙소로 들어가서 일부러 라면 냄새 풍겨서 깨우려고 했지만, 유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그대로 뻗어 있었다.
그렇게 첫날의 피곤함과 조금의 아쉬움을 달래며 우리도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