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호구를 자처하는가.
넉넉한 호구가 되고 싶다.
다들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날 때가 있다.
오늘따라 엉겨 붙는 아이들이
너무 짜증이 나서 떼어놓고
갑갑해서 집밖으로 나왔는데
갈 데가 없다.
계단통로에 주저앉아 있으니
왈칵 눈물이 터진다.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어서
고군분투했었는데
그럴수록 다들 날 너무 함부로 한단 생각이 든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무시하고 갑질한다.
심지어 애들도 내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
친정엄마가 자존감 깎아먹는 말들을 하며
비난어투로 비아냥거리고
상처 주는 말들을 했을 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어야 했다.
결혼 후 내 가정이 생기고
폭발한 뒤 몇 개월간 친정에
발길을 끊었는데
예전에는 수없이 설명하고 대화하려 애쓰고
관계개선을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내가 발길을 끊자 그 뒤로 눈에 띄게 조심하셨다.
시어머니가 친정엄마 앞에서
다른 집 며느리 칭찬하고 내 흉봤을 때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선을 긋고 거리를 두어야 했다.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도
병신같이 잘하려다
더 큰 막말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잔잔바리 잽들이
수차례 있었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
내가 오해한 거겠지
애써 삼키고 넘기자
더 큰 펀치가 날아왔다.
조금씩 간 보며 던졌던 잽들이
과감한 펀치가 되어 날아왔다.
세상엔 잔인하고 못돼 처먹은 인간들이
넘쳐나서 가만히 있으면 계속 처맞기 십상이다.
이것은 가족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남들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첫째 아이 친구가 자주 집에 놀러 왔는데
점심, 간식, 저녁을 챙겨주고 나선 녹초가 되었다.
이틀 연속으로 놀러 오고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고 싶다고도 했다.
자는 건 거절했지만,
점심때 놀러 와서 점심 챙겨주고
둘이 태권도 보내고
겨우 한시름 덜었는데
"태권도 끝나고 또 놀러 올게요."
란 그 아이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친구 아이의 엄마는 워킹맘인데
문득 무료로 돌봄 서비스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지? 란 생각에
놀이터에서 놀다 헤어지라고 했다.
첫째는 또 어떤가?
태권도 끝나고
친구들을 데려오겠다길래
집이 엉망이니 다음에 다 치우고 초대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로 데려오는 바람에 미친 듯이 치웠다.
저녁 늦게 동생을 데리고 나가서
내가 전화하면 전화도 안 받고
탁탁 끊어버린다.
부모로서의 권위도 전혀 없고,
아이조차 날 무시한다.
예전엔 둘째네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엄마가
만날 때마다 돈을 하나도 쓰지 않아서
거의 내가 샀고, '어머! 지갑을 놓고 왔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손절했다.
나는 테이커들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라도 있나?
이 모든 것들이 은연중에 내가 자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착한 게 아니라 호구, 병신이다.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어, 이게 통과되네? 그럼 이건? 이것도?'
하며 수차례 강도를 높이고 대담하게 선을 넘나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왜 호구를 자처하는가?
나는 왜 선 넘는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어하는가?
그건 아마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마음,
나만 희생하면 모두가 편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심 때문이겠지.
시어머니만 해도 그렇다.
조건 없는 사랑에 결핍을 느껴서
(친정엄마의 사랑이
'자기 말을 잘 듣고 성과를 보여주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줘야만 사랑해 주는
조건부 사랑'이라고 느꼈다.)
시어머니한테 인정받고
이쁨도 듬뿍 받는 며느리가 되고픈 욕심이 있었다.
내 엄마한테조차 충족되지 못한 것을
남의 엄마한테 바란다는 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는 걸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젠 늙은 시어머니의 인정과 사랑을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친정엄마도 마찬가지다.
정서적 결핍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선 것은
남편과 아이들 몫이 크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나를 멋대로 휘두르고 막말하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 사람들에 대한 증오보다
이 모든 걸 자처해서 감당하려다
이지경까지 상황을 몰고 온 나 자신에게
제일 화가 난다.
사람들을 겪다 보면
인류애가 사라지고
현타가 오는데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최악은 아니었다.
아마 만만한 나에겐
본인의 숨겨져 있던 악한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주며 갑질하고
다른 이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으리라.
인간관계로 휘둘리고
선 넘는 행동들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결국 나의 책임이 가장 크다.
앞으로는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니다 싶으면 얄짤없이 선을 긋겠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내 살 깎아가며 위선 떨지 않겠다.
못돼먹고 잔인한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는 대신
적절한 공격력을 기르겠다.
더 이상의 호구는 거절한다.
이건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라
(외벌이)
남들에게 손해 볼까 봐, 이용당할까 봐
몸 사리는 건가?
주변에 베풀고 선물 주는 걸 좋아했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
급급하는 건가? 점점 계산적으로 변해가는 건가?'
내가 좀 더 사면 어때,
먹을 거 내가 더 챙기면 어때,
선물 매번 나만 주면 어때,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더 챙기는 거지.
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결핍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조그마한 손해도 보기 싫어하고
호구가 된 건 아닌가 신경이 날카롭다.
호구가 되어도 지장이 없을 만큼
마음껏 주변에 베풀어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넉넉한 그릇을 가진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충분한 재력을 가져야 하겠지.
호구가 되는 것도
돈이 필요하다.
씁쓸한 현실이다.
어쩌면
빤히 알면서도 웃으면서 당해주는 호구는
세상에서 가장 넉넉하고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