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어떤 견해를 채택하게 되면 인간은 그것을 지지하고 옹호하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끌어들인다. 그와 반대되는 중요한 사례들이 무수히 생겨나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폄하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배제하고 거부한다. 이러한 치명적인 성향에 의해서 이전에 내린 결론은 수정되지 않은 채 권위적인 것으로 남게 된다"
- Francis Bacon
유튜브를 시청하는 대다수의 한국인이라면, 그중에서도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이들이라면 대부분 느낄 것이다. 나의 취향과 견해를 찰떡같이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내 취향의 영상들만 쉴 새 없이 띄워주는 이 유튜브 알고리즘의 세계가 얼마나 나의 편협한 사고를 굳히는데 일조하는지를.
내가 한 사물을 A라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와 관련된 영상들이 쉴 새 없이 뜬다. 그래서 B의 시각이 있다는 것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어느새 A의 견해가 전부이고 올바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한 가지 시선에 사로잡히고, 한 가지 견해에, 한 가지 프레임에 갇힌 채 그것이 전부인 양 인식하게 된다. 제목만 다른 수많은 똑같은 영상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세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인간은 편협한 존재다. 자신이 호감을 가지기로 결심했으면 그와 관련된 증거들만 보인다. 반대로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면 거부감을 느끼는 데 타당할 근거들만 나타난다. 이래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말이 맞다. 생각하는 것들만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이렇게 편협하고 고집스러운 존재란 걸 인식했다면, 내가 느끼고 채택한 이 견해가 과연 타당하고 올바른 것인지 끊임없이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수가 인정한 견해라서 옳은 견해일 거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야 한다. 어리석은 다수의 판단으로 비극으로 치닫았던 역사적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수의 견해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검증조차 하지 않고 매몰되선 안 된다. 일부로라도 내 견해와 상반되는 반대입장을 수용까진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튜브에서 판치는 마녀사냥과, 적과 아군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면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할 수 없어서 버벅거리며 오류가 나기 십상이다. 어리둥절해서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서로를 저격하고 타깃으로 물고 뜯으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알지 못한다. 본질은 이미 흐려졌고, 최초의 정의는 온데간데없다. 유튜브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어서 꾸준히 지켜보면 저절로 공부가 된다. 분명한 사실은 성공팔이, 강의팔이를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의팔이를 비판하는 비판팔이 또한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단 믿지 말고 의심부터 하는 것이 디폴트인 세상이 되었다. 순진하면 순식간에 호구되기 십상이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다면 나의 관심사와 관련된 영상들만 줄줄이 시청하며 소비하고 몰두하지 말고, 일부로라도 반대 영상을 찾아보자.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위험한 점은 또 있다. 사람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본 유튜버들에게 지나치게 쉽게 친밀감을 느끼고, 권위를 느끼고,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나의 확신과 견해를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믿기 전에 여러 검증을 가지는 절차를 가져야 한다.
더불어 예전 글에도 썼지만,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구제해 주는 귀인이 되어 나의 이 진흙탕 같은 길을 한순간에 꽃길로 바꿔줄 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자. 나의 인생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나의 관심사와 나의 강점, 나의 약점, 나의 적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나뿐이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릴까 봐 두려워서 나의 결정과 판단을 믿지 못하고 유튜브 속 전문가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멘토가 되어주길 바라고, 그의 판단을 기다리며 순순히 그렇게 종속화된다. 월급의 노예는 고사하고 '권위 있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성공팔이, 강의팔이가 판치게 된 것도 이런 유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유튜브에서 처음 보는 전문가처럼 보이는 그들에게 너무 쉽게 맡겨버린 데 있다.
누군가를 탓할 것도 없다. 절실했던 마음을, 코 묻은 푼돈들을 가져가는 사기꾼들이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아무런 검증 없이 수억의 돈을 벌어들였다는 그들에게 혹하여, 그들이 떠먹여 주는 대로 아무 노력 없이 쉽게 돈 벌고 싶어서 고액의 강의와 전자책을 구매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모든 잘못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 분야 전문가가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 믿으며 순순히 자신을 내맡긴 나에게 책임이 있다.
물론 절실한 사람들을 등쳐먹으며 자신의 경력과 수익을 과장하여 강의와 책을 팔아먹은 사람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의 경력이 허위, 과정 됐고, 이런 날조된 경력으로 수많은 돈을 벌어들였다면 그것은 사기행각이 맞다. 하지만 그 허위, 과장광고에 혹하여 수십, 수백만 원을 결제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또한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수십만 원의 고액 강의를 결제했던 적이 있다. 그뿐인가? 전문가인지 검증도 되지 않은 듣보잡 준전문가의 그럴듯한 상세페이지에 놀아나서 그들의 전자책을 구매했던 적도 수십 번이다. 읽어보면 특별한 정보는 없었다. 다 무료로 구할 수 있었던 정보들의 모음집을 그럴듯한 상세페이지로 포장하여 팔아먹었던 것이다. 나는 그 뻔한 수법에 여러 차례 낚였고 수십만 원을 허비한 뒤에야 이 사실을 깨우쳤다. 누가 자기 계발이 무료라고 했던가? 자기 계발은 그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자기 계발에 미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재력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기 계발을 무료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으면 된다. 전문가처럼 보이는 그분들도 책을 바탕으로 강의를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왜 수많은 검증된 전문가들이 자신의 일생일대를 바쳐 연구한 훌륭한 결과물들을 단 돈 1~2만 원에 서점에서 마음껏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증되지도 않은 수억 원을 벌었다는 온라인 속 그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걸까? 그건 아마도 쉽게 지름길로 가려는 욕심 때문 아니었을까.
한동안 자기 계발, 동기부여 분야의 강의팔이 강사들을 혐오하고 원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을 쳐다보기도 싫었고 오만정이 떨어졌다. 매번 알면서도 당하는 호구 같은 나 자신이 등신 같아서 원망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나는 왜 이리 사람을 쉽게 믿고 마음을 쉽게 주고 세상물정 모르는 건지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건 그 당시의 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건 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허접하고 어리숙한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비판적 사고대신 무작정 그들을 믿었던 바보 같은 나의 결정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생각 없는 사람의 돈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는 사람에게로 흘러 들어가게 마련이라고. 이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비판적 사고 없이는 순식간에 내가 가진 푼돈을 털리기 십상이다. 잠시 나에게 머물렀다가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내가 털렸을 때 내 탓을 하면 오히려 편하다. 내 탓이라 여기면 자신이 싫을 망정 훌훌 털고 다음을 모색할 수 있다. 그들이 사기꾼이고 내 푼돈을 가져간 그들이 천하의 나쁜 놈들이니 그들은 저격받아 마땅하고 나락 보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며 그들을 원망하고 비판하고 부정적 감정에 오래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손해 보는 건 나다.
그러니 그들이 나락 가길 기도하며 악플을 달고 비판영상에 집중할 시간에 나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하자. 각자도생 아니던가. 나를 구제해 줄 사람은 나뿐이니 오늘도 내일도 고군분투하자. 정당하지 않은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돈을 착취하고 피눈물 훌리게 한 사람은 내가 응징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멸한다. 분명 최악의 경우에도 배울 점은 있다. 배울 점만 취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제 그 분노의 에너지를 거둬들이고 나에게 집중하자. 바꿀 수 없는 환경에 집중하고 비판하는 대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거다. 나의 현 상황이 시궁창 같다면 고액의 강의를 결제하는 대신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시도해 보자. 각자도생 하는용기 있는모두의 내일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