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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May 04. 2024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

먼저 인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첫째는 인사를 잘하는 편이다. 



 아이에게 인사를 잘하라고 특별히 강조한 적도 없는데, 필요 이상으로 인사를 잘한다.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생님, 태권도 관장님, 학원 선생님, 학원에서 잠깐 만난 친구, 언니, 오빠, 같은 동에 사는 어른들과 또래 아이들, 놀이터에서 한 번 만난 친구들 등등.. 그냥 일단 한 번 만났다 하면 냅다 인사를 해댄다. 



 길 가다 인사하고 길 가다 인사하느라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 어른에게 하는 인사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90도로 인사한다. 누가 봐도 과할 정도다. 나는 이렇게 인사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주변에서 인사성이 밝다고 여기저기서 칭찬을 하긴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졸지에 예절교육을 잘 시킨 엄마로 둔갑해 버려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아이가 엄마가 인사 잘하는 걸 보고 본받은 거 아니에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 부분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인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러니 내 행동을 본받았다고 할 수 없다. 아직까지 첫째가 왜 인사를 잘하는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나도 원래는 인사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인사를 먼저 잘하지 않게 되었다.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내 얘기를 좀 들어주시라. 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게 된 이유는 이런 특정 부류의 사람들 때문이다. 



유형 1. 

먼저 인사하는 사람에게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 



 먼저 인사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용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나름대로 이쪽에서 먼저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는데, 그런 사람을 잡상인 취급하며 위아래로 훑어보거나 빤히 쳐다보며 상대의 인사를 무시해 버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날 하루는 정말 기분이 더럽다. 



 내가 왜 '친하지는 않지만 몇 번 봐서 먼저 인사했다는 이유'로 이런 잡상인이나 신천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돈을 꾸어달라고 요구하거나 보험을 들어달라고 한 적이 없고 단지 인사를 했을 뿐이다. 



 아예 생판 남에게 인사를 한 것도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동네에서 이웃 또는 학부모에게 인사했다. 사람 면전에 대고 인사를 했는데 씹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어린이집 차량을 기다리면서 같이 차량 기다리는 학부모들께 인사했는데 몇 번 씹혔다. 그래도 몇 번은 더 인사를 먼저 했던 것 같다. 그 뒤론 나도 더 이상 먼저 인사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인사를 씹히고 나면 하루종일 기분이 더럽고 언짢은데 인사 한 번으로 그날 하루가 망가진다고 생각해 보면 차라리 인사를 안 하고 안 씹히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고 가성비가 좋다는 결론 때문에 점점 더 먼저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아예 먼저 인사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눈을 피하거나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낌새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먼저 인사하지 않지만,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흔쾌히 먼저 인사를 한다. 이제 나는 인사를 받을 준비가 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만 인사를 하게 되는 눈치와 얍삽함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나이 든 어른이라도 마찬가지다. 어른이라면 아랫사람이 먼저 인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상 어디에도 당연한 것은 없다. 아랫사람도 나름대로의 번거로움을 감안하고 예우해 주기 위해 인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사는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남의 인사를 당연시하고, 상대가 인사하지 않으면 버릇없다며 욕하는 어른은 어른 취급도 해줄 필요가 없다. 나이는 그동안 어디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인사는 사람과 사람 간의 예의다. 상대가 먼저 인사했으면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기본 예의다. 가만히 보면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어른들이 수두룩하다. 상사가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데, 기분은 더럽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인사해야 하는 아랫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입장 바꿔 생각해 보자. 그런 불쾌한 감정으로 한 인사가 나에게 온다고 생각해 보자. 안 좋은 기운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온다면 안 받느니만 못한 인사다. 서로 기분 좋게 인사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걸까?



유형 2. 

상대가 인사할 때까지 인사하지 않는 사람. 



 이런 유형은 상대가 인사하면 인사를 받아주지만 먼저 인사는 절대 안 하는 유형이다. 나는 이걸 '인사 갑질'이라 부르기로 했다. 은연중에 상대가 내 아랫사람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항상 상대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고 나는 인사를 받아주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같은 학부모 입장이라도 항상 내가 먼저 인사하고 상대는 절대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인사 패턴이 반복된다면 상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같은 입장에 놓인 사람들이고, 그저 예의를 갖춰 인사했을 뿐인데, 내 직장 상사도 아니고 윗사람도 아닌데, 왜 매번 나만 먼저 인사해야 하는 걸까? 내가 학생이고 그 사람은 선생인 걸까? 그래서 매번 먼저 인사했던 예전과 달리 점점 먼저 인사하지 않게 되었다. 



유형 3. 

인사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애매한 부류의 사람들. 



 초면은 아니고 만난 적은 있지만, 혹은 잠시 안면을 튼 적은 있지만 인사를 해도 될지 조금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땐 그냥 안전하게 인사를 가볍게 하는 게 베스트이긴 하지만, 인사를 많이 씹히고 잡상인 취급을 많이 당했던 나는 은연중에 몸을 사리게 돼서 이런 애매한 경우엔 점점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인사를 했을 경우 물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인사하지? 그 정도로 우리가 친한가?'란 황당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기에, 애매한 경우엔 그냥 인사를 안 하게 된 것이다. 



유형 4.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사람들. 



 나는 학부모 입장이라 내가 겪은 것들을 말해보자면, 요즘 아파트 내 젊은 엄마들 중에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엄마들이 있다. 이분들은 그냥 인사 자체도 트고 싶지 않아 한다. 상대가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오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난다. 



 첫째가 1학년때, 아이가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같은 수업을 듣고 있길래 반가워서 그 엄마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저 OO 엄마예요. ㅁㅁ 엄마 되시죠? 우리 아이가 ㅁㅁ를 너무 좋아해요. 아까 놀이터에서도 만났는데, 이렇게 같은 수업을 듣는다니 정말 반갑네요."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상대아이 엄마는 그런 내 말을 들으며 "아, 그래요? 네. 네.."라고 대답하더니, 내가 미처 무슨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그럼, 안녕히 가세요."라고 미리 인사했다. 그 당시 나는 얼떨결에 작별인사를 당하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 뒤로 몇 번 더 마주쳤지만 내가 근처에 앉으면 그 엄마는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떴다. 나는 그때의 경험이 아직까지 충격으로 남아있다. 



 아마 상대 엄마가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사를 트고 알고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유독 젊은 엄마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며 다가가지 않는다.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고, 인사를 트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젊은 엄마들에 국한된 게 아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인사 자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은 개인주의가 많이 퍼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주고받고 싶지 않은데 계속 먼저 인사를 하는 것도 폭력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외에도 인사를 점점 먼저 하지 않게 된 이유를 들자면, 인사를 함으로써 생기는 필요이상의 에너지 소모와 감정 소모 때문이다. 인사를 함으로써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생략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냥 눈인사나 고개인사만 까딱하고 지나가는 문화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인사를 하는 게 뭐가 에너지 소모가 되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인사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더구나 아이를 통해 애매하게 아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레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늠하게 되고, 혹여나 상대가 싫어하거나 인사를 씹히면 어떡하지, 란 생각들 때문에 맘 편히 인사할 수 없어서 에너지 소모가 된다. 



 또한 인사할 사람이 많아져도 에너지 소모가 되는데, 가끔은 아파트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 때문에 모자와 마스크를 써도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인사를 많이 하게 되는데, 이것도 에너지 소모가 된다. 



 하지만 마땅히 인사를 해야 함에도 인사를 안 한 경우가 있다면, 그건 못 알아봤거나,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 경우다. 멍하게 쳐다보다가 '아, 인사해야지'하고 알아차렸는데, 상대가 이미 자리를 뜬 경우나,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겠지'라고 착각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예 인사를 안 하고 다닌다고 오해하면 금물이다. 나 또한 익숙하고 친한 사람들에겐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인사를 반갑게 주고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흔쾌히 인사하며, 자주 마주치는 이웃에게도 반갑게 인사한다. 이외에도 택배 아저씨, as기사님, 단지 내 청소 아주머니, 보완실 직원들 등등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눈을 마주치며 먼저 인사한다. 



 다만 인사했는데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며 상대의 인사를 당연시한다면 더 이상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라도 먼저 인사를 두세 번은 더 한다. 상대가 내 인사를 못 들었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인사를 받는 사람이라면, 먼저 인사하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반갑게 같이 인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하튼 인사는 기본예절인 것과 동시에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심한 행위 중 하나다. 인사를 잘하고 다니는 첫째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끔은 조금 덜 인사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낮은 에너지와 저질체력을 가진 엄마인 게 새삼 미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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