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코미디와 스포츠 물 사이
스포츠 명문 중고일관교 에이메이 중학교 3학년생으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배드민턴부 소속 이노마타 타이키는 고등학교 1학년 여자 농구부 카노 치나츠를 짝사랑한다. 그는 선배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매일 아침 일찍 체육관으로 개인 훈련하러 오고 있다. 치나츠의 부모님이 해외로 전근 간다는 소식에 동요하는 타이키지만, 둘의 어머니가 학창 시절 농구부 팀 동료였던 인연으로 인해 치나츠는 부모님을 따라 해외에 가지 않고 오히려 타이키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짝사랑하던 선배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으로 만화가 시작되는 설정이야말로 남자 주인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푸른 상자이지만, 이 만화는 어디까지나 러브 코미디일 뿐만 아니라 스포츠 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선배와 함께 전국대회에 가겠다는 순수한 열혈 스포츠맨 타이키에게 있어서 같은 집에서 산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이상한 마음을 품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 상황. 심란해질 때마다 운동으로 마음을 비우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순수하지 못한 어른 독자로서 귀엽기까지 하다.
사실, 만화 푸른 상자는 실패하기 힘든 구도이다. 전국대회 진출을 위해 노력하는 남자 주인공이 종목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전국대회를 위해 분투하는 짝사랑 여자 선배와 서로 격려해가며 성장한다는 구도는 우정, 노력, 승리라는 소년 만화의 공식과 일치한다. 거기에 러브 코미디의 요소를 그것도 여성 독자를 고려한 순정 만화에 가까운 분위기까지 끼얹은 만화는 성공의 공식을 잔뜩 안은 채로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제 이 작품의 관건은 러브 코미디와 스포츠 물 사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이다. 타이키는 농구를 위해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일본에 남기로 한 치나츠 선배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선배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함께 노력하는 동지로서 자신과 선배를 자리매김한 셈인데, 문제는 애초에 서로 간에 꽤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다는 점이다. 그게 동료로서 건 이성으로서 건 말이다.
1년 반 전이었나. 그날은 부활동 연습이 없었지만, 저는 집이 가까워서 짐을 정리하려고 어쩌다 학교에 갔거든요. 그랬더니. 그 후에 엄청 아깝게 전국 대회에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진짜 분했나 보다. 그렇게 분할만큼 열심히 했구나, 싶었죠. 저도 그만큼 열심히 해야겠다고….
엄청 고민했어. 가족들하고 헤어지는 건, 역시 외롭잖아. 하지만 중학교 부활동을… 은퇴할 때 어땠는지 떠올릴 기회가 있었어, 전국대회에 가고 싶었다고. 포기하기 싫다고. 네 덕분이야. 고마워. 이노마타 타이키.
저 대사에서 드러났듯이 둘은 서로에 대한 생각이 운동에서의 목표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인 상태. 그러니 러브 코미디와 스포츠 물이라는, 이쪽으로 대선배 격인 아다치 미츠루 만화에서는 자연스럽게 섞여 있던 두 장르가 푸른 상자에서는 공존하면서도 묘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진도가 나갈 듯 안 나갈 듯 서서히 작품은 진행되고, 서로를 의식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의식한다는 것을 내가 의식하는 심리 구도를 스포츠와 어떻게 엮어 나갈지, 그리고 타이키와 치나츠의 전국대회를 향한 노력을 얼마나 부각시킬 수 있을지가 이 작품의 관건일 듯싶다. 타이키가 배드민턴에서 노력하는 것에 비해 치나츠의 농구가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서—오히려 서브 여주이자 치나츠의 연적임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는 쵸노 히나의 리듬체조가 권이 진행되면서 부쩍 더 많이 묘사되는 감이 있어서—그 점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묘한 긴장 상태 속에서도 공동의 목표를 향한 타이키와 치나츠의 그리고 히나의 순수한 노력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후속 권이 기대된다.
학산문화사 블로그에 따르면 7월 중 제4권이 출간 예정이다. 구입 예정.
미우라 코우지. 푸른 상자. 학산문화사. 1-3권. 2022.
三浦 糀. アオのハ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