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에 얽힌 여러 삶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린다. 잘 오면 별 문제없지만 가끔 택배가 늦어지면 짜증 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상품에 배송중 문제로 추정되는 상처가 나있다든지 하면 이제 화가 치밀어 오른다. 택배 노조 파업으로 일부 지역 배송 중이라는 예전 기사가 떠오른다. 민주노총인지 뭔지 이 자식들을 빨리 안 쓸어버리고 뭐 하는 거야 등등 부아가 치민다.
이제 택배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해졌지만, 그전에도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의 상당수는 택배를 통해 내 손에 쥐어졌다. 그런데 주문한 지 한참 걸려서 도착한 것도 모자라 책 모서리가 찍힌 채 온 내 택배, 도대체 누가 어디로 갖고 다니다가 온 거야?
얼마 전에 주문해서 도착한 물건의 배송상태 추적을 다시 눌러본다.
서울의 옆옆 구(區)에 사는 사람에게 구입한 만화 헌책—3월 내로 리뷰를 여기 올릴 수 있기를—인데도 한 참을 돌아서 왔다. 그렇다면 물건을 보낸 사람과 나 사이에 끼어있는 곤지암Hub라는 곳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내 택배의 상태가 저런 걸까.
만화 까대기는 작가 이종철의 실제 삶에 기반을 두고 있는 택배 상하차 일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종류의 육체노동 중 가장 힘들다는 택배 회사 상하차인 까대기 알바를 만화는 과장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비참함을 드러내서 동정심을 자극하려고 하지도 않고, 노동자들이 각성해서 뭔가를 하려는 장면을 통해 선동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만화는 그저 까대기 노동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그러면서 택배 아저씨, 상하차 알바로 통칭되는 사람들, 택배 상태가 좋지 않을 때를 제외하곤 있는지 없는지 존재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오늘 배송된 택배 상자를 위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사연이 있고, 꿈이 있고, 가족이 있음을 까대기는 묵묵히 우리에게 말한다.
옥천이니 곤지암이니 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얼마나 많은 짐이 그리고 사람들이 그곳을 스쳐 가는지,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고용되어서 어느 방식으로 일하는지 작품은 보여준다.
그곳 사람들의 처우 그런 것은 오히려 이 작품에서 의외로 큰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택배 상자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읽는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택배 상자를 몇 개는 뜯게 되는 것이 요즘 우리 삶이다. 배송비가 붙으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무료배송부터 찾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택배가 늦게 오면 속상하고 뭔가 하자가 있으면 화가 난다.
하지만 까대기를 읽고 내 앞의 택배 상자가 여러 사람의 삶을 거쳤음을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안 보이는 익명의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내일 아침에 마주칠,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중인 누군가의 손을 거쳤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상하자 노동자들이 무사히 건강하게 퇴근하시기를.
이종철. 『까대기』 보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