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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Apr 01. 2022

월요일의 저녁 식탁

픽션 에세이_보통의 식탁_02







골목을 돌면 당신의 집이 있다. 당신은 1층 현관을 지나고 가파른 계단을 지나 허름한 3층 현관 앞에 다다른다.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현관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천천히 어둠을 헤집어 열쇠구멍을 찾지만, 열쇠 끝에 걸린 어둠은 굳게 닫힌 현관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녹슨 자물쇠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당신은 어둠 속에서 한참을 지체하고 나서야 비로소 집 안으로 들어선다. 현관을 열면 언제나 어둠뿐이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두렵고 서글프다. 거실 너머 어둠 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성큼 다가올 것만 같아 당신은 어깨를 잔뜩 웅크린다. 


당신은 오래전부터 4인용 식탁이 갖고 싶었다.
그저 거기에 앉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려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언제나처럼 온몸을 던져 당신을 향해 다가온다. 집 안의 어둠이 집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인지, 집 밖의 어둠이 집 안으로 스며드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당신은 이 모든 어둠을 외로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당신은 거실 등을 켜 어둠 가운데 작은 공간을 마련한다. 거실이라 할 것도 없는 작은 공간을 차지하던 사물들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며 시야로 들어온다. 구식 텔레비전과 텅 빈 벽에 걸린 시계, 불에 그을린 장판과 철지난 외투 한 벌. 그리고 거실과 주방의 사이에 어색하게 자리한 4인용 식탁. 


Ⓒpixabay


찾는 이도 드물고 혼자 사는 집에 4인용 식탁이라니. 당신은 지난봄에 가구점에 들러 식탁을 주문하며 한참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당신은 오래전부터 4인용 식탁이 갖고 싶었다. 당신은 그저 거기에 앉아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려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오래전 헤어진 애인이나 고향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헤어진 애인도, 고향집 어머니도 당신과 밥 먹을 일이 없음을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pixabay


당신은 냉장고를 열어 이틀 전 먹다 남긴 된장찌개를 꺼내고 김 한 봉지를 뜯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식탁 등의 불빛이 잠시 흔들린 것도 같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당신은 생각한다. 텔레비전 뉴스는 어느 먼 고장의 폭설을 전하고 있다. 온통 어둠뿐인 그곳에서 눈발이 어둠을 향해 마구 뛰어가고 있다. 그때 현관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 듯도 하였다. 바람은 불어오고, 당신은 먼 고장의 눈발이 바람을 타고 이곳까지 쏟아지는 상상을 해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식탁 등이 잠시 흔들린 듯도 했지만, 그것이 특별한 의미는 아닐 거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현관 밖 어둠은 바람결을 따라 현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당신의 식탁에서 천천히 흐느낀다. 당신은 고개를 돌려 현관을 바라본다. 바람은 불어오고 눈발이 당도하는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조동범, <보통의 식탁>(알마,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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