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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Dec 31. 2023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

픽션에세이_보통의 식탁_05






당신은 어디로 떠나려 하는가? 당신은 어쩌면 노르웨이의 전나무 숲이나 아이슬란드의 불과 얼음 혹은 알래스카의 백야나 옐로우나이프의 오로라와 마주하러 가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탄 비행기는 오랜 비행 끝에 이국의 낯선 도시에 당신을 내려줄 것이다. 당신은 공항에 내리는 순간 이국의 냄새를 온몸으로 감각할 것이고, 그제야 비로소 당신은 고국을 떠나왔음을 실감할 것이다. 당신은 낯선 이국의 '처음'으로 가득한 거리에 담겨 여행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처음’은 우리에게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하지만 '처음'인 곳을 향해 떠나는 두려움은 언제나 설렘과 흥분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렇기에 당신은 여행에서 돌아온 순간 언제나 또다시 떠나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당신이 이국의 음식을 먹으려 하는 것은
그것이 낯선 여행지의 진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여행지가 두려운 것은 그것이 익숙지 않고 경험해보지 못한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당신은 그동안 보아온 것과 다른 풍경을 마주한다. 여행지의 낯선 언어와 기후는 당신의 이성과 감성을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다. 당신은 설렘과 두려움을 지닌 채 낯선 세계를 탐문하는 여행자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당신은 홀로 거리를 걷고 밥을 먹고 고단하고 나른한 잠에 빠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떠나오기 전에 당신은 홀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홀로 떠난 여행이기에 당신은 이제 그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어쩌면 혼자 밥을 먹는 난처함보다 이국의 낯선 음식을 마주할 때 느끼는 이질감이 더 클지도 모르는 일이다.


Ⓒpixabay


그러나 당신은 여행지에서 음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음식을 언제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때로는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그것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기도 한다. 이국의 음식을 잘 먹는 것과 그 음식을 즐길 의향이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당신이 여행지에서 이국의 음식을 먹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여행지의 진짜 세계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지 식당에 앉아 현지인과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 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여행은 이국이라는 실체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행위가 된다. 연인들이 사랑을 속상이며 한 끼 식사를 할 때, 대가족이 둘러앉아 왁자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눌 때, 막 퇴근한 사람들이 선술집에서 한잔의 술을 나눌 때, 당신은 그들 곁에서 그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이국에 대한 이물감은 사라지고 비로소 그곳이 당신의 삶으로 들어서게 된다.


Ⓒpixabay


‘처음’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사람과의 인연이 그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그러하며, 낯선 환경과 맞닥뜨렸을 때도 그러하다. 그것은 때로 낯섦을 넘어 걱정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다고 피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여행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국의 음식을 먹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일도 아니다. 여행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서려면, 그리하여 이국이라는 낯선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현지 식당에 가야 한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음식을 먹는 사소한 행동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그래, 이국의 음식을 먹기 위해 이국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은 낯선 음식에 대한 단순한 도전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여행자가 내딛는 최초의 용기일지도 모른다. 자, 이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세계지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 세계의 진짜 모습을 향해.



조동범, <보통의 식탁>(알마,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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