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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Jan 27. 2024

먹을 수 없는 외로움

픽션 에세이_보통의 식탁_08







당신은 오랫동안 먹을 수 없었다. 식욕은 마치 혐오스러운 그 무엇처럼 당신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고, 당신의 몸은 눈에 띄게 야위어갔다. 당신은 위장이 텅 빈 상태일 때 살아 있음을 느끼곤 했다. 당신은 포만감을 지독히도 못 견뎌했지. 포만감을 느낄 때면 죄를 짓는 것 같았고 더러운 것이 묻은 것만 같아 혐오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곤 했지만, 먹은 이후에는 언제나 곧장 토하곤 했었다.


당신이 적극적으로 죽음 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신은 아무런 음식도 먹을 수 없었을 뿐이다.


변기를 붙들고 음식물을 토할 때 드는 참혹한 기분은 시간이 가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무수히 반복하는 일이었지만 그때마다 식욕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곤 했었다. 손가락을 넣고서 게워낼 것이 없을 때까지 비워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식욕에 대한 혐오가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생각해보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내는 당신은 그런 행동이 고통과 상처를 게워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었다. 


이제 당신은 놓아버린 마지막 숨을 끝으로 식욕이라는 짐도 내려놓았다. 죽음은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충분히 당신이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 죽음 이후에 당신은 텅 빈 공복의 순간을 기억할까. 침대에 누운 당신의 어깨는 침대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 당신의 손이 마지막으로 부여잡았던 침대 시트는 구겨진 채 느린 오후를 견디는 중이다. 동그랗게 웅크린 당신의 마지막 자세는 무엇을 끌어안으려 했는가. 당신의 앙상한 팔이 침대에 애처롭게 매달려 방바닥에 내려앉은 햇살 위에 걸린다. 


당신의 방은 단출하고 정갈하다. 책장의 책들이 가지런하게 앞 선을 맞추어 꽂혀 있다. 시집과 소설, 사진집과 인문서 등이 분야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심지어 시집은 번호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책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책상 위에는 당신이 읽다만 책이 고요히 놓여 있다. 나무로 만든 책갈피가 책 마지막 부분에 꽂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신은 이제 막 그 책의 결말을 읽던 참이었던 것 같다. 당신은 소설의 결말이 궁금하지도 않았나. 마지막 숨을 놓아버리기 전에 당신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바라보았을까.


Ⓒpixabay


죽음 직전까지 책을 읽었을 당신을 떠올리며 나는 당신의 죽음이 미필적고의였음을 직감한다. 당신은 죽음을 예감했을 것이다. 음식을 거부한 지 오래인 당신은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적극적으로 죽음 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신은 아무런 음식물도 먹을 수 없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당신은 죽음 직전에는 허기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극한의 지점까지 당신을 몰고 갔는지 알 수 없구나. 


당신은 허기조차 느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텅 빈 위장이 주는 허허로움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단출한 방의 모습은 모든 것을 게워내고자 했던 당신을 닮았다. 바짝 마른 어깨와 가슴과 등과 다리. 당신은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볍다. 한없이 가벼운 당신의 몸은 한 줌 모래처럼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당신은 한 줌의 재가 될 육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나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기다리는지 당신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곳에 숲의 풍요로운 햇살이나 새의 울음소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겠지. 당신의 적막은 어둠을 배경으로 한없는 고요를 펼쳐놓는다. 하지만 당신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당신의 허기는 이제야 최초의 안온함에 가닿는 것만 같다. 당신이 게워내려고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당신은 왜 먹는 것을 그토록 힘들어했나. 열린 창문으로 들어선 햇살이 당신의 어깨를 어루만진다. 당신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지금, 당신은 비로소 행복한가. 고요하게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가 저물어간다. 그리하여 세상은 당신의 한 줌 가벼운 삶을 천천히, 천천히 거두어들이려 한다.



조동범, <보통의 식탁>(알마,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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