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온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게 되는 특별한 날. 바로 제주도로 이주한 날이었다.
결혼 전부터 고향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고 싶어 했던 남편, 나 또한 그 부분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는 편이었다.(사실 막 남편만큼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
"일단 결혼하고 1년만 돈 모아서 가자 "
"그래 좋아"
우린 그렇게 결정을 하고 그때부터 틈틈이 제주도 가면 뭐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래도 약간 마음 한편에는 불안했다. 과연 이 편안하고 익숙한 생활들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의 친구들과 떨어져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외롭지 않을까? 등등 그래도 걱정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더욱 기대되었기에 나는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하던 중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준비해서 제주살이를 좀 만끽한 다음에 임신을 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일찍 찾아온 그녀. 하지만 임신했다고 해서 제주도 가는 것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출발 일정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서 100일까지 큰 문제없다면 그때 제주도로 가기로 말이다.
우리 바람대로 그녀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30일쯤 사경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을 오가면서 그 시기가 또 미뤄졌다. 이제는 못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보다는 아이의 건강이 더 걱정스러웠다. 제발 무탈하게 자라기를...
우리의 바람을 아이도 느꼈는지 치료도 아주 순조롭게 잘 받았고 물리치료 마지막 날 종합검사에서 사경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다. 아이가 다시 건강해진 것도 너무 기쁘고 계획대로 제주도로 갈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 그리고 슬슬 제주살이를 위하여 본격적으로 집을 구하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제주도 이주 이야기를 부모님께는 꽤 늦게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하려는 것에 반대 안 한 적이 없어서 조금 무서워서 최대한 미룬 것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꺼내니 친정 부모님들은 너무 쿨하게 받아들이셨다. 내가 서울 간다 했을 때도, 일본 워킹 간다 할 때도 반대가 먼저였는데.. 너무나 쿨해서 순간 당황 이제 결혼도 했으니 반대는 포기하셨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가만히 있으려니 안 되겠어 이 말은 꼭 해야겠어!"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신세한탄을 퍼부으셨다.
"애 셋을 키웠는데 곁에 남는 녀석은 하나도 없고 다 떠나고 자식 잘못 키운 건지 내가 팔자가 기구하다.. 다른 친구는 자식들이 다 집 근처에 살면서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고 그러던데 니들은 뭐냐!! 속상해"
그렇게 랩 하듯 쏘아붙이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나중에 찬찬히 하신 말을 생각해보니 좀 죄송스럽긴 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이 말 때문에 마음이 돌아서진 않았다. 뭐 친정엄마도 내가 마음먹으면 설득해도 안된다는 거 아시기에 그냥 답답해서 내뱉으셨던 것이다.
갈 때 다 되어 갈 때쯤에는 뼈 때리는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우리가 제주도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며 다니신다고 한다.
대망의 이주 날! 남편은 전날 밤 먼저 차를 끌고 배 타고 제주로 들어가고 나는 이주 당일에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날아갔다.
150일 남짓 된 아이와 함께 새로운 터전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은 설렘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여행이 아니라 이주를 위해서 타는 비행기라니 설레었고, 아이와 함께 그것도 단둘이 비행기는 처음이라 아이가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비행을 즐기고 있었고(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 바쁘고 승무원한테 빵긋 미소도 보내고 바쁘셨다. 이것도 이거대로 힘드네..) 도착해서 차에 딱 차자마자 잠들어주었다. 기특해 기특해.
제주 이주 첫날을 오후 늦게 도착해서 바다 잠시 보고 우리의 첫 제주 집으로 이동해서 푹 쉬고 다음날 전입신고를 마쳤고 이젠 진짜 제주도민이 되었다.
정리해야 할 짐들은 한가득이고 육아로 정신없었지만, 그냥 즐거웠다. 매일이 여행 같았고 아이와 아름다운 제주를 감상하는 게 너무 행복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제주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만 3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타지 살이가, 제주살이가 마냥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삶은 아니었다.
전원생활의 낭만도 있지만 벌레와의 전쟁도 시작되었으며, 배세권은 포기해야 했다. 문득문득 파고 들어오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고, 예상치 못한 위기와 맡닥들이기도 했다.
그래도 잘 풀린 일들도 많았고, 뜻깊은 일도 많았으며, 올해는 새로운 도전으로 민박도 오픈하게 되었다.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며 바다 건너 타지 생활을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시작했고 잘 해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리얼한 제주살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길 바라며 하나씩 풀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