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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는삶 Jan 24. 2023

자유란 시간의 축척을 통해 이뤄진다.


며칠 전 딸아이와 예술의 전당을 갔다 왔다. 요즘 아이가 클래식 음악 듣기가 좋다고 하면서 공연을 보고 싶다고 했다. 딸이 주위 사람들한테 클래식 이야기를 했는데 피아노 전공하는 지인이 이 공연을 추천해 주었다.  


딸은 클래식을 즐기기 시작한 게 얼마되질 않았다. 여느 젊은 아이들처럼 아이돌노래를 주로 듣는 편이다. 가끔 클래식 방송을 접하면서 점차 클래식 매력에 빠진듯하다. 나도 라디오에서 하는 클래식 방송을 듣곤 한다. 예전엔 클래식 장르가 나와 멀게 느껴졌는데 방송을 자꾸 접하다 보니 친숙해졌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청취자가 편하게 음악에 접할 수 있도록 선곡을 잘하는듯하다. 처음 듣는 음악인데도 첫 소절에 미소를 짓게 하는 경우도 있고 하던 일을 멈추고 집중하게 할 때도 있다. 여전히 난 클래식 제목은 외우기는 힘들다.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하나이다. 다른 명곡들은 ‘아 어디서 들어본 거다.’ 라며 감탄할 뿐이다.




이번 공연은 비올라와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이었다. 그다지 크지 않은 공연장인데 맨 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평일 저녁인데 객석은 대부분 채워졌다. 난 연주자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건지 유명한지는 알지 못했다. 객석이 꽉 찬 모습을 보니 꽤나 잘하시는 분들인가 보다 했다.


피아노는 약간 뒤에서 연주하고 비올라 연주가가 앞에 서서 연주를 시작했다. 1시간 30분 동안 연주는 계속되었다. 3파트로 나뉘어 연주했다. 모든 음악이 처음 들어봤다. 음악자체가 친숙하다 거나 내 마음을 파고들지는 못했다. 고요한 선율로 이뤄진 곡들이었다.


처음에는 지루했다. 평일저녁이라 피곤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30여분이 지나면서 연주자를 집중했다. 앞자리 있다 보니 비올라 연주자의 얼굴, 손, 활 움직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얼굴에서는 땀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조명 탓인지 열심히 연주를 하기 때문이진 알 수는 없었다. 잠깐 연주가 멈춘 틈에 뒤돌아서서 땀을 닦았다. 연주곡들은 화려한 연주 기술들을 선보이는 것들이었다. 왼손의 다섯 손가락들이 현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바삐 움직였다.  활대를 쥔오른손은 하나의 꼼지락 거림도 없이 안정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연주자 모습을 집중하면서 들으니 음악에 점차 빠져들었다. 음악을 듣는 건지 보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피아니스트는 비올라 연주자에 가려서 잘 보질 못했다. 손가락 터치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저 소리에만 만족했다.


딸아이는 취미로 바이올린을 했다. 중학교까지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다. 20대인 지금은 교회에서 예배 시 찬양대 연주를 하고 있다. 연주를 듣는 내내 어릴 적 배운 바이올린을 놓지 않고 계속 연주하는 게 잘했구나 싶었다. 독주는 못하지만 화음을 이루며 누군가와 함께 무대를 설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나도 취미로 해금을 연주한 지 거의 10년째 이른다. 아직도 듣기 민망한 소리로 연주를 한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쉬지 않고 연주하고 연습을 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서 좋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에 즐길 수 있는 게 참 좋다.


비올라 연주자의 현을 빠르게 눌러대는 모습과 활을 움직이는 팔놀림을 주목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저 연주자는 자유롭겠다.


여기서 자유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거다. 악보에 표시된 수많은 악보를 수백 번 보고 연습하면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거다. 땀까지 흘려가면서 몇 시간을 서서 연주를 한다는 건 대단한 거다.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연주를 하기 위해서 연주자들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왔을까? 난 상상하기 힘들다.


해금을 잡은 지 오래 시간이 흘렀지만 연습량은 얼마 되질 않았다. 작년에 공연을 앞두고 한곡만을 집중해서 연습했다. 3분 동안 연주하는 곡이었다. ‘적념’이라는 곡이다. 전체 곡 길이는 12분 이상이지만 난 앞쪽의 일부분만 연주했다. 악보는 종이 2장에 불과했다. 막상 공연을 한다고 하니 한마디 한 마디가 신경 쓰였다. 같은 마디를 수차례 연습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듣는 프로 연주가의 소리와는 멀게만 느껴졌다. 도대체 뭘 어떻게 연주해야 그런 소리가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껐만 연주했다. 민망했지만 우리들끼리 하는 것이라서 공연을 즐겼다.


예술가든 어떤 분야이든 간에 자신만의 목표치를 두고 연습에 몰두할 것이다.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원하는 점수를 얻는 것은 어려울 거다. 얼마나 노력을 해야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내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이 실현될 때 느낄 수 있는 자유함이란 어떤 것일까?


자유란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시간의 축척을 통해서 가능할 거다. 누군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어내는 것이다.


비록 취미로 하는 해금이지만 나만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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