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위해 작가명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각도 잘 나지 않는 여러 가지 아이디가 있었다. 깊이 생각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단어로 정했다. 오래 생각해 보아도 뭘로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내 이름을 사용해 볼까 했다. 왠지 멋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기분에 따라서 추상적인 어구나 단어를 사용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심리상태가 바뀌면 이름이 어울리지 않은 듯해서 변경했다.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았다.
지금 아이디는 ‘설레는 삶’이다. 지금 내 기분을 가장 표현한 말이다. 기분에 따라서 이름을 정하는 게 안될 것 같다. 그래도 그러고 싶다. 설레는 삶은 지금 내 삶, 앞으로 살아갈 삶에서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을 오래 간직하며 살고 싶다.
사람들은 ‘설렌다.’라는 말을 얼마나 마음속에 품거나 입 밖으로 내뱉고 살아갈까? 예전에 나는 이런 말을 거의 해보지 않은 듯하다. 명확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요즘 이 말을 가끔 꺼낸다. 그런 순간이 많아진 것인지 혹은 별것 아닌 것에도 내가 설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암튼 설레는 것은 내 머리를 거쳐서 가슴속까지 쓸어내는 감정이다. ‘좋다.’라고만 말하기는 뭔가 밋밋한 상황이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다고 파안대소를 할 만한 것은 아니다. 너무 강렬해서 가슴에서 절로 흥분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소중한 순간이 나에게 다가온 게 선물 같다. 이런 감정을 품을 수 있는 내가 더 귀하게 여겨진다.
김혜자 배우님은 아직은 설렌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무슨 역이 주어질까 그 생각만 해도 설레요.”
새로운 작품이 힘든 일이기도 할 거다. 그렇지만 새로운 작품, 역할을 만나면 설레는 감정이 생기나 보다. 설레는 감정을 나이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파고들 수 있는 거다. 김혜자 배우님은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배우라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니 부럽기만 하다.
1. 산에 펼쳐진 눈밭이 좋았다.
내 발로 직접 딛고 다가간 눈 쌓인 산을 바라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눈 호강이 이런 것이겠지. 사라지질 않는 아름다움을 나 혼자 오롯이 가진 느낌이랄까? 물론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펼쳐진 거다. 하지만 산 위에 올라가는 고생을 함께 해야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누가 얻어다 줄 수도 없는 내가 한 발 한 발 다가가서 얻은 거다. 마냥 좋아서 ’너무 좋다.‘라는 말이 멈추질 않는다.
2. 눈 길을 뛰어보았는가?
달리기를 시작해서 날씨에 상관없이 밖으로 나간다. 눈 오는 날에는 미끄러우니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가만히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눈을 맞으며 한발 한발 뛰는 기분은 최고다. 소리도 없이 눈발이 내 온몸을 덮어준다.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눈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곳에 내 발자국을 내는 기분은 덤으로 주어진다. 눈 온다는 날씨 소식이 있으면 아이처럼 설레며 기다려진다.
3. 고요한 사색의 공간으로 초대
미술작품 관람은 그다지 해보질 않았다. 보는 게 어떤 즐거움인지 아직은 모른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앎도 거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전시장을 방문했다. 추상미술을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했다. 처음에 보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설명을 들으니 그런가 보다 하면서 감상을 했다. 그런데 내 발길을 머물게 하는 작품이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졌다. 작가의 뜻이 무엇인지 그다지 관심도 없다. 그냥 내가 있는 이 공간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작가 이름도 외국인인데 길고 외우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 공간만은 잊지 못할 듯하다. 나를 감싸주는 고요한 순간에 감사했다.
왠지 미술 작품 관람을 더 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나에게는 예상할 수 없는 선물을 열어보는 설레는 순간이다. 앞으로도 어떤 설레는 순간들이 나에게 다가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