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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는삶 Apr 01. 2023

내가 쥐고 있는 인생 방향키

일요일 오후 늘 한가로운 시간이다. 웬만하면 남편과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곤 한다. 맞은편 테이블에서 세분의 여자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가까운 곳에 계셔서 무슨 얘기를 나누시는지 대충 알듯했다. 여행 얘기였다. 예전에 다녔거나 앞으로 가고 싶은 곳들에 대한 것이었다. 연세가 대략 70대 중 후반쯤 되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트레킹코스에 대한 것이었다. 가고 싶은 곳은 많으시나 운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힘든 일정은 피하시는 거였다.


요즘은 나보다 20년 정도 더 되신 분들을 보면 내 모습을 비춰보곤 한다. 그때 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 난 50대에 접어들었다. 각자에게 50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신체적으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나 또한 피할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서 일어나자마자 팔 돌리기를 몇 번 해야 조금 풀렸다. 오후가 되면 낮잠을 잠깐이라도 자두어야 몸이 회복되었다. 요즘 가장 힘든 건 눈이다. 핸드폰이나 TV를 30분 이상 보면 눈알이 쏟아질 듯 아프면서 두통까지 동반한다. 웬만해서 병원을 가지 않던 내가 안과검진을 가보았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유튜브나 넷플릭스 보는 걸 멈출 수밖에 없다.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며 시간을 때워야 할지 난감하다.


기억력은 또 어떤가? 예전에는 약속이나 일정을 굳이 적어놓지 않아도 줄줄이 외우고 다녔다. 하지만 요즘은 핸드폰에 날짜별로 반드시 기입한다. 가끔 핸드폰 달력을 보면서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켜 본다. 뭔가 기억해 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뭐가 있었는데….’  누군가와 약속을 하면 왠지 그날 선약을 잊고 이중약속을 한듯찜찜했다. 헛말은 왜 그리도 자주 튀어나오는 걸까?  ‘집은 밥에서 먹자!’라고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응 무슨 뜻인지 알겠어.’ 하면 어처구니없이 웃기만 한다.  냉장고 문을 왜 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파트 동 출입문, 집 현관문, 사무실 현관문 등 외워야 할 비번은 왜 이리 많을까? 헷갈리기도 하고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뇌 작동이 멈춘 것 같았다. 작동이 멈추는 게 오래되면 치매인 걸까?라는 잠깐의 염려를 하기도 한다.


그럼 이렇게 변해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면 살아야 할까? 몸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나. 아니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머리와 가슴에서 꿈틀대며 뭉글뭉글 일어나는 꿈이 있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점점 많아졌다.


우연히 보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에 마음이 꽂혔다. 고생길일 뿐인 그곳에 가고 싶었다. 한 달여 동안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가는 순례자들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유럽 관광지 영상을 볼 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내 나이가 몇 살이든 내 몸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일단 가보자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바람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가고 싶은 마음이 꿈틀꿈틀 대고 있다.


지금 당장은 못 가니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다. 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위해서 달리기를 시작한 건 아니다. 우연히 보게 된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여행프로그램에서 배우들이 이탈리아 평원을 아침마다 조깅하는 게 멋져 보였다.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였다. 그때부터 무작정 따라 했다. 어릴 적 가장 취약한 과목은 늘 체육이었다. 체육시간이면 숨고만 싶었다. 높이뛰기, 달리기, 던지기 등등 대부분 체육시간에 배우는 종목이 반아이들의 평균실력에 못 미쳤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일 분 달리기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한 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꿈에 한발 다가가고 있는 거다.


주위에서 달리기 하는 나에게 말했다.

50살 넘어서할 운동은 아닌데…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나?
이 나이에 난 그런 거 못해


그렇지 않았다. 다리에 근육이 생기면서 점차 더 건강해지고 있었다. 50살이라는 나이가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기에 장벽이 될 수 없는 거였다. 뱃살은 예전에 비해서 더 들어가면서 상의가 짧은 딸아이의 옷도 입고 다닌다. 지인 중에 날 보면서 함께 달리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5km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보기도 했다.


나도 여행을 다니면서 멋지게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달리기였다. 차근차근해나가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도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또한 지금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더 많이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마저 든다.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받아들이는 인생의 방향으로 살고 싶지만은 않다. 그 누군가와 반대방향으로 가슴이 설레면 나아가고 싶다. 내 인생방향키는 내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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