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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는삶 Jul 30. 2023

외로움을 즐겨볼까나


토요일 오후 2시경이다. 난 해금줄을 잡고 있다. 주말에 악기연습을 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다.


주말 아침이지만 가족들은 아침식사를 8시경 마쳤다. 고등학생 딸아이가 오전부터 독서실을 가야 해서 나머지 가족들도 일정을 맞추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각자 가야 할 곳으로 나갔다. 남편은 요사이 정신없이 바쁘다. 잦은 출장으로 일주일에 3-4일은 외박을 한다. 주말에도 여념 없이 일이 많다며 나간다.


아침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있다. 저절로 텔레비전을 켠다. 넷플렉스에서 새롭게 올라온  D P 시즌2를 보기 시작한다. 2편 정도 볼 때쯤 해금이라도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동안 해금연습을 전혀 하질 못했다.


큰 아이 방의 책상에 앉아서 해금을 잡는다. 계속 연습 중인 ‘적념’ 악보를 펼친다. 작년부터 시작해 일 년 동안 연습 중이다.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하면 지루하기 마련인데 이 곡은 그렇지 않다. 연습할 때마다 부족한 부분들만 느껴진다. 유튜브에서 유명한 해금 연주가가 연주한 적념을 들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이다. 흉내 내는 마음자세로 비슷한 소리가 날 때까지 연습만 한다.


아직도 내가 연주하는 적념은 듣기 불편하기만 하다. 묵묵히 연습하다가 해도 해도 안될 때 소리를 ’꺄악‘ 하고 지르기도 한다. 듣는 대상도 없는 허공에 화풀이를 해보는 거다. 그럼 속이 좀 풀리는 듯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해금을 잡는다. 그런데 가끔은 변화가 느껴질 때가 있다. 소리가 달라지거나 활의 움직임이 좀 더 유연해질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중모리의 첫번째 마디가 가장 중요하다. ‘솔’ , ‘라’  두 개의 음을 연이어 내야 한다. ‘솔’ 음을 강하게 켜고 ‘라’ 음으로 빠르게 연결한다. ‘라’ 음은 길게 연주하면서 서서히 사라지야 한다. 산조에 자주 나오는 꺾이는 느낌이 나면서 두 개의 음 연결이 유연해야 한다. 전체 연주 파트 중에서 가장 어렵다. 한 마디만 여러 번 해보아도 매번 듣기 불편하다. 오늘도 이 부분을 여러 번 해본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느낌이 난다. 두 개 연결되는 부분이 좀 더 부드러워졌다. 여전히 음은 거칠고 시끄럽다. 이 마디와 같은 부분이 뒤에서도 두세 번 반복된다. 그런데 긴장감이 점점 떨어지니 예전 느낌만이 난다. 그래도 약간의 변화를 감지한 게 좋았다.



단모리는 빠르게 음을 휘몰아친다. 활 놀림이 능숙해야 한다. 속도에 맞추느라 박자감이 어색하게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박자에 맞추어 활을 움직일 수 있었다. 활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하다 보니 부드럽게 마디가 연결되었다. 기분이 좋아서 빠른 부분을 다시 연습해 보았다. 점차 나아지는 게 이런 것이구나. 마지막 두 마디 밑 공간에 메모가 적혀있다. ‘음이 불안하고 지저분하다. ’이라고.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계속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었는데 어느덧 소리가 달라진 거다.



유튜브에서 어느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외로워야 생산적이 된다.


주말이면 예전에는 장보기를 하거나 남편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아이들과 남편 모두 일주일 동안 각자 스케줄로 정신없이 바쁘다. 나는 반대로 밤 12시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낮에는 정기적인 일정으로 외출을 하지만 저녁 6시면 귀가를 한다. 그러니 밤 시간은 오롯이 혼자이다. 평소에 내 전화기는 벨소리나 문자나 카톡 알림음이 많지 않다. 가족들과 전화로 소통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아무 일 없이 혼자 있을 때 뭐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외롭다는 표현은 아직은 적절치 않다. 감정이 힘든 건 아니다. 다만 한가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공백을 지혜롭게 채워나가고 싶다. 토요일 오후의 한가한 시간에 해금을 붙잡아보니 실력이 향상된 나를 발견했다. 약속을 잡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그럴 수만은 없지 않을까. 자칫 무료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아야겠다.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인정받고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에 몰두해도 자신감이 상승했다. 다음번 연습을 다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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