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은 쉼표

by 자유인

예약한 열차 출발 시간이 촉박해서

주차를 하지 않고 아들을 부산역에 내려주고

바로 숲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리그의 페르귄트 중에서

아침정경이 흘러나와서

바로 내리지 못하고 끝까지 들으며

글을 쓸 메모들을 정리했다

내리려고 하니

또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발목을 잡았다

에라 모르겠다!

의자를 뒤로 빼서

잠시 음악 감상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카리스마를 머금은 왈츠의 선율이

발레리나들의 군무를 떠오르게 했다

애절하게 시작해서 웅장하게 마무리되는 묘미!

이어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다단조 20번이 나와서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집에서 테이크 아웃해 온

캡슐로 내린 미지근해진 커피를 머금었다

음만 익숙하고 작곡가나 제목을 잘 모를 때

인터넷의 음악 검색으로 상세정보를 알 수 있는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하고 행복하다


타 지역의 야구 경기든 야구부 숙소든 군대든

언제나 그를 떠나보낼 때는

어미의 본능이 작동시키는 허전함을 느꼈다

이번에는 여자 친구가 사는 고향을 방문하고

부대로 복귀한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허전함보다는

아이들의 존재감이 조금은 든든하고

그래서인지 잔잔한 기쁨이 느껴졌다

아들의 설레임이 내게도 전해져서 그런가 보다


계속해서 차에서 내리지 못할 것 같아

음악을 끄고 숲으로 이동했다

눈을 시작으로 코와 귀와 피부와 마음까지

오감이 시원해졌다

마을의 어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오리고기 식당들을 보며

문득 드는 생각에 혼자 빙긋이 웃음이 났다

이 근방에서

가장 번성한 식당에서 예전에 친구와 식사를 하며

질서를 위해서 주말 주차관리만 하고

주중에는 인심을 좋게 쓰며 살고 싶어

수십 년동안 주차를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을

사장님께 들은 기억이 났다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라

베풀면서 살다 보니 번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의 이치는 단순하고 일관되게

배려를 외면하고

움켜잡아도 풍족해지지 아니하며

서로 보듬으며

베풀고 살아도 빈곤해지지 아니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