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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재 Apr 09. 2022

문구사 여행

컴퓨터를 켜니 낯선 이름의 파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문구사 여행’, 고개를 갸우뚱하며 클릭을 하자 삐쭉빼쭉 써 내려간 글이 한편 보인다. 맨 위에 자리 잡은 제목이 바로 ‘문구사 여행’이다. 금새 호기심이 발동해 글을 읽어 내려간다.


우리는 아빠의 차를 타고 문구사에 갔다.

문구사의 밖 풍경은 깨끗하고 예뻤다.

문구사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이 있었다.

우리는 물건을 쭉 둘러보았다.

아빠의 찜질팩도 고르고 나와 친구의 노트도 고르고 엄마가 누군가에게 준다는 선물 등등 많은 제품을 샀다. 먼저 내 용돈으로 나와 친구의 노트 총 3개를 계산했다.

500원이라고 해서 3개면 1,500원 인줄 알았는데 계산을 해보니 500원보다 150원이나 더 싼 350원이었다. 그래서 3개로 1,050원이 되었다.

그런데 또 내가 50원이 없다고 했더니 나는 애기니까 1,000원만 받겠다고 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1,000원을 드렸다. 현금 영수증도 받았다.

계산을 해주시는 아주머니께 나는 너무나 고마워 다음에 또 문구사를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계산과 엄마, 아빠의 물건도 계산을 하고 문구사 여행을 끝냈다.

문구사를 떠나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좀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조금씩 조금씩 옮겨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차를 탔다.

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문구사는 참 좋은 곳이라고.


얼마 전, 아홉 살 아이가 나의 글 쓰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더니 “아빠, 나도 글 쓸거야” 하고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컴퓨터 화면을 응시한 채 “그래, 우리 아들도 쓰고 싶은 것 있으면 써 봐요” 하고 조금은 형식적인 대답을 남겼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의지를 곧바로 실행해 옮긴 것이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조금은 놀랐다. 글의 완성도가 제법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자식을 사랑하는 팔불출의 눈이 작용한 것 일수도 있다). 맞춤법과 문법도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내용 역시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문구사 밖의 풍경부터 시작해 문구사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는 과정이 상세히 전달되고 있었다. 계산의 과정에서 아주머니에게 받은 호의와 그 호의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다. 문구사를 나서는 아쉬움과 함께 그곳에 대한 평가까지,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호흡이 긴 글임에도 차분히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아이가 문구사에서 느꼈던 감정은 곧 나의 감정이기도 했다. ‘여행’,  ‘참 좋은 곳’ 이라는 문구가 왜 그렇게 뇌리에 맴돌던지, 나는 아이에게 문구사가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 이유를 물었다. 아이는 “구경거리도 많고, 내가 사고 싶은 물건도 많고, 가격도 싸고, 아주머니도 친절하시잖아. 그리고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가서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잖아. 그래서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 했어” 하며 눈꼬리가 올라갔다.

   

나 역시 문구사는 설레는 장소 중 하나다. 문구사는 규모와 성격이 달라지긴 했지만 내 발길을 그토록 붙잡아 매어 두던 어렸을 적 문방구를 떠올리게 한다. 학교 앞 문방구는 지금 생각하면 별 것이 없는데도 늘 신기한 공간이었다. 딱히 살 것도 아니면서 한참을 뱅뱅 돌며 놓인 물건들을 들었다 놨다 하곤 했다. 아폴로, 쫀드기, 건빵, 사탕(지금으로 따지면 알약 패키지 같은 곳에 마치 알약처럼 조그만 사탕을 넣어 팔았다) 같은 먹거리부터 구슬, 그림딱지, 그림스티커, 뽑기 같은 놀이거리까지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은 빛이 났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친구들 모두가 그러했으니까.

   

가족이 함께 간 문구사는 창고형 할인매장이었다. 외곽에 위치해 차로 1시간 정도를 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규모가 굉장히 크고 문구뿐만 아니라 장난감, 각종 생활용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 정도면 잡화점이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유행이 지난 물건(그렇다고 제품의 질이나 사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을 땡처리 하듯 싼 가격에 내놓는 경우가 있어 단체 선물이 필요할 때는 적격이었다.

   

또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이것저것 구경하다 한 두 시간 지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애초에 구입할 물건의 목록을 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그곳에 가면 예정에 없던 구입 목록이 생기곤 했다. 특히 나와 아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어서 종종 칭찬 선물로 주고 싶은 것들이 쇼핑 바구니에 가득 채워졌다.

   

어찌 보면 문구사는 마트나 백화점 같은 쇼핑몰과는 다르게 물건의 규격이나 가격, 종류에 대한 부담이 덜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각종 캐릭터가 박힌 디자인도 다양해지고, 세분화된 용도에 따라 종류도 많아졌다. 하지만 생활에서 늘 함께 하는 그 친근성은 변함없이 유효했다. 오히려 원하는 것을 더 쉽게 고르고 구하면서 소비의 패턴은 빨라졌다.  

   

매장 안을 돌며 ‘이 디자인 너무 예쁘다’, ‘우와! 이렇게 저렴해, 몇 개 사둬야 겠는걸’, ‘이건 어디다 쓰는 거지?’를 내뱉으며 발걸음이 몇 번은 멈춰졌다. 흡사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갔던 장터에서 ‘엄마, 저기 귀여운 토끼가 있어’,  ‘엄마, 통닭 냄새 진짜 좋다’, ‘엄마, 파란색 장화 사주면 안 돼?’ 하며 마음을 빼앗기던 그 모습이다. 온갖 구경거리로 신기했던 그 때, 문구사는 그 때의 추억을 소환한다.

   

첫째 아이는 미니노트를 몇 권 샀다. 학년을 올라가며 헤어질 친구에게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 싶단다. 여섯 살 둘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박힌 연필과 미니 가방을 냉큼 들고서는 “이거 가지고 싶은데...” 한다. 결국은 사달라는 말이다. 아내는 일 년 동안 열심히 함께 해준 학생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색연필을 골랐다.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만나게 될 친구들을 위한 메모지, 메모장을 선택했다.

   

이쯤 되고 보니 아이의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할 볼거리가 있고, 또 오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니 이 정도면 ‘여행’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을 사고 누군가에게 나눠 줄 선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이니 이 정도면 ‘참 좋은 곳’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재미란 바로 이런데서 느껴지는 감정이리라. 그래서 발걸음은 더뎌지고 떠나는 마음은 아쉽기만 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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