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쾌재 Jun 18. 2022

그물질 말고 낚시질

공정한 경쟁

어쩌면 있을 법한 상상의 우화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아프리카의 작은 초원 아작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식동물과 어딘가에 숨어 그 초식동물을 노리는 육식 동물, 그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에도 질서는 존재했다. 이 초원에서 힘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두 마리 사자, 막자바와 야비해! 녀석들은 배가 고프면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해 배를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더 사냥을 잘하는지 두 녀석이 시비가 붙었다. 막자바가 먼저 으르렁거린다. “아무래도 사냥 기술은 내가 더 낫지 않겠어? 너는 나보다 달리기도 느리고!” 그러자 야비해가 맞대응한다. “내가 너보다 달리기는 느려도 순간적인 공격이 빨라서 아무래도 더 낫지!” 우스갯소리로 시작된 서로의 자랑은 마침내 잡아오는 먹잇감의 개수로 우열을 가리자는 무모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두 마리 사자는 자신의 사냥 기술을 뽐내고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 닥치는 대로 크고 작은 짐승들을 잡아 죽였다. 배를 채우기에는 한 마리의 사냥감이면 충분한 것을. 초원에 함께 살던 동물들은 두 사자의 무차별한 공격으로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심지어 육식을 하는 다른 동물들의 먹이마저 없어져 갔다. 결국 굶어죽는 동물들이 늘어갔고, 그나마 풀을 뜯으며 숨을 유지하다 쓰러져 갔다. 정글은 차츰 먹이사슬의 파괴로 폐허가 되어 갔다. 

   

옛날에 공자라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은 ‘낚시질은 하시되 그물질은 하지 않으시며, 주살질은 하시되 잠자는 새는 쏘아 맞히지 않으셨다.’ 고 한다. 

   

물고기를 쉽게 많이 잡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바로 큰 그물을 던지면 된다. 하지만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지 않는 이상 많은 물고기를 잡은들 무엇하랴. 내가 먹을 만큼만 낚시질 해 잡으면 된다. 주살은 화살 끝에 줄을 매달아 놓은 것이다. 줄이 매달려 있으니 날아간 화살이 한정 없이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에서 멈춘다. 그러니 딱 원하는 대상만 타겟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잠자는 새는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위험에 처했을 때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무대응의 상황을 활용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은 비겁한 방법이다. 상대도 자신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인지하고 방어할 기회는 가질 수 있어야 억울하지는 않는 법이다.

   

여기에 보여 지는 공자의 모습은 내 배 부르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이들이 함께 이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상행과 조화의 실천자이다. 더 가지려고만 하는 이들에게 내가 필요한 만큼을 취하고, 또 무언가를 얻기 위해 비겁한 수단을 쓰지 않는 기본적인 양심이 무엇인가를 실천의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를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타인의 영역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분명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적잖은 이기주의에 노출되어 있다. ‘내 배 부르는 것도 모자라는데, 남 배려해 줄 여유가 어디 있어! 배려해준다고 그 사람들이 고마움을 알기나 할 것 같애!’ 라며 하나라도 더 내 것 챙기는데 눈을 크게 뜬다. 자본주의가 강조되면 될수록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은 비교적 당연한 논리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다보니 갖가지 비겁한 방법이 거리낌 없이 동원되기도 한다. 

   

어느 동네에 A, B 라는 만두가게가 서로 마주보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두 가게 모두 먹고 살만큼 장사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구청에서 A가게에 단속을 나왔다. 만두에 들어가는 소의 재료로 먹기 어려운 음식물 찌꺼기를 사용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제보는 허위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허위 소문이 났던 가게에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제보가 들어감과 동시에 음식물 찌꺼기를 사용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것이다. 결국 그 만두가게는 문을 닫았고, 허위 사실을 제보한 B가게는 쾌재를 불렀다. 

   

이러한 종류의 일들은 굳이 이야기로 꾸며보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한번쯤은 듣는 얘기가 되어 버렸다. 사실 상생과 조화의 가치를 얘기하기에 앞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공정한 경쟁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인정하면서, 그 욕구의 추구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얻어진다면 나와 상대방의 발전을 위한 자극이 되어 질 수 있다. 때문에 분명 내 것을 가지면서도 그들이 그들의 것을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비겁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 것, 그것이 서로의 이익 추구를 인정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공정한 경쟁의 과정인 것이다. 공자가 보여주고 있는 삶의 실천은 바로 이러한 틀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 : 공자의 이야기는《논어》 <술이> 편 「子 釣而不綱 弋不射宿」(공자께서는 낚시질은 하시되 그물질은 하지 않으시며, 주살질은 하시되 잠자는 새는 쏘아 맞히지 않으셨다.)


작가의 이전글 다섯손가락이 만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