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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식PM Apr 03. 2023

스타트렉이 흥미로운 이유

오랜만에 글을 쓰는데, 주제가 이질적이다. 나는 스타트렉을 좋아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특이할 만큼 인터스텔라가 흥행하고, 유튜브의 과학 채널들이 흥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우주와 과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한국에서도 스타트렉은 꽤나 마니악한 작품이다.


스타트렉을 처음 인지하게 된 것은, 빅뱅이론이라는 미드에서였다. 배틀스타 갤럭티카와 스타트렉에 대해 떠들어대는 주인공들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이후 개봉한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을 보며, 스타트렉의 주인공들과 세계관에 매료되었고, 당시 가장 최근의 TV시리즈였던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를 정주행 하게 된다. 이후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트렉 TNG(The Next Generation)를 보았고, 지금은 스타트렉 Voyager를 보고 있다. (오리지널인 TOS는 1960년대 작품이라 후일을 기약한다...)


이 유명한 짤의 주인공은, 스타트렉 TNG의 피카드 선장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비슷할 것 같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 진보한 과학 기술에 대한 상상, 특히 우주 공간에서의 화려한 전투? 그러나 TV시리즈 스타트렉은 전투 장면이 매우 적은 데다가 화려하지도 않다. 무기라 할 만한 것은 페이저, 광자 어뢰뿐이다. TNG는 1987년~1994년, Voyager는 1994년~2001년 사이에 방영됐다. CG며 화질이며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런 것을 왜 좋아한다는 것인가. 스타트렉은 내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 어디까지가 지적 존재인가?

TNG에서는 인조인간 장교 '데이터' 소령이 있다. 양자 컴퓨터 두뇌와 높은 신체 능력 덕분에 큰 활약을 하지만, 인간의 유머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갈망한다. Voyager에서는 응급 의료 상황 대비를 위해 프로그래밍된 홀로그램 의사가 있다. 자신을 홀로그램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하다가, 모험 과정에서 어엿한 구성원이 되고, 스스로 슈바이처라는 이름까지 짓게 된다.


이들을 보면, 지적 존재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유기체가 아니라도, 학습하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인간과 동일한 지적 생명체인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인간도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유전자 운반 기계 아닌가? 동물과 인간은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서 외계 종족이나 AI와 인간을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TNG의 데이터 소령. 빅뱅이론에 출연하기도 했다.



2. 이성과 합리성이 항상 옳은가?

우주 연방에는 벌컨이라는 종족이 있다. 이들은 감정이 없는 이성적인 종족으로 묘사된다. 때문에 항상 인간의 감정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반대한다. 재미있는 점은, 벌컨은 항상 인간의 고집에 진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모험과 열정이 없다면, 인간의 진보가 가능했을까? 이성이 항상 옳은 것인가? 


르네상스 이후 과학 발전, 산업 혁명, IT기술과 AI까지 오게 된 지 고작 몇 백 년이다. 세기말까지 만연했던 이성 중심주의에 대해, 스타트렉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질문을 던진다. 




3. 상대방을 도와주려는 행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

여러 종족이 모여 만든 우주 연방은 심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스타플릿'이라는 조직을 운영한다. 군대와 비슷하지만 어디까지나 목표는 이종족과의 교류와 탐험이다. 다양한 에피소드 중, 상급 장교들 사이에서 Prime directive라는 용어가 자주 나온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보다 덜 발달된 문명에는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문화 개입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많아서였으리라. 


만약 어떤 외계 종족이 히틀러에게 원자력 기술을 전수했다고 가정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저 얻은 기술은 종족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


영화 스타트렉 다크니스 도입부에서, 외계 원시 부족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화산 폭발을 미리 막는 장면이 나온다. 원시 부족은 바닷속에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스타플릿 우주선을 보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며 신처럼 받들게 된다. 어려움에 처한 종족을 도와준 것이지만, 이것은 프라임 디렉티브를 어긴 것이다. 나보다 강한 존재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자력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므로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물론 이런 원칙도 가볍게 씹어버리는(?) 것이 커크 선장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처럼, 프라임 디렉티브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선의로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행동이, 오히려 그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그의 경쟁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개입, 간섭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자녀 교육까지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가벼운 소재의 영화/드라마를 좋아한다. 즐겁기 위해서 보는 것인데 골치 아프기 싫어서다. 그러나 항상 여운이 남는 작품들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들이었다. 


인물도 다면적인 캐릭터가 좋다. 슈퍼맨보다는 배트맨이, 대놓고 그냥 악당보다는 조커와 타노스가, 캡틴 아메리카보다는 토니 스타크를 좋아한다. 감정적이고, 내로남불 심한 주인공들...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것 아닐까? 


나는 그래서 스타트렉이 좋다. 그러나 스타트렉으로 대화를 할 사람이 없어서 슬프다. 외로운 덕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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