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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투케이 May 25. 2024

다소 개인적인 일의 의미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은 우리 엄마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은 우리 엄마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엄마는 4녀 1남의 형제들 중 공부를 제일 잘했다고 했다. 이모들은 우리 엄마가 본인 돌잔치에 돌 떡을 날랐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영특했던 엄마는 학력고사 시절, 1 지망 대학에 떨어졌지만 2 지망 대학에 전액장학금으로 진학했다. 70-80년대 사업이 번창하던 시절 할아버지는 대학원을 다니던 엄마에게 유학을 권했다. 엄마 말로는 공부를 잘하긴 했지만 더 공부하고 싶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아빠의 직장이 옮겨 다니는 데로 짧으면 1-2년에 한 번 꼴로 길면 3-4년의 한번 꼴로 지방 곳곳을 이사 다녀야 했다. 30대의 엄마는 나와 동생을 양육하느라, 매번 이사를 다니느라 정말로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와중 엄마의 몸도 크게 아팠다. 자연스럽게 엄마의 커리어는 없던 일이 되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결혼하고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고 했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서 몸이 허락하지 않아서 포기해야 했다고 했다. 


아주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와 동생을 잘 양육하기 위해, 나의 원가족을 잘 지탱하기 위해 엄마는 주부를 택했지만 어린 나는 엄마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았을지도 모른다. 청소년이 되고 대학에 가고 나서부터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맨트라를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불교 용어로는 까르마라고도 하고 심리학에서는 엄마에 대한 동일시라고 할 수도 있다. 엄마의 유일한 딸이자 첫째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유난히도 가까웠다. 친구가 중요한 청소년 시절에도 나는 친구보다 엄마가 더 소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사를 많이 다녔기에 늘 이방인이라 느꼈고 소꿉놀이부터 같이 하던 오래된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엄마의 생각, 엄마의 성격,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랐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처음 했던 MBTI가 엄마의 MBTI와 똑같았다는 거다. 


나는 엄마가 1 지망으로 지원했던 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엄마가 망설였던 유학을 갔다. 나는 엄마가 꿈꾸었던 교수라는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 대부터 내려오던) 오랜 꿈이 좌절되며 엄마처럼 몸이 아프지 않았지만 마음이 정말로 많이 아팠다. 불안과 우울에 오랜 기간 상담을 하고 약을 먹고 나서야 나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성으로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엄마의 삶을 보상하기 위한 처절함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엄마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산다. 나는 여전히 엄마와 가깝지만 나는 이제 엄마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 태어난 지 40년이 다 되어서야, 엄마와 떨어져 산지 15년이 다 돼서야 내 삶에서 엄마를 놓아주고 있다. 나는 엄마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엄마의 열심과 진지함, 상대에 대한 따듯함과 친절과 배려, 무엇보다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긍정으로 대하는 그 마음자세. 나를 상담해 주던 상담사 선생님은 엄마와 30분 얘기하고 나서 엄마의 사고방식과 삶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칭찬의 칭찬을 거듭했다. 우리 엄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와 나와 동생 모두에게 은인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난 엄마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 


고마운 엄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엄마의 결핍을 그대로 물려받으며 살았고 거리 두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살았다. 나에게도 아이들이 있다. 나는 딸이 두 명이나 있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 내 결핍을 우리 딸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엄마에게 감사하지만 엄마는 내가 아니라고 의식적으로 되뇌며 산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특히 우리 첫째 딸은)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라고 의식적으로 되뇌며 산다. 지금의 나의 삶은 25년 전 엄마의 삶과 전혀 다르게 가고 있다.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이지만, 예전 처럼 일을 못한다면 내 전부가 무너지는 듯한 간절한 의미는 아니다. 엄마의 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땠을 지 생각하고 나서야, 엄마에게 진정으로 감사하고 나서야, 나는 엄마의 삶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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