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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투케이 May 19. 2024

퇴사하겠습니다

회사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북리뷰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한국어 책 섹션이 있다. 가끔 아이들과 도서관에 갈 때면 어떤 책이 있나 들여다보곤 하는데 몇 주 전 내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책, 이나가키 에미코퇴사하겠습니다. 아사히 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던 일본인이 본인의 퇴사 경험을 써놓은 에세이이다. 펴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린 이유는 그녀의 사는 곳과 하는 일과 가족관계과 나와 다를지언정, 회사에서 일하며 퇴사를 꿈꾸었다는 점이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늦은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기까지 14년이 걸렸기에, 30대가 되어서야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어렵게 찾은 게 테크회사 연구직이다. 그런데 이 테크회사라는 게 대우도 벌이도 좋은데 나는 참으로 이상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책에서 작가는 말했다.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월급 좋은 대우에 익숙해지면 거기서 벗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 생략...] 그 결과 자유로운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인생은 공포와 불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지난 몇 년 간 미국에서 회사원으로서 사는 삶은 공포까지는 아니어도 불안은 느끼기에 충분했다. 최근의 테크회사의 잦은 인원감축이 그 원인이라면 원인일 수 도 있다 (이전 글). 하지만 꼭 인원 감축이 아니어도 회사원은 내가 회사 돈을 버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핵심일 수 도 있다. 다시 말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그 대가로 월급도 보너스도 받고 건강 보험도 유지할 수 있으며 은퇴자금도 모을 수 있고 각종 복지 혜택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 관점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자유로운 정신이 사라지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다. 


책에서 작가는 퇴사를 준비하며 소비를 줄이고 '돈을 쓰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냉장고도 욕조도 없는 집에서 살며 돈이 필요 없는 즐거움을 찾았다 했다. 


"행복이란 게 대체 뭘까요. 우리는 매일같이 물건이나 돈이나 지위를 추구하며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걸 손에 넣으면 행복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 생략...] 나는 그때껏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버리는 것이야말로, 어떠면 진정한 행복과 통하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


윗문장들만 보면 돈을 안 벌면 안 쓰겠다는 자기 합리화와 정신승리가 이끌어낸 결과라 생각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늦은 나이에 일을 시작해서 모아둔 돈도 없고,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은퇴자금은 이제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작가가 말한 돈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라는 게 어느 정도 울림을 주었는지, 안 그래도 회사 밖의 즐거움을 찾고 싶던 나에게 무엇이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지 생각하게 했다. 


나는 우리 딸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단 10분만이라도 집중해서 아이들의 놀이에 같이 끼여 놀고 그녀들이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내가 무슨 복을 지어 이렇게 소중한 존재들이 나에게 왔는지 신께 감사드리고 온 우주를 가진 거 같은 그런 행복감이다. 또, 나는 동네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동네를 걷다 보면 계절 변화가 확연히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날에는 꽃이 피는지도 몰랐던 나무에 희한한 꽃이 피고 어느 날에는 처음 보는 새가 날아가고 어느 날에는 하늘이 평소보다는 두 배는 넘게 올라가 있다. 걸으며 계절을 느낀다는 게 주는 행복감도 꽤 크다. 마지막으로 글쓰기가 주는 행복감도 좋다. 구름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한자리에 앉아 집중하고 활자로 옮기고 나면 나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은 만족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아무도 권하지 않았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의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지 않는 이상 나는 당장은 퇴사할 계획이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일이 주는 즐거움을 이유로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할 거다. 그래도 책을 통해 내가 느낀 가장 큰 키워드는 회사로부터의 자유이다. 금전적으로는 내가 가진 부채를 빨리 갚을수록 회사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다. 심리적으로는 회사 밖에서 돈이 주지 않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더 자주 느끼며 살 수록 자유로워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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