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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09. 2023

새벽 1시, 투신자살을 하려던 순간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1. 첫 번째 이야기: 투신자살의 실패(1)

-2023.07.02.(일)


최근 나는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던 월세방을 부동산에 놓았고, 1년 넘게 받아오던 상담을 긴급하게 종결했었다. 그동안 자주 얼굴을 보지 못했던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만남을 가졌고, 친한 언니와도 맛있는 식사를 나누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마지막으로 주변의 삶을 정리해 갔던 과정이었다.


유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지막 극단적인 선택을 하러 이동하기 전 방을 한번 깨끗하게 정리한 것? 그것이 다였다. 소중했던 물품들이나 옷, 뭐 이런 자잘한 것들까지 마음을 쓰며 정리할 만큼의 여유가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날 나는 그렇게 마지막 유서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유서라는 것은 난생처음 작성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쓸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더라. 상담에서도 아직까지 꺼내놓지 못했던 내 어려움들을 유서라고 그 위에 글자로 써 내려갈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어떤 이야기도 쓸 수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편안해지고 싶어요.
이제 그만 편안해지고 싶습니다.
모든 게 다 버거워요
그만할래요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모두 감사했습니다

내가 작성해 놓았던 유서 내용이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홀로 고통 속에 버텨왔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모든 짊을 혼자 안고 가는 내 현실이 많이 바보 같고 서글프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PTSD). 삶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고, 그 일로 누구에게도 화 한번 내지 못했었다. 투정도 한번 부리지 못했던 나는, 역시나 바보 같은 유서를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괜찮았다. 뭐가 됐든 나만 죽으면 그동안의 고통? 앞으로의 고통은 모두 끝나는 것이기에. 이것이면 됐다고 나를 달랬다. 그 마음을 가지니 무덤덤해지더라. 이제 끝이니까.


어두운 밤. 나는 그동안 미리 사전조사를 마쳐 놓았던 집 근처의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 무서움? 두려움? 삶에 대한 아쉬움? 아니. 그저 빨리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나에게는 감정이 없었다.  


6차선의 도로? 횡단보도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 오가는 6차선 도로를 그대로 가로질렀다. 차가 보여도 무섭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바로 보이는 617동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꼭대기층을 누르고 있는 나를 마주했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말이다.


다행히 옥상문은 열려있었고 환하게 빛나고 있는 둥근달을 가까이서 마주했다. 달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옥상 아래 비치는 불빛, 야경들도 참 예쁘고 아름답더라.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알고 있었다. 투신자살의 경우 15층의 높이에서 떨어지면 즉사의 확률이 높다는 것을. 대신 떨어지는 중간에 나무나, 건축물에 걸리면 그 확률은 떨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자리를 잡았다. 나무가 없는 곳. 그리고 바닥이 보이는 장소로 말이다. 다행히 옥상에서 내려 봤을 때 평지가 펼쳐진 장소가 있더라. 그렇게 안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 자리 난간에 섰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시원했다. 마음도 편안했다. 그런데 억울하기도 하더라. 순간 마음이 울렁였다. 그렇게 나는 홀로 옥상에 서서 오랫동안을 울었다. 나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아니. 그저 평범한 삶이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화도 나더라.


머릿속으로도 여러 사람들이 스치듯 생각났다. 상담 선생님. 부장님, 친한 지인 언니가. 그리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무섭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무서웠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옥상에 난간에 서서 친한 지인 언니와 짧은 통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통화를 끊고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 그래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도 해 봤다. 마음을 다잡고 난간에 다시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떨어질 용기를 다잡고 있던 순간 갑자기 아파트 옥상 철문이 벌컥 열렸다. 마구 움직이던 손전등의 밝은 불빛.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차린 나는 내 양팔이 경찰에게 꽉 붙잡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은 소리쳤다.

"가만히 계세요. 거부하시면 수갑 채웁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 시간에 이곳에 계신 이유가 뭔가요."

"ㅇㅇㅇ씨 맞으시죠."

"같이 내려가시죠."

깜짝 놀랐다. 그래서 뭐냐고, 왜 이러시냐고 소리쳤다. 내려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던 나는 핸드폰을 마구 떨구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발을 구르기도 했다. 그런데 경찰의 힘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믿어지지 않게. 나는 경찰차를 타고 근처 지구대로 이송되었다. 꿈인 것 같았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일까. 내가 왜 잡혔을까. 나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그 아파트 옥상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아무리 경찰이라지만 도대체 어떻게 찾을 수 있었을까. 믿을 수가 없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내가 전화통화를 했던 지인은 내 상황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동생이 자살을 하려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내 핸드폰은  위치추적을 당하게 되었고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가던 시간,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경찰에게 붙잡히게 된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에 정신이 없던 찰나,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언니에 대한 증오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신고는 어떻게 해서 나를 살려냈는지. 화가 너무 나서 내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곧 다음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이어집니다.

#2. 투신자살의 실패(2)
#3. 새벽 2시, 지구대로 달려온 소중한 사람들
#4. 새벽 6시, 정신병원에 강제 응급입원 되다
#5. 폐쇄 정신병동에서의 우여곡절
#6. 퇴원을 하기 위한 발버둥
#7. 잘못했습니다/다시 되찾은 삶
#8.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편지글
#9.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10. 다시 시작하는 두 번째 인생

삶과 죽음의 순간, 경험했던 모든 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또 다시 같은 상황으로 흔들리더라도, 꺼내보고 되새기며  나를 바로잡기 위해. 글로써 모든 순간을 저장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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