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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an 17. 2024

사람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자해의 충동성

세 번의 실패, 한 번의 성공

정신병동에서도
자해를 실행할 수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감시되고 있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과연 그럴 수 있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더라. 내 경험상으로는 가능했다. 나는 그날 정신병원 침상에 앉아 내 손목을 그었고, 지금 내 왼쪽 손목에는 깊은 상흔(응급실에 방문하여 봉합을 했다..)이 남겨져 있다. 자해는 일종의 도피일까? 이성이 날아가 버리고 충동에 지배되는 순간, 단 하나의 생각만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 같았던 그 기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자해의 충동성! 그 곳이 어디이든 시간과 장소는 상관이 없었다.


고통을 행동화 하는 것을
자해행동 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상처 입히며 그 행위로 말미암아 남는 흔적. 상처로 인해 일어나게 될 상황을 미리 예측하면서도 자해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은 혹시 학교나 기관에서 또는 직장에서 자해 흔적이나 경험이 있는 동료, 지인을 만난 적이 있는가? 또는 자해에 대해 언급하거나 관심이 있는 지인을 만났을 때 당황해 본 적은 있었는가?

그랬다면 앞으로는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해보자.


자해를 하는 연령대는 매우 다양하다. 대체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게 되기 쉬운 10대 때 빈번하게 나타나는 편으로 알려져 있으며 20대, 30대에도 점점 그 비율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있기도 하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나는 자해 유 경험자이다. 나의 자해는 청소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1개월 전까지만 해도 자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었다.


먼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나의 자해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날은 부모님께 폭행을 당한 뒤였는데 나의 부모, 아빠라는 사람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나에게 손지검을 하곤 했다. 다혈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던 내 부모는 직장에서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와 나에게 폭행을 가하고는 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사실을 가족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153cm 47kg 작은 체구의 나는 175cm가 훌쩍 넘는 아빠에게 손지검을 당할 때마다 몸이 튕겨져 나가곤 했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장면일 수 있는데 싸대기를 맞으면 반대편으로 몸이 날아가곤 하지 않는가. 그런데 신기한 건 내가 폭행을 당해도 몸에 그렇다 할 흔적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감정의 해소'를 위해서다. 역설적이지만 자해를 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소년 시절 내가 한 자해는 감정의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 몸에 상처를 내기 위해서였다.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부모님의 폭행에 똑같이 대응했을 때? 아니 부모님께 대들었을 때(소리를 지르는 등) 그 이후의 후폭풍은 폭행의 양과 질로 나에게 그대로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싸대기를 맞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10명 중 3명 정도는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일까. 아니면 그 퍼센트가 더 적어질까. 그렇다면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다. 생을 살아가면서 가 내 자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릴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입가에서 피가 날 정도까지 말이다. 10명 중 1명 정도는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일까? 아니다. 10명 중 0명에 가까운 퍼센트이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자해를 통해 실행하며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날 내가 한 자해는
죽음에 다가가기 위한 또 다른 시도였다.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발생했던 손목자해. 급입원 이후 내가 지금 이곳에서 너무 힘들다고, 홀로 버텨내기가 너무 버겁다고 누구라도 그 고통을 알아주기 바라서였을까? 그날 나는 이성이 날아가버리고 충동에 지배되는 순간을 직접 마주했다. 내 자해는 상처의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두 개의 F코드를 가지고 지금의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실 코드가 100% 맞는 진단명 이라거나 아주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단 내 코드는 이렇다.
-F412: 혼합형 불안 우울 장애
-F431: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신병원 폐쇄병동
자해 소동


그저 죽고 싶었다. 그런데 정신병원 폐쇄병동 안에서는 방법이 없더라. 해가지니 증상은 더 심해졌다. 병원의 모든 병실을 돌아다니며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근데 도무지 방법이 없더라.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 두 눈은 자해도구를 찾기 바빴고 병실에 시계를 매달아 둔 못에 눈길이 갔다. 못을 빼내려 펄쩍 뛰어 올라봤다. 그런데 153cm밖에 되지 못하는 나는 못에는 커녕 시계에도 손이 닿지 않더라. 좌절했다.


그런데 벽 중앙에 달려 있는 달력에 눈길이 가는거다. 그래서 생각했다. 달력을 걸어둔 못을 빼야겠다고. 이번에는 키도 닿고 좋다고 생각하던 찰라, 손가락으로는 못을 빼내지 못하겠는거다. 도구를 사용하고 싶은데 칫솔, 컵 말고는 아무런 도구가 내게 있지 않았다.


결국에는 칫솔을 부러뜨려 자해를 하려했다. 혹시 칫솔을 부려뜨려 본 사람이 있는가? 아무리 힘을주어도 부러지지가 않는거다. 그냥 구부러 지기만 하는 칫솔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세번의 실패. 그렇게 병실 침대에 엎어져 옆 서랍을 쳐다 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서랍이 오랫동안 헤져서 나무가 휘어져 나와있는 것이 아닌가? 이거다! 나는 환호했다.

(어떻게든 죽고싶다, 자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요동치는데 그 충동성이 참 무섭더라)


정신병원에서는 자, 타의 위험이 있는 환자들은 24시간 감시의 눈이 달려 있는 병실에 자리하게 둔다. 나는 CCTV가 달려있는 병실에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자해에 성공했다. 당당하게 손목을 그었는데 그 순간이 발견 되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결국 1인 폐쇄병실에 감금을 당하는 결말을 맞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문제가 있는 환자는 1인실에 감금당하며 안정제를 놓고 환자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지 않는가?그렇다. 나는 현실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끌벅쩍했폐쇄병동 자해 소동은 끝이 난다.


내가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자살, 자해의 충동성이 어떻게 사람을 '급격히' 극한으로 몰아가는지, 어떤 마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지 알리고 싶어서이다. 


자해는, 할 때마다 강도가 쎄지고 그 상처가 깊어진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충동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순간, 모든 것들이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되서 돌아온단 말이다.


그러니 본인이나 주변 지인들 중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도움의 손길을 꼭 내밀어 주시기를 바란다. 특히 그 대상자가 미성년자라면 가족이 함께 도움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다. 본인의 의지 만으로 이 행위를 멈추기 힘들다면 꼭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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