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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레리나 Jul 22. 2022

내 돌잔치를 기념해 아빠가 담근 포도주

샤또빵쥬

1988년생인 나의 돌잔치는 우리 집에서 했다.

열여덟 평 넓지도 않은 집에 양가 가족들을 모두 초대해 잔치를 치렀고, 잔치 음식은 모두 엄마와 윗집에 사셨던 고모할머니께서 직접 준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는 그때, 직접 담근 포도주를 야심 차게 내놓으셨다.




아빠표 홈메이드 포도주


내가 태어나고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아빠는 내 돌잔치에서 손님을 대접할 포도주를 담그셨다.

그렇게 내 나이와 동갑인 포도주가 탄생했다.


아빠의 포도주 담근 썰은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큰 담금주 병으로 여러 병 포도주를 담가서 방 한구석에 두었는데, 점점 발효되면서 포도주가 부글부글 끌어 올라 뚜껑이 뻥뻥 터지고, 바닥에 흘러넘친 포도주를 닦고 또 닦느라 고생을 하셨다는 이야기.

이렇게 고생해서 만든 포도주로 돌잔치에 오셨던 손님들을 대접했고, 남은 하나의 술단지는 아빠의 최애 술이 되었다.


엄마 아빠 시대에 집 없이 결혼한 사람들은 다 그렇듯이 우리 집도 내가 어렸을 때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중학교 때 처음 우리 아파트가 완공되어 들어갈 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이사만 다섯 번이 된다.

이사를 할 때마다 아빠는 포도주를 애지중지 챙기셨다고 한다.

덕분에 다섯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 미스터리처럼 사라져 버리는 물건이 참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포도주는 무사했다.



우리 딸 시집갈 때 줄 거야


아빠는 사업 때문에 밖에서 술을 자주 드시고 오셨지만, 집에서는 거의 반주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정말 기분 좋은 날이면 베란다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포도주 단지를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어서 국자로 표면을 살살 저은 뒤 아주 조금 퍼서 잔에 옮겨 담으셨다.


'에게? 내가 아빠 주량을 아는데?'

모르는 사람이 봐도 굉장히 아껴마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술을 드실 땐 빠짐없이 아빠가 이 포도주를 담근 이야기부터 얼마나 애지중지 보관해 왔는지를 들어야 했는데, 마지막엔 항상 우리 딸 시집갈 때 이 술을 줄 거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때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내 돌잔치를 위해 담갔던 포도주를

왜 꼭 내가 결혼할 때?

도대체 '누구'에게 주겠다는 건지?

아무튼 집에서 아빠가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보는 건 이때뿐이었다.




딸의 새 가족에게 드리는 선물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는 아빠가 포도주를 잔에 옮겨 담는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소주잔으로 한두 잔 정도 드셨다면,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반잔, 그리고 반의반 잔으로 줄어들었다.

마치 이 술을 아빠에게 맡겨놓은 본래 주인은 따로 있는데, 아빠가 조금씩 마시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몇 달쯤 지났을 때 아빠는 포도주를 큰 단지에서 작은 유리병 3개에 나눠 담으셨다.

한 병은 친정에 남기고, 또 한 병은 우리 부부에게 주셨고, 마지막 한 병은 시부모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다. 시부모님께서는 정말 귀한 선물이라고 감동하셨다.


그제야 나는 아빠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우리 딸 어떻게 키웠다는 말이 필요 없게 술 한 병 선물로 모든 걸 표현하셨다는 것을






나의 분신 '샤또빵쥬'


몇 년 전 크리스마스 때 부모님께서 우리 집에 놀러 오셨는데, 술을 조금 하시고 기분이 좋아지신 아빠가 '아빠표 포도주'를 찾으셨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이 포도주를 마셔볼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았는데, 이날

처음으로 맛을 봤다.


"세상에! 정말 달콤해!" 우리 아빠가 엔지니어가 아니라 포도주 장인이셨나...

30도 소주로 담근 술이라는데 거짓말처럼 술맛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달달한 포도와 엄청난 양의 설탕, 그리고 쓰디쓴 술맛을 덮어버릴 긴 세월까지 모두 포도주를 숙성시키기엔 충분한 조건이었나 보다. 알쓰인 내 입에도 정말 '맛있는' 술이었다.


그리고 이 포도주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흔한 포도주 이름을 흉내 내어, 내 애칭 앞에 '샤또*'만 붙인 엉터리 이름이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88까지 함께 앤틱한 느낌의 종이에 프린트해서 붙여두었다.

*샤또: 프랑스 보르도 지역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에 많이 붙는다.


2018년 크리스마스 우리 집에 놀러 오셔서 포도주를 드신 아빠 손




27년을 아빠 품에서(결혼 후 8년 역시 주민등록상 주소지만 바뀌었지 지금도 아빠 품에 있다.) 살면서 넘치도록 느꼈던 것이지만, 가끔씩 냉장고를 열어 포도주병을 볼 때면 도수 높은 술을 마셨을 때처럼 가슴 안이 찌르르 뜨거워진다. 아빠가 날 얼마나 사랑해주었는지 다시금 일깨워 주는 선물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아빠에게 포도 알갱이처럼 연약하고, 또 미끌미끌 어디로 튀어버릴지 모르는 딸이었고,

혹시 잘못 보관하면 맛이 갈 것 같은 쉽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빠는 이런 나를 항상 세심히 살펴주었고, 애정을 듬뿍 주셨다.

덕분에 지금 내 인생도, 내 분신인 포도주도, 이렇게 달콤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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