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와 주먹
아빠와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각별했다. 아빠는 소위 말하는 딸바보였고, 나는 그 딸바보의 딸이었다.
외출을 할 땐 항상 아빠와 손을 꼭 붙잡고 다녔고, 손을 잡을 땐 우리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
아빠와 나의 손잡는 방법은 추운 겨울에 더 빛을 발했는데
내 손은 주먹을 꼭 쥐고, 아빠의 손으로 내 주먹을 감싸 쥐는 것이 우리만의 손잡기 방식이다.
나는 평소에도 손발이 차서 꼭 겨울이 아니더라도 바람만 살짝 불면 아빠는 내 손을 이렇게 잡아주셨다. 그리고 나 역시도 손 끝이 시려질라 치면 자연스럽게 아빠 손 안에서 주먹을 쥐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외출할 때면 아빠와 손을 꼭 잡고 다닌다.
분명 어렸을 때보다 내 손은 커졌을 테고, 아빠의 손은 그대로 일 텐데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주먹과 아빠 보자기의 사이즈는 딱 맞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 손이 자라든 말든 아빠 손에는 쏙 들어가게 그렇게 태어났나 보다.
할머니 댁에 가면 사촌 언니 오빠들이 많았는데, 그중 8살 많은 사촌오빠가 동생들을 참 많이 챙겨주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기껏해야 초등학생이었던 내 손을 잡고 슈퍼도 같이 가주고, 문방구도 데려가 주곤 했다. 어느 겨울에 사촌오빠와 손을 잡고 갈 때 손끝이 시려 주먹을 쥐었는데, 오빠가 굉장히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고는 "손가락 없는 사람이랑 손잡는 느낌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아빠와 손잡고 다닐 때처럼 자연스럽게 했건만 오빠는 누군가의 ‘주먹을 잡고’ 다녀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손을 맞잡는다기 보다는 뭔가 끝이 동그란 물체를 잡는 이상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오래된 일이지만 내가 처음 ‘이렇게 손을 잡는 게 일반적인 것은 아니구나’ 깨달은 순간이었고, 머쓱하게 주먹 쥔 손을 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빠와 내가 손을 잡고 다녀서 생긴 많은 일화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서 종례시간에 내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여자 선생님이셨다. 키도 크고, 잘 웃으시고, 14살의 여학생들을 굉장히 예뻐해 주시는 분이었다.
어느 날 수업을 모두 마치고 종례 시간에 선생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오늘 아침에 운전해서 고가도로를 넘어올 때 참 보기 좋은 장면을 봤어.
고가도로를 따라 아빠와 딸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더라고.
아빠는 한쪽 어깨에 딸의 책가방을 메고, 다른 한 손으로는 딸의 손을 잡고 가는데
그 딸은 보폭이 큰 아빠의 걸음에 맞추려고 한 두 걸음은 자기 걸음으로 걷고, 다시 한 두 걸음은 종종걸음으로 걷고를 반복하는 거야.
종종걸음을 할 때마다 딸의 묶은 머리카락이 총총총! 흔들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어.”
나는 별생각 없이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듣다 보니 오늘 아침 나와 아빠의 모습인 거다!
아마 내 이야기란 것을 깨닫고는 눈이 동그래졌을 것이다. 서른다섯인 지금도 놀람, 기쁨과 같은 감정은 좀처럼 숨기 지를 못하는데 14살엔 오죽했을까. 나와 눈을 마주친 선생님께서 웃어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반 친구들 앞에서 좋게 표현해주신 게 기분 좋았고, 선생님과 나만 공유한 비밀이 생긴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 반 누구’라고 공개하지 않고, 아빠와 딸로 표현해주신 선생님의 현명함에 참 감사하다. 아마 사춘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선생님께서 ‘우리 반 특정 누구’의 이야기를 했다면 별거 아닌 일임에도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아마 아빠와 손을 잡고 다니는 나와 다정하게 아빠의 손을 잡고 다닐 수 없는 누군가를 모두 배려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결혼을 한지도 벌써 9년 차.
이제는 내가 제일 자주, 오랜 시간 손을 잡는 사람은 단연 남편이다.
결혼 후에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고, 남편과 둘이 사니 당연한 일이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나면, 왜 아빠가 잡았던 딸의 손을 신랑 손에 넘겨주는지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물론 이런 식의 신부 입장을 싫어하는 신부들도 있다. 왜 꼭 친정부모님이 신부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손을 건네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아버지가 계심에도 혼자 씩씩하게 신부 입장을 한 지인도 있었다. 그리고 신랑은 신랑의 아버지와 신부는 신부의 아버지와 입장하는 커플도 종종 보았다.
하지만 우리 커플은 우리답게 결혼에 있어서도 가장 평범하게 주례도 모시고, 양가 어머님들의 입장, 신랑 입장, 그리고 아빠의 손을 잡은 신부 입장을 그대로 진행했다.
이 날 아빠가 내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고부터 나는 아빠의 손보다 남편의 손을 훨씬 더 오래 잡게 되었고,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무어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 엄마에 대한 감정이 더 애틋해지게 되었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기혼 직장인 여성'의 삶을 살게 되면서 엄마의 감정과 힘듦에 더 공감하게 되었다랄까?
부끄러운 일이지만 결혼 전에는 엄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세탁해주신 옷을 입고 살았다. 설거지와 빨래는커녕 내 방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내가(그리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리지 않으면 입을 옷과 쓸 수건이 없고, 설거지는 미루면 미룰수록 불쾌한 냄새와 더불어 못볼꼴을 봐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도 하며 가족들의 아침밥, 저녁밥을 챙겨주시고 집안 살림을 꾸려나갔던 엄마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더불어 며느리로서의 엄마의 감정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결혼 전의 나는 현저히 아빠에게 기울어 있었다면,
결혼을 하면서 남편에게 한 발짝, 그리고 엄마에게 한 발짝 움직였다.
환갑이 조금 넘으신 엄마와 아빠는 손을 잡고 다니시지 않는다.
두 분 사이가 안 좋으신 것도 아니지만 그 나이대의 여느 부부처럼 아빠는 뒷짐을 지고 걸으시고 엄마는 적정한 거리를 두고 근처에서 걸으신다. 나이 든 커플이 손을 잡고 다니면 부부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 말에 따르면 부모님은 찐 부부로 쉽게 인증된다.
분명 두 분도 연애할 때는 손을 꼭 잡고 다니셨겠지만, 아마 오빠와 나를 키우면서 각각 한 명씩을 케어하느라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도 결혼을 하고, 어디를 가든 항상 남편과 손을 잡고 다니다 보니 여자의 입장에서 가끔 엄마의 손이 외로워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가족들이 함께 움직일 때 엄마 손을 더 자주 잡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내 원픽은 아빠 손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엄마 손과 아빠 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말 다행인 건 내 곁에 너무나도 살가운 사위인 내 남편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엄마와 걸으면 그는 아빠 옆에서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걷고,
내가 아빠와 걸을 때면 엄마에게 팔짱을 내어준다. 이게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