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뜻 Jul 14. 2022

수면 아래에서-1

이사를 했다.


서울은 언제나 집주인이 바뀌고, 공사중이며, 사람들이 이사를 다니는 곳이다. 기숙사로부터 시작한 나의 이사 이력은 한 곳, 두 곳, 세 곳, 네 곳, 다섯, 여섯, 일곱번째 집에 다다랐다. 석관동에서 이문동, 청량리, 후암동을 지나 지금 이 곳은 고양과 가까운 어드매이다. 비교적 최근에 서울이 된 이 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고 오래된 빨간벽돌집과 양철지붕, 신식 기와가 심심찮게 눈에 밟히는 곳이다. 아직은 서울에서 가장 지연된 곳이 아닐까 싶은 동네이다.


이사 전까지 나는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계속 면접에서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못내 찜찜한 결과를 받아 조금씩 삶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듯 했다. 자아실현이란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직업이 그에 대한 해답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내리고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5년정도 되었다. 나는 이런저런 일을 전전했지만 이렇다할 특기도 없는 것 같았고 일을 점점 지리멸렬한 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스스로가 끈기가 없는 것은 아닐지 고민되었다.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어야 할지 경쟁의 선에서 벗어날지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잦은 이직으로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있는 감정이긴 했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선들과 규칙들, 문법에 맞춰 춤을 출지, 시스템을 탈피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나에겐 용기가 부족했다.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잠을 어설프게 뒤척이며 그의 죽음이 와닿지 않던 밤과는 달리 아침이 되자 모든 것에 빛이 내리고 건물과 도로는 한 층 견고해보였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너무 무심했던 탓이다. 너와 내가 힘든것처럼, 그가 견디는 무게도 그 정도일거라 생각했다. 먼저 구태여 묻지 않았다. 우리 모두 비슷하게 고통스러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슬픔과 좌절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너는 견디기가 힘들었나보다.


그의 장례식장은 서울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했다. 나는 가는 길에 울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 타인의 고통을 지레짐작하고, 그를 내 기준에 맞춰 재단하고, 직접 들여다보지 않았다. 다들 그렇다고 합리화했다. 나는 너를 알지만 또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몰랐고, 너에게 손 내밀지 않았다. 내가 나빴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본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했다. 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잡았고, 몰라보게 커버린 네 동생들을 봤다. 네 막내동생이 상주 역할을 대신해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네 얼굴 앞에 향을 꽂고, 절을 두 번 했다. 너는 이 세상에 없다. 


네가 왜 그랬는지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더 죄스럽고 슬프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쁘다. 우리의 시야는 갈수록 좁아지고, 관계는 시들어간다. 피로한 탓이다. 우리 모두 무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피로하다. 


네 아버지의 손톱 중 하나가 엇자란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고 나오는데 아버지의 손톱 하나가 나의 손바닥을 푹 찌른다. 나는 그게 내가 응당히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타격이라고 생각한다. 자다가도 문득, 삶의 기로에서 문득, 햇살을 바라보는 어느 오후에 문득. 나를 찔러올 그런 아픔이라고 생각해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다정할 수 있을텐데. 


네가 다정하게 대해준 다른 친구들과 나는 그러니까, 우리는, 그 애를 생각해서라도, 서로에게 다정하자, 다짐한다. 목 언저리가 뜨거워지는 슬픈 약속이다. 이십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좋아했다. 우리가 실패함에도 계속 일어나는 이유를 허공에 대고 소환하는 그런 표현이다. 나는 막다른 길 앞에서 몇 번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되뇌이곤 했다. 그 애가 먼저 간 이후로 나는 '그러니까,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종종 되뇌이게 될 것만 같다. 우리의 삶에는 갚을 수 없는 빚들이 쌓여가고 나는 황망한 마음이 된다. 삶이 우리에게 배풀고 또 앗아가는 것들 사이에서 나는 몇 장면을 손에 쥐고 '그러니까'라고 속삭여본다. '우리는'에는 작은 연대를 위한 다정함이 깃들기를 바래본다. 나는 빚쟁이가 된 듯이 '그러니까, 우리는,' 이라고 되뇌어 본다. 그러니까, 우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