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리딩 Mar 16. 2022

コンビニ人間 (편의점 인간)

씁쓸한 현대인의 자화상,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쉰여든 번째 일본어 원서 완독│규격화된 삶을 지향하는 거기 그대여! 깨어나라!│


■ 미리 보기 및 리뷰 읽기 - 일마존

https://www.amazon.co.jp/%E3%82%B3%E3%83%B3%E3%83%93%E3%83%8B%E4%BA%BA%E9%96%93-%E6%96%87%E6%98%A5%E6%96%87%E5%BA%AB-%E6%9D%91%E7%94%B0-%E6%B2%99%E8%80%B6%E9%A6%99/dp/4167911302/ref=sr_1_1?__mk_ja_JP=%E3%82%AB%E3%82%BF%E3%82%AB%E3%83%8A&crid=1DO26QOWLG5TP&keywords=%E3%82%B3%E3%83%B3%E3%83%93%E3%83%8B%E4%BA%BA%E9%96%93&qid=1647356612&sprefix=%E3%82%B3%E3%83%B3%E3%83%93%E3%83%8B%E4%BA%BA%E9%96%93+%2Caps%2C438&sr=8-1



■ 오디오북 듣기



3년 전, 크레마를 구입하고 전자도서관에서 번역서 편의점 인간을 빌려 읽었다. 문체가 간결하고 깔끔해서 앉은자리에서 뚝딱 읽은 기억이 있는데, 원서를 읽어보니 역시 수상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필력이 돋보였다. 단어도 쉽고, 문장이 짤막해서 N2 수준이면 충분히 무리 없이 읽을 것 같다. 분량도 길지 않아 원서 읽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최근 읽었던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를 다뤘다면 이번 '편의점 인간'은 모든 인간을 규격화하여 일정한 잣대로 재고, 저울질하는 고질적인 일본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꼬집고 있다. 우리의 성차별 문제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듯, 일본 사회의 획일화된 인간 재단하기가 오직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으로 잘라 보여주듯 너무도 익숙한 일본 사회를 엿보며 그 속에 투영된 우리 모습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후루쿠라 게이코는 태생적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그야말로 사회성이 결여된 치명적인 결점을 가진 아이였다. 공원에서 죽은 새를 보며 다른 아이들이 동정과 연민을 느낄 때 게이코는 순진한 눈망울로 엄마에게 구워 먹고 싶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남자아이들의 주먹질로 교실이 발칵 뒤집히자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삽으로 아이들을 후려쳐 기절시킨다. 하루는 담임이 벌컥 화를 내며 교실을 시베리아 벌판으로 만들자 선생님에게 달려들어 하의를 벗겨 버린다. 게이코에게 전혀 악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슬프다.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한 채 몸을 낮추고, 세상의 틀에 맞춰 보통 사람인척 살아간다. 




スマイルマート日色町駅前店は一日も休むことなく、灯りを灯したまま回転し続けている。先日、お店は19回目の5月1日を迎え、あれから15万7800時間が経過した。私は36歳になり、お店も、店員としての私も、18歳になった。


なぜコンビニエンスストアでないといけないのか、普通の就職先ではだめなのか、私にもわからなかった。ただ、完璧なマニュアルがあって、「店員」になることはできても、マニュアルの外ではどうすれば普通の人間になれるのか、やはりさっぱりわからないままなのだった。


朝になれば、また私は店員になり、世界の歯車になれる。そのことだけが、私を正常な人間にしているのだった。


스마일 마트 히이로마치 역전점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불을 밝힌 채 운영되고 있다. 요전에 가게는 19번째 5월 1일을 맞이해, 그로부터 15만 7,800시간이 지났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 되었고, 가게와 점원으로서의 나는 열여덟 살이 되었다.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 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안 되는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단,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 점원이 되는 건 가능해도, 매뉴얼이 없는 밖에서는 대체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결국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면 또다시 나는 점원으로서 세상의 부품이 된다. 그것만이 오직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이 항상 문제의 씨앗이 되는 이런 배경이 대학 졸업 후 줄곧 그녀를 편의점에서 18년간 근무하게 만든다. 편의점은 일거수일투족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오직 정해진 방법대로, 수순대로 입과 몸을 움직이면 보통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를 감출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편의점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함께 동조하거나 비슷한 연령대의 동료의 외모와 말투를 덧입혀 자신의 색을 지우고 보통 사람인척 가장하려 발버둥 친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된 그녀가 그저 알바로 살아가도록 주변 사람들은 가만 놔두지를 않는다. 좀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정직원이 되길 종용하거나 결혼을 채근하며 그녀를 인생의 낙오자로 치부한다. 무미건조해도 평온하기만 했던 그녀의 삶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지금껏 애써 버텨온 핑곗거리로는 더 이상 정상인의 범주 안에서 살 수 없음을 감지한다.




皆が足並みを揃えていないと駄目なんだ。何で三十代半ばなのにバイトなのか。何で一回も恋愛をしたことがないのか。性行為の経験の有無まで平然と聞いてくる。『ああ、風俗は数に入れないでくださいね』なってことまで、笑いながら言うんだ、あいつらは!誰にも迷惑をかけていないのに、ただ、少数派だというだけで、皆が僕の人生を簡単に強姦する。


모두가 똑같이 보조를 맞춰야 하는 거야. 30대 중반이나 돼 가지고, 왜 알바로 연명하는지. 왜 모태솔로인 건지, 성 경험의 유무까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본다고. "아, 직업여성들과의 경험은 빼고"라는 말까지 웃으며 한다고, 그놈들은!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사는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로 모두가 내 인생을 강간해 버리잖아.



그러다 참, 실소 터지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게이코와 비슷한 연령대의 시라하는 편의점 새 식구가 되는데, 게이코가 편의점 인간이라면 이 남자는 노답 인간이다. 염세주의와 성차별주의, 망상 탑재 및 불성실, 민폐, 태만, 교만으로 똘똘 뭉쳐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번 생은 구제불능일지도 모르겠다.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밑바닥 인생이라 폄하하면서 정작 본인은 폐기용 음식을 몰래 훔쳐 먹거나 단골손님을 스토킹 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의 간섭에 진절머리 치지만, 정작 노력은 하지 않고 남에게 기생하며 세상의 눈총으로부터 숨어 들길 원하는 시라하의 욕구와 최소한 모태솔로 딱지를 벗어던져 어떻게든 정상인에 한 발 가까워지려는 게이코의 욕구가 맞아떨어져 이야기는 급기야 둘의 계약 동거라는 뜻밖의 국면을 맞는다. 



あの建物は天候に影響を受けないような素材で出来てるから、カバーは要らない。むしろ不具合があった時に、見やすくて、直しやすいほうがいい。だからむき出し。そして、そのむき出しの形が綺麗だって。こうして、わざわざ見に来る人がいる。


ひょっとしたら、人もそうなのかなって。人って他人の目を気にしたり、普通とか、常識とか言葉に縛られて格好つけたり、強がったり、思ってもいないことを言ったりして、自分をカバーするんじゃないですか?でも、本当はそんなものは必要なくて、カバーがない方が、素敵なんじゃないかな?



저 건물은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소재로 지어져 커버가 필요 없어요. 오히려 이상이 생겼을 때 발견하기 쉽고, 고치가 쉬운 편이 좋아요. 그래서 커버 없이 노출했어요. 그 드러난 모습이 예쁘다고 이렇게  일부러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죠. 


어쩌면 사람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평범이라든가 상식이라든가 라는 말에 얽매여 폼을 잡기도 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자신을 커버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불필요할 뿐, 커버가 없는 편이 멋있지 않을까요?

- 일드 ソロ活女子のススメ 중 -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게이코와 시라하가 사회 부적응자이자 인생의 낙오자인 같은 부류의 인간으로 취급될지 몰라도 게이코와 시라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신의 숙명이 편의점 직원임을 깨달은 게이코가 정직원 면접과 시라하를 뿌리치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결말을 보며 더욱 그렇게 느꼈다. 지금껏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불필요한 커버를 씌우고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았다면, 이제는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판단으로 세상을 살아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난관이 앞으로 또 그녀 앞에 도사리고 있을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해둔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과연 인생에서 실패를 의미할까?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해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듯 개성과 가치관, 행복을 느끼는 온도 또한 저마다 다르다. 행복의 기준을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타자의 기준에 맞추다 보니 번뇌가 끊이지 않는다. 도덕적인 범주 안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성숙한 의식을 갖출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지금보다는 좀 더 말랑말랑해질 텐데... 세상사에 찌들어 틀에 박힌 의식을 유연하게 도와주는 이런 소설은 시간 내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모쪼록, 하루하루 자신답게, 행복하게, 잉여롭지 않게 채워나갈 수 있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초속 5센티미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